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헌신으로 치욕의 근대에 맞선 홍범도의 삶과 투쟁
방현석 소설가 10년 이상 자료 조사
홍범도와 포수들 항일 무장투쟁 다뤄
새로운 가치 출현과 낡은 가치 돌파
“어떻게 자신의 길 가는지 알고 싶어”
독립운동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식민지 치욕을 넘어서려는 싸움과 희생이 우리가 치른 근대의 한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 싸움이 우리 근대의 깊은 내면이다. 제국주의 근대가 침략했다면, 식민지 근대는 저항했다. 침략의 역사를 으스대는 이들이 있을지 몰라도, 저항의 헌신적 역사는 우리를 항상 바르게 세우게 하는 것이다. 저항의 근대를 점철하는 다음 한 구절이 참으로 빛난다. “헌신은 무한했으나 바란 대가는 전무했다.” 우리 치욕의 근대는 이것을 내면화한 것이었다.
그 점을 탁월하게 보이는 인물 하나가 홍범도(1868~1943)다. “그는 모든 이들을 노선 이념 계급으로 가르지 않고 오직 사람으로서 대했다. 그 어떤 자리를 탐한 적도 없었다.” 소설가 방현석이 독립투쟁을 이끈 홍범도의 생애와 포수들의 항일 무장투쟁을 다룬 장편소설 <범도>(전 2권)을 내면서 하는 말이다. 그는 13년 동안 홍범도의 삶을 추적했는데 홍범도에게서 그 어떤 사욕의 흔적·단서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치욕의 식민지 근대를 뚫고 일어서서, 오늘날 우리를 만든 것이 이런 것이었다.
홍범도는 생의 마지막 순간, 고려인 17만 명이 강제 추방당한 중앙아시아에서 극장 수위를 했다. 그는 고려극장의 무대 도구를 보관하는 창고의 늙고 남루한 수위였다. 소련 노동자 평균 임금의 절반 정도를 받는 처지였다. 극작가 태장춘이 용케 그를 알아보고 투쟁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고려극장 무대에 올렸다. 그 연극을 본 홍범도는 소감을 묻는 말에 “너무 추어올려”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한 마디 더해달라는 주문에 홍범도는 “내 이야기 말고 그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주시오”라고 했다.
홍범도의 그 뜻을 따라 방현석은 말한다. “나는 홍범도를 통해 한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새롭게 출현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낡은 가치를 돌파하면서 자신을 길을 가는지를 알고 싶었다.” 소설에는 홍범도와 함께했던 신포수 백무현 백무아 남창일 차이경 김수협 장진댁 금희네 진포 박한 정파총 안국환 태양욱 최진동 등이 홍범도가 말한 ‘그들’로 등장한다. 그들은 만주와 연해주에 시린 뼈를 묻었다.
식민지 치욕의 근대에 ‘그림자 역사’가 없을 수 없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동기가 28명이었는데 국비로 일본 육사에 들어간 이들은 독립운동을 함께 하자고 맹세했다. 그중 홍사익 이응준 지청천, 요코하마 3총사는 피를 섞은 술을 마시며 재차 맹세했다. 그런데 28명, 그리고 3총사 중 끝까지 독립운동을 한 이는 지청천 혼자뿐이었다.
3총사 중 이응준은 황군의 일원으로 변절했으나 대한민국 초대 육군 참모총장, 체신부 장관을 지냈다. 28명 동기 중 신태영은 일본군 장교가 돼 필생의 목표를 ‘야스쿠니 신사’라고 천명하면서 제국의 신민이 됐던 이다. 작가는 “훼절한 2명은, 대한민국 동작동 현충원에 광복군 총사련관 지청천보다 더 높은 자리에 모셔져 있다”며 “세계 어느 나라에 이런 경우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썼다. 모욕의 동작동, 이라는 것이다. 홍범도가 “억압과 차별, 불의를 향해 발사한 마지막 한 발의 탄환은 아직 탄착점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립운동 전선에는 수많은 밀정이 우글거렸다. 홍범도와 21의형제동맹을 맺고, 안중근과 결의형제를 맺은 엄인섭은 연해주 호랑이 최재형의 외조카인데 밀정이 된 대표적 경우다.
소설에는 애달픈 사연도 많이 나온다. 홍범도의 심복 류진철이 부녀자를 겁탈했다고 해서 그를 사형에 처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홍범도는 자결하든지, 나를 쏘든지 하라며 류진철에게 총을 맡긴다. 류진철은 자결했는데 그 품속에서 그 여자와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내용의 편지가 나온다. 그 여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것이었다. 홍범도는 최후가 다가오는 것을 예감한 1943년 극장 수위로 일하면 모은 돈을 다 털어 동지들과 옛 부하들을 불러 하루 잔치를 열었다. 음식과 술이 부족하지 않은 흥성한 잔치였다. 그 열흘 뒤 그는 눈을 감았다.
소설에 이런 장면이 있다. 홍범도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로 무려 두 개 대대 병력을 이동시키자고 제안한다. 상대가 묻는다. “이런 길로 이동할 수 있겠습니까?” 홍범도 대답이 아주 상징적이다. “한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라면 열 사람도 갈 수 있고, 백 사람도 갈 수 있고, 천 사람도 갈 수 있소.” 홍범도는 동지들을 격려한다. “졸지 마라. 아침이 온다.” 방현석 지음/문학동네/전2권, 632쪽, 672쪽/각권 2만 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