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우리의 노래를 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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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다르덴 형제 신작 ‘토리와 로키타’
벨기에서 남매처럼 사는 아이들
체류증 받기 위한 이야기 그려내
유럽 사회 난민 등 현실적 조명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 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화 ‘토리와 로키타’ 스틸 컷. 영화사 진진 제공

다르덴 형제 감독은 언제나 사회 테두리 바깥의 아이들에게 주목해 왔다. 영화 ‘로제타’는 빈민촌에 살면서 직업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소녀의 모습, ‘아들’은 어린아이를 목 졸라 죽였던 소년이 시간이 지난 후 직업 훈련 센터에서 교육받으면서 일어나는 일, ‘더 차일드’는 10대에 부모가 된 아이들 모습을 담았다. ‘토리와 로키타’에서도 그들은 이전 작품들과 다르지 않게 우리 시대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영화화했다. 그것은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는 현실이지만,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아프고 슬픈 현실이다. 이번에는 어린 소녀와 소년 난민의 모습을 뒤따르고 있어 더욱 충격적이다.

11살 ‘토리’와 16살 ‘로키타’는 아프리카에서 벨기에로 넘어오는 배 안에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진짜 남매처럼 서로를 살뜰히 보살피며 살아가는 여느 가족과 다르지 않다. 물론 그들이 남매로 위장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체류증을 받아 정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체류증도 중요하지만, 두 사람에게 진짜 가족은 의미 없다. 머나먼 타국에서 힘들 때마다 서로를 보듬어 주고 의지가 되어줄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나 이 사회는 피로 이어지지 않은 가족은 인정하지 않기에 토리는 체류증을 받은 난민으로, 로키타는 아직 허가받지 못한 타자로 구분될 뿐이다.


로키타는 체류증을 얻어 가사 도우미로 취업해 고향에 돈을 보내는 것과 동생 토리와 함께 사는 게 꿈이다. 하지만 체류증을 받기 위해 그토록 오래 준비했던 면접 조사에서 순간 말이 막히고, 로키타의 소박한 꿈도 한순간에 날아가고 만다. 이제 조만간 로키타가 갈 수 있는 곳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합법적으로 벨기에에 거주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절망한 토리와 로키타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진다.

두 사람은 피자 가게에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벨기에인 ‘베팀’의 지시에 따라 피자 박스에 숨긴 마약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 경찰과 타인의 눈을 피해 어렵게 번 돈이다. 벨기에로 올 때 로키타를 데려온 밀입국 브로커에게 그나마 번 돈도 갈취당한다. 여기에 얼마 남지 않은 돈은 가족에게 보내야 한다. 자신을 위해 단 한 푼의 돈도 쓸 수 없지만, 악착같이 버티며 살아내야만 하는 존재가 바로 로키타이다. 하지만 희망이던 면접조사에서 탈락하면서 체류증을 받을 길이 요원해지자 로키타는 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것이 비록 범죄나 불법이라도 로키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것밖에 없다.

영화에서는 두 곡의 음악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첫 번째 곡은 아프리카 자장가이고, 다른 곡은 이탈리아 노래로 토리와 로키타가 처음 유럽에 왔을 때 이탈리아 여인에게 배운 노래다. 두 사람은 음식점에서 이 노래를 천진난만하게 부르며 돈을 벌었는데 사실 오싹하지 않을 수 없다. 내용의 가사가 큰 동물이 작은 동물을 때리고, 작은 동물은 더 작은 동물을 때리는 일이 반복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자장가는 엄마가 아이에게 안식을 주는 음악이라면, 다른 곡은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하는 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곡 같아 서글프다.

벨기에 출신의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의 ‘토리와 로키타’는 피가 통하지 않는 남매를 통해 유럽 사회에서 난민과 이민자 등이 어쩔 수 없이 범죄 조직에 가담하게 되는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보호받아야 마땅한 아이들이 버려지는 시스템, 이는 시스템의 부재와 부당함을 확인시키며 고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때 다르덴 형제가 비추는 토리와 로키타의 모습은 담담하면서도 차갑기 그지없다. 단 한 번도 따듯이 남매를 응시하지 않는 카메라는 끝까지 남매를 외면해서 아프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임을 알기에 영화가 끝나고도 먹먹함이 오래 가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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