[경건한 주말] 심장 떨리게 재밌는 ‘슬픔의 삼각형’과 ‘분노의 질주’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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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슬픔의 삼각형’과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그린나래미디어·유니버셜픽쳐스 제공 영화 ‘슬픔의 삼각형’과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그린나래미디어·유니버셜픽쳐스 제공

심장이 쿵쾅거리게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공포영화를 제외하면, 서사를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 영화들이 그렇습니다.

지난 17일 개봉한 ‘슬픔의 삼각형’과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Ride or Die)’는 심장 박동을 재촉하는 영화입니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블랙코미디 ‘슬픔의 삼각형’은 관객을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작정하고 만든 액션 영화인 ‘분노의 질주’는 피가 끓어오르게 합니다.


칸이 반한 블랙코미디 ‘슬픔의 삼각형’

초호화 크루즈에 갑부들이 모여 사치를 즐깁니다. 현대판 귀족인 억만장자와 승조원의 권력 관계는 뚜렷합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 배가 침몰하고 소수의 생존자가 무인도에 조난당한 뒤에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됩니다.

지난 17일 개봉한 ‘슬픔의 삼각형’은 블랙코미디의 거장인 스웨덴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내놓은 신작입니다.

영화는 지난해 12월 개봉한 ‘더 메뉴’를 연상케 합니다. 초호화 요트에 올라탄 사회 상류층과 젊은 선남선녀 커플이 외부와 단절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설정이 아주 흡사합니다. 상류층 승객들의 끊임없는 탐욕과 허영심이 정죄의 대상이라는 점도 같습니다.

‘슬픔의 삼각형’은 크게 3부로 구성됐습니다. 1부는 모델 커플인 ‘야야’(샬비 딘)와 ‘칼’(해리스 디킨슨)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야야는 잘 나가는 여성 모델이고, 칼은 ‘슬픔의 삼각형’을 가진 남자 모델입니다. 업계 용어인 ‘슬픔의 삼각형’은 무표정을 짓고 있어도 두 눈썹과 콧대 맨 윗부분 사이의 ‘삼각지대’에서 슬픔이 느껴지는 것 같은 현상을 가리킵니다.

외스틀룬드 감독은 극중 캐릭터를 극도로 어색한 상황에 몰아넣고는 홀연히 떠나버리는데 아주 능숙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극중 인물이 내리는 어리석은 결정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렬한 풍자입니다. ‘슬픔의 삼각형’에서도 이런 민망한 상황들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칼은 자신보다 수입이 많은 야야가 데이트 비용을 내는데 인색한 것을 두고 불만을 드러냅니다. 그는 야야에게 “우리가 전통적 성 역할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서로 평등한 사이였으면 좋겠다”고 외칩니다. 말다툼 뒤 혼자 남게 된 칼은 “페미는 무슨”이라며 야야를 비웃습니다. 외스틀룬드 감독이 부인과 실제로 벌였던 논쟁을 재구성한 이 시퀀스는 씁쓸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슬픔의 삼각형’.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2부는 2억 5000만 달러짜리 초호화 크루즈에서 시작합니다. 인플루언서인 야야는 협찬을 받아 칼과 함께 크루즈에 올랐지만, 나머지 승객은 초거대 부호들입니다.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이 자본가들은 ‘갑질’을 일삼습니다. 입으로는 “우리는 다 평등하잖아”라고 말하면서도 승조원에게 곤란한 지시를 내리는 억만장자의 모습은 현실을 지독하게 반영한 것입니다. 무표정일 때 부정적인 감정을 보는 ‘슬픔의 삼각형’처럼, 이 허영심와 자아도취에 빠진 부자 승객들도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문제를 보고 시정을 요구합니다.

외스틀룬드 감독은 크루즈를 폭풍 속으로 몰아넣고 부자들의 밑바닥을 까발립니다. 요리사까지도 워터 슬라이드를 타도록 지시한 부자 승객은 결국 상한 음식과 멀미 탓에 토사물을 마구 쏟아냅니다. 여기저기서 부자들이 구토를 참지 못하고, 이리저리 쓰러지고, 화장실에서 굴러다닙니다. 요동치는 크루즈에서 ‘미국인 마르크스주의자’인 선장(우디 해럴슨)이 만취한 채 ‘러시아 자본주의자’ 디미트리(즐라트코 버릭)를 상대로 벌이는 논쟁은 압권입니다.

크루즈가 사고로 침몰한 뒤 시작되는 3부의 전개도 흥미진진합니다. 무인도에 남겨진 생존자 8명은 모델 커플과 부유한 백인 중년 남성들, 승조원들의 리더인 폴라(비키 베를린), 그리고 천대받던 화장실 청소부이자 필리핀 여성 승조원인 애비게일(돌리 드 레옹)입니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슬픔의 삼각형’.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크루즈에선 뭐든 할 수 있었던 부자들은 무인도에선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불도 피울 줄 모르고, 해산물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자 권력구조는 순식간에 재편됩니다. 결국 영화의 핵심 주제는 3부에 집약됐습니다. 권력의 분배 방식과, 권력을 탐하게 되는 이유,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행을 벌이게 되는 과정을 신선하게 그려냈습니다. 충격적인 열린 결말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 뒤에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끔 합니다.

외스틀룬드는 이 영화로 지난해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더 스퀘어’(2017)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주제가 무거워 보이는 ‘슬픔의 삼각형’이지만, 영화 곳곳에 녹아있는 외스틀룬드 특유의 블랙코미디는 웃음을 자아냅니다. 찌질한 칼의 표정,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갑부 드미트리는 진지한 순간에도 헛웃음이 나게 합니다. 하지만 옅은 미소를 띠다가도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흐름이 바로 ‘슬픔의 삼각형’이 가지고 있는 매력입니다.

물론 비판할 점도 있습니다. 풍자가 너무 직접적이고 가혹하다는 지적입니다. 영국 가디언지 수석 영화평론가인 피터 브래드쇼는 “거대 부호에 대한 가혹한(heavy-handed) 풍자”라며 5점 만점에 2점을 매기는 데 그쳤습니다.

브래드쇼의 비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예컨대 비료장사를 하는 러시아 부자 디미트리는 스스로 “똥을 팔아 부자가 됐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난파 직전의 크루즈에선 변기가 폭발하며 똥물이 곳곳에 흐르고, 부자들은 말 그대로 똥물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수류탄을 팔아 부자가 됐다는 영국 노부부 윈스턴과 클레멘타인은 처칠 전 총리 부부와 이름이 같습니다. 블랙코미디의 백미는 은근한 사회 풍자인데, ‘슬픔의 삼각형’ 속 메시지나 메타포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같은 가디언지 소속 기자인 알렉스 니드험은 “우리 시대를 위한 영화”라며 “우리가 뉴스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갑부들은 저속하다”고 일갈했습니다.

한편, ‘슬픔의 삼각형’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배우 샬비 딘의 유작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모델 야야를 연기한 그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주목 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말, 32세의 나이에 세균성 패혈증으로 숨졌습니다.


영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유니버셜픽쳐스 제공 영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유니버셜픽쳐스 제공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무조건 4DX로 봐야하는 이유

기자는 자동차가 시원하게 질주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영화는 꼭 4DX 포맷으로 관람합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나 ‘포드 V 페라리’(2019)를 4DX 관에서 보면 마치 영화 속 자동차에 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카체이싱 액션의 대명사인 ‘분노의 질주’는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지난 17일 개봉한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의 4DX 효과는 가히 ‘역대급’이라 평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 10번째 작품으로, 전설의 레이서 ‘돔’(빈 디젤 분)과 그 패밀리가 새로운 빌런 ‘단테’(제이슨 모모아)의 함정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분노의 질주가 팬들에게 20년 넘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스토리’에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가족애라는 핵심 메시지, 뚜렷한 선과 악의 대결 구도, 그리고 무엇보다 화려하고 화끈한 자동차 액션을 통한 쾌감이 시리즈의 최대 강점입니다. 스케일은 속편이 거듭될수록 커졌습니다. 2017년 개봉한 9번째 시리즈 ‘더 얼티메이트’에선 핵잠수함이 북극 얼음판을 깨고 솟구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갈 때까지 간 것처럼 보이는 ‘분노의 질주’였지만,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은 아직 보여줄게 남아 있었습니다. ‘라이드 오어 다이’는 그야말로 ‘끝장 액션’을 선보입니다. 차량 수십 대가 박살나고 버스가 말 그대로 찢어지는 장면들이 별일 아니라는 듯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여타 영화에선 아끼고 아끼다 클라이맥스로 한 번 보여줄 법한 대규모 액션 씬들이 ‘라이드 오어 다이’에선 예삿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4DX관 의자도 쉴 새 없이 흔들립니다. 가만히 앉아 감상하는 시간보다 의자에서 등이 떨어져 있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팝콘이나 콜라 같은 간식거리를 들고 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영국 런던, 포르투갈 리스본 등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액션 씬들은 모두 훌륭하지만,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영화 초반 이탈리아 로마 시퀀스입니다. 맹렬한 기세로 굴러가는 구형 폭탄을 돔과 동료들이 추격하면서 도시가 말 그대로 초토화 되는데, 특유의 촬영기법과 연출로 박진감을 극대화시켰습니다.

화려한 출연진도 매력적입니다. 돔의 ‘오리지널’ 패밀리들은 물론이고 전작에 등장했던 ‘제이콥 토레토’(존 시나), ‘데카드 쇼’(제이슨 스타뎀) 등 스타들이 한 데 모였습니다. 전작 빌런인 ‘사이퍼’(샤를리즈 테론)와 돔의 아내 ‘레티’(미셸 로드리게스)의 격렬한 맨몸 액션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또 ‘테스’(브리 라슨), ‘이사벨 네베즈’(다니엘라 멜키오르), ‘에임스’(앨런 리치슨) 등 ‘뉴페이스’들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영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유니버셜픽쳐스 제공 영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유니버셜픽쳐스 제공

가장 중요한 ‘신입 캐릭터’는 초강력 빌런인 ‘단테’(제이슨 모모아)입니다. 단테는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2011)에서 돔과 패밀리가 무찔렀던 브라질 마약왕의 아들로, 10년 동안 준비한 복수를 실행해 돔을 위기에 빠트립니다. ‘아쿠아맨’(2018)으로 얼굴을 알린 제이슨 모모아는 이번 작품에서도 유쾌하고 뺀질뺀질한 매력을 선보였는데, 소시오패스 악당이라는 설정 탓에 ‘다크나이트’의 조커를 연상시킵니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도 스토리는 많이 아쉽습니다. 전체적으로 개연성이 떨어지고, 반전 요소가 억지스럽습니다. 단테는 매력적인 빌런이지만, 지나치게 전지전능해 보여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분노의 질주 특유의 비현실적이고 과한 액션 역시 호불호를 가르는 요소가 될 수 있겠습니다. 돔은 이번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액션으로 온갖 난관을 헤쳐 나갑니다. ‘아이언맨’ 슈트 정도는 입어야 살아남을 법한 충격을 당하고도 멀쩡하고, 악당이 쏜 저격총 총알은 자동차 문짝도 뚫지 못합니다. 물론 현실성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 거슬리지 않겠지만, 관객에 따라 유치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유쾌한 흑인 듀오 ‘테즈’(루다 크리스)와 ‘로만’(타이리스 깁슨)의 무의미한 말장난이 전작과 비교했을 때 다소 줄어든 점은 좋았습니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시리즈 고유의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는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는 방탄소년단(BTS) 지민이 참여한 곡이 삽입되기도 했습니다. 지민은 미국 힙합 아티스트 코닥 블랙과 NLE 초파가 작업한 이 영화의 주제곡 ‘엔젤 파트 1’(Angel Pt.1)에 보컬로 참여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영화의 엔딩과 1개의 쿠키 영상 모두 속편을 암시합니다. 시리즈를 완결 지을 11번째 작품은 2025년 공개됩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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