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흡수하는 대나무는 지구 구하는 ‘현대판 만파식적’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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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가 품은 식물 이야기/안진흥

지배자 지혜 빛내는 식물 등 45종 소개
조상들의 생활상과 가치관 보여줘

삼국유사가 품은 식물 이야기 삼국유사가 품은 식물 이야기

<삼국유사가 품은 식물 이야기>는 식물학자인 저자가 역사의 또 다른 주역인 식물을 통해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삼국유사>에 수록된 60여 종의 식물 중 45종을 뽑아 옛날 우리 조상들의 식물에 대한 인식과 이용 등을 소개한다. 건국과 지배자의 지혜를 빛내는 식물, 만파식적의 소재인 대나무를 비롯하여 국가의 흥망을 예언한 식물, 속세를 벗어나거나 세속의 삶과 밀착된 식물, 불교의 전래와 가르침에 관련된 식물을 다룬다.

삼국시대에는 실크로드와 바닷길을 통해 서역 국가와 교역이 활발했으며 많은 이민자들이 정착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가락국 수로왕의 결합이다. 수로왕은 허황옥이 바다를 건너 가야로 올 때 목련으로 만든 키와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갖춘 배를 보내 맞이했다. 목련의 목재는 재질이 치밀하여 가구나 도구를 만드는 데 적합했다. 목련은 백악기에 출현해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꽃식물 중 하나다. 저자는 “지금은 한라산에만 분포하는 토종 목련이 당시에는 가야국 근처에도 살았을 수 있으나, 허황옥 공주를 맞이한 배의 키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함박꽃나무로 만든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배의 노가 계수나무로 나오는데 요즘 공원에서 쉽게 만나는 계수나무는 1920년 일본에서 처음 도입됐다. 도입 시기를 보며 <삼국유사>의 계수나무와 요즘 정원수로 심는 계수나무는 다른 나무이다.

선덕여왕과 모란 이야기도 흥미롭다. 당 태종이 보내온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세 가지 모란꽃 그림을 보고 선덕여왕은 향기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모란에는 향기가 있으며, 화중왕(花中王), 국색천향(國色天香)으로 사랑받아 왔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은 왜 모란의 향기가 없다고 한 걸까? 모란은 6~7세기부터 원예품종이 만들어졌으며, 그 후 다양한 색깔과 모양, 향을 가진 품종들이 개발되었다. 선덕여왕 시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모란은 향이 미약한 초기 품종이었고, 훗날 향이 강한 품종이 개발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는 날씨와 파도를 조절하고, 병을 낫게 하며, 적을 물러가게 하는 전설 속 보물인 만파식적이 나온다. 만약 만파식적이 실존한다면 가뭄과 폭우 등 기후 위기에 직면한 인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만파식적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만파식적의 재료인 대나무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대나무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소나무보다 3배 이상 많다고 한다. 탄소를 흡수하는 그린카본으로, 말 그대로 ‘현대판 만파식적’인 셈이다.

벼에 얽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일화는 웃음을 자아낸다. 원효대사는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도중 잠결에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을 마신 것을 알고 깨달음을 얻어 유학을 포기했고, 의상대사는 그대로 유학을 떠난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두 승려의 대비는 낙산사를 찾아가다가 논에서 벼를 베던 여인을 만난 이야기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원효대사는 여인에게 벼를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인은 관음보살이었다. 의상대사는 그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예의를 갖추고 접견했으나, 원효대사는 관음보살을 못 알아보고 말실수까지 했다. 당시 지식층에게 불교를 설법한 의상대사에 비해 서민층을 위한 불교 전파를 한 원효대사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는 일화이다. 이처럼 역사와 식물 이야기를 절묘하게 버무린 대목이 많다. 안진흥 지음/지오북/256쪽/1만 6000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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