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아가야, 이 땅에 태어난 죄(?)로…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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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 안 된 영아 살해, 전 국민에 충격파
불법 입양도 횡행 불구, 현황 파악조차 안 돼
‘천금보다 중한 아이’ 보호 대책은 곳곳 허점
출산부터 양육 전 과정 지원, 전반 점검 필요

최근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수년째 방치됐던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되면서 온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다. 이미 세 자녀를 두고 있던 30대 친모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또 연이어 출산하게 되자 이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초저출생 시대에 충격적인 ‘영아 살해’ 사건이 발생하자, 전국에서 이를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다. 이참에 영아 불법 입양, 부모에 의한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까지 망라해 영유아와 아동 보호를 위한 종합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최근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출생신고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미비점이 드러났다. 산부인과 전문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연합뉴스 최근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출생신고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미비점이 드러났다. 산부인과 전문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연합뉴스

■ 살해·불법 입양 대상 ‘유령 아기’

이번 영아 살해 사건은 처음부터 경찰에 의해 밝혀진 게 아니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를 정기감사한 것이 실마리가 됐다.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있는데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무적자(無籍者)가 2015년부터 작년까지 8년간 2236명에 달한다는 감사 결과가 그 시작이었다. 이 중 1%인 23명을 표본조사한 결과, 수원의 사례를 포함해 총 3명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고, 1명은 베이비박스에 유기됐다는 것이다.

23명의 표본조사만 해도 이처럼 온 국민이 충격을 받을 정도인데, 앞으로 나머지 전원을 조사한 결과는 어떨지 벌써 두렵다. 여기다 병원 외에서 출산한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우리나라 출생신고 시스템이 아우르지 못한 영아는 더 많을 것이다. 어쨌든 이미 표본조사만으로 큰 충격을 준 이상 정부는 철저한 조사로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

수원 사건이 충격적이지만, 냉장고의 영아 시신 유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부산에서도 2017년 6월 30대 여성이 2014년, 2016년에 각각 출산한 아기의 시신을 동거남의 집 냉장고에 보관하다가 체포됐다. 2006년 7월엔 서울 서래마을에 살던 프랑스 여성이 2002년, 2003년 각각 출산한 아기 2명을 살해한 뒤 자택 냉동고에 보관해 오다 적발되기도 했다.

이번처럼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는 다른 한편 불법 입양의 대상으로 선호된다. 특히 영아 입양을 원하는 입장에선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가 제도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아 인기라고 한다. 카카오톡 공개 채팅방이나 인터넷 등에는 이처럼 법원 허가를 거쳐야 하는 정식 입양을 피해 불법 입양을 문의하는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정식 절차를 회피하려는 이런 불법 입양은 당연히 파악조차 하기 어렵다. 2020년 1월부터 작년 9월까지 출생 미등록 상태로 사회복지시설에 입소한 아동이 269명이라는 보건복지부의 조사와 영아 유기가 매년 100~180건에 달한다는 경찰의 추산을 감안하면 매년 불법 입양되는 영아도 상당할 것으로 추측된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유령 아기’들은 법원의 허가를 거치지 않은 불법 입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의 부모가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베이비박스. 연합뉴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유령 아기’들은 법원의 허가를 거치지 않은 불법 입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의 부모가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베이비박스. 연합뉴스

■ 부모에 의한 극단 선택의 희생도

미성년 자녀와 함께 죽음을 꾀하는 일명 ‘가족 동반자살’은 요즘 ‘자녀 살해 후 극단 선택’이라는 용어로 바꿔 부르는 추세다. 어린 자녀의 생존권을 부모가 마음대로 박탈하는 살인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표현한 것이다. 당시 부모가 처했던 상황과는 관계없이 부모에 의한 명백한 범죄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영아 살해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 역시 매년 증가 추세라고 한다. 물론 정부나 복지 기관 등의 공식적인 집계는 없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부모가 자녀 살해 후 자신도 삶을 마감하는 사례는 2020년 12건, 2021년 14건이라고 한다. 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00년부터 20년간 가족살인 범죄 보도를 분석한 결과, 부모의 극단 선택 전 살해로 숨진 자녀는 알려진 것만 175명이었다고 한다.

언론 보도나 경찰 수사로 알려지지 않은 피해 아동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인 아동과 이후 피해 방지를 위한 정부나 사회의 관심은 대부분 사건 발생 초기에만 반짝할 뿐, 장기적인 제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출생신고 누락을 막는 출생통보제 등 여러 방안이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참에 출산 단계를 넘어서 전 양육 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종합 보호시스템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엄마와 아기를 대상으로 실시된 오감발달 베이비 마사지 교실. 부산일보DB 출생신고 누락을 막는 출생통보제 등 여러 방안이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참에 출산 단계를 넘어서 전 양육 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종합 보호시스템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엄마와 아기를 대상으로 실시된 오감발달 베이비 마사지 교실. 부산일보DB

■ 종합적인 보호시스템 절실

수원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국회는 유령 아기를 출산 단계부터 막기 위한 여러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의료기관이 신생아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해 출생신고 누락 자체를 막는 출생통보제의 도입은 전반적으로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반면, 산모가 익명으로도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에 대해선 아직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어쨌든 정부와 국회가 영아 보호를 위한 보완책 마련에 나선 만큼 곧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단기 처방은 그렇게 하더라도, 지금부터는 영유아 정책에 관한 전반적인 점검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출생 단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양육까지도 포함하는 종합적인 영유아 보호시스템을 고려해 볼 때가 됐다. 영아 살해와 불법 입양, 자녀 살해 후 극단 선택은 사실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의 심각한 인구 문제를 고려하면 출생과 양육 환경의 개선을 더는 개인의 영역에만 맡겨 두기가 어렵게 됐다. 이는 공적 기관의 역할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국가가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책임감을 갖고 종합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새롭게 변하고 있는 가족의 개념과 구성 등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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