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유나바머의 경고와 부산엑스포의 제안
박태우 디지털미디어부장
인류 사회 바꿔놓을 AI 혁명 급속한 도래
기술 발전=재앙 경고한 유나바머 재조명
연대·협력·인류애 가치 앞세운 부산엑스포
예측불가 기술 대응할 해법 모색할 장 되길
“인류에게 있어 산업혁명과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도 하지만 그건 대체로 체제에 이익이 되는 경우에 한한다.”
무차별 소포 폭탄으로 1970~80년대 미국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던 ‘유나바머’ 테드 카진스키가 지난 10일 교도소 수감 중 사망했다. 대학과 항공사를 주요 무대로 자행된 그의 폭발물 테러에 3명이 목숨을 잃고, 23명이 부상을 입었다. 비행 중인 여객기 짐칸에서 그가 설치한 폭발물이 터지면서 승무원과 승객들이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17년 동안이나 FBI의 추적을 따돌리며 얼굴 없는 폭탄 연쇄 살인마로 악명을 떨치던 그는 1995년 대담하게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자신의 범행 동기를 밝힌 3만 5000자짜리 선언문을 실으면서 정체가 탄로났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제목의 선언문에서 그는 현대문명에 대한 극도의 거부와 공포, 혐오를 쏟아냈다. 그는 각종의 테크놀로지를 현대사회를 병들게 한 주범으로 지목한 극단적인 기술혐오주의자였다. 테러의 주요 타깃도 대학에서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유나바머는 우리가 기술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절대로 구분해서 쓸 수 없기 때문에 기술은 일방향으로만 무한히 뻗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간들은 그런 기술의 효용에 중독돼 점차 무력해질 것이고, 종국에는 자율성과 인간성을 뺏긴 채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기술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간의 편리와 효용을 위한 기술의 발전이 거꾸로 인류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라는 거다.
‘현대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비뚤어진 미치광이의 횡설수설’이라는 극단의 평가를 받는 유나바머의 선언문이 나온 지도 28년이 지났다. 동유럽 사회주의 몰락에 따른 냉전체제 종식과 맞물려 기술은 IT(정보통신) 혁명, 바이오 혁명 등을 거치며 그 자체가 동력을 가지기라도 한 듯 숨 가쁜 질주를 거듭해왔다.
기술 만능주의와 탐욕, 극단적인 부의 쏠림, 환경 파괴 등 여러 폐단을 양산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인류사회는 그가 예언한 ‘테크노 디스토피아’로 치달을 만큼 기술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는 않았다.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실업의 공포에 빠져 방직 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직공단원)처럼 그 역시 풍차에 달려들었다가 휩쓸려 날아가 버린 돈키호테로 역사에 기억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출시한 미국 인공지능(AI) 업체 오픈AI의 ‘챗GPT’가 불러온 AI(인공지능) 혁명은 인류가 예측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거대한 조류를 예고하면서 다시금 유나바머의 끔찍한 경고를 곱씹게 만든다. 당장에 AI가 몇 년 안에 내 일자리를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부터 시작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는 딥페이크 시대의 도래에 이어 자기결정권을 지닌 고도의 AI가 인류의 존속까지 위협할지 모른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곳곳에서 경고음이 흘러 나온다. 챗GPT를 개발한 샘 알트먼 대표조차 “이 기술이 잘못되면 꽤 많이 잘못될 수 있다”고 AI의 위험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인류의 지식과 기술 진보의 궤적을 집대성하는 글로벌 메가 이벤트인 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는 이 문제의 해법을 찾는 최적의 무대가 될 수 있다.
2030년 월드엑스포 개최지 선정을 위한 최대 승부처로, 지난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4차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부산은 ‘인류 공통의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 플랫폼’을 비전으로 내세웠다. 국제박람회기구 회원 179국을 상대로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 ‘약속’ ‘보답’ ‘연대’의 4가지 키워드를 앞세워 불확실성과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는 세계의 여러 난제들을 도전과 미래의 도시인 부산에서 함께 풀어나가자고 강조했다. 브레이크 없는 기술의 질주에 약자와 약소국이 휩쓸려 더 큰 고통을 겪지 않도록 연대와 협력, 인류애의 가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과 부산이 쌓아온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겠다고 손을 내민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막강한 ‘오일머니’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상당수 회원국들이 부산의 호소에 얼마나 마음을 열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부산으로서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졌다고 평가하고 싶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부산은 모든 준비를 마쳤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