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볼거리 풍성한 ‘애스터로이드 시티’와 ‘인디아나 존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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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당시 최고 인기작은 단연 ‘프렌치 디스패치’였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로 이름을 알린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은 순식간에 매진됐습니다. 기자는 웨스 앤더슨의 팬은 아니었지만, 극장에서 본 ‘프렌치 디스패치’의 영상미는 실로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초호화 출연진이 나선 배경도 이해가 됐습니다. 기자가 만약 배우였다면,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 한 번쯤은 얼굴을 남기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지난 28일 앤더슨 감독의 새로운 작품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개봉해 매니아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기자도 보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기 위해 극장을 찾았습니다.

같은 날 개봉해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인디아나 존스5’도 관람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TV에서 재밌게 봤던 시리즈가 어느덧 마무리된다니 싱숭생숭한 기분입니다. ‘인디아나 존스5’ 역시 볼거리가 풍부해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와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유니버설 픽쳐스·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와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유니버설 픽쳐스·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여전한 ‘미장센 끝판왕’의 신작 ‘애스터로이드 시티’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미국 사막에 있는 인구 87명의 작은 마을입니다. 고대에 이곳에 떨어진 소행성이 만든 거대한 구덩이가 마을의 명물로 남아있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앤더슨식 미장센’ 냄새를 진하게 뿜어냅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통과하는 열차에서부터 따뜻한 원색과 보색의 대비가 눈길을 끕니다. 이어 완벽한 대칭 구도로 미국 사막 마을의 모텔, 카페, 주유소를 천천히 소개합니다. 1950년대의 빈티지한 시설들이 파스텔 톤 색감과 만나 독특한 영상미를 구현합니다. 보통의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묘한 안정감이 듭니다.

영화는 천문학 천재 청소년들에게 시상하는 연례행사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종군 사진기자 ‘오기 스틴벡’(제이슨 슈와츠먼)은 상을 받을 ‘장남 우드로’(제이크 라이언), 그리고 세 딸과 함께 마을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차가 고장난 탓에 부자 장인어른 ‘스탠리 잭’(톰 행크스)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유명 배우 ‘밋지 캠블’(스칼렛 요한슨)도 딸 ‘다이나’(그레이스 에드워즈)의 수상을 위해 마을 모텔에 투숙합니다.

이윽고 운석이 떨어진 것을 기념하는 ‘소행성의 날’에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고, 정부는 마을에 모인 사람들을 격리 조치합니다. 마을을 벗어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자연스레 서로 접촉하고 교류합니다.

사실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모든 것은 허구입니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극중극’이라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립니다. 연극처럼 막과 장이 나뉘고,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가공해낸 극작가 ‘콘래드 어프’(에드워드 노턴)와 연극배우들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색채와 화면비의 변화를 통해 뚜렷하게 구분했습니다. 그러나 4:3 비율에 흑백으로 그려진 현실세계는 오히려 연극처럼 그려져 관객은 점차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릿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앤더슨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메시지가 직관적이지 않고, 기승전결이 분명하지 않아 스토리에 몰입하기 쉽지 않습니다. 극중극에서 오기 스틴벡을 연기하던 배우 ‘존스 홀’조차 현실 세계에서 연출가 ‘슈버트 그린’(에이드리언 브로디)을 찾아가 “아직도 이 연극을 모르겠어”라고 소리칩니다. 극작가 콘래드조차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솔직히 말해 기자도 이런 난해한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앤더슨의 영화에는 관객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어딘가 엉뚱하면서도 내성적인 등장인물들부터 독특한 개성을 갖췄습니다. 인물들은 대체로 절제되고 희미한 감정 연기를 펼치는데, 오히려 감정 전달이 극대화됩니다. 특히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선 결핍과 고독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연대를 원하는 캐릭터들 간 미묘한 ‘밀당’이 돋보입니다.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강박에 가까운 정제된 미장센입니다. 할리우드 대표 비주얼리스트, 앤더슨 작품의 특징은 ‘대각선’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겁니다. 직선적인 연출과 수직·수평을 지향하는 촬영이 잘 훈련된 의장대 사열을 볼 때나 느낄 법한 카타르시스를 안깁니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거나 측면만 드러나는 배우들,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배경은 영화 영상보다는 움직이는 평면 화보를 보는 느낌입니다.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초호화 캐스팅도 보는 즐거움을 더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앞서 언급한 스타 배우들 외에도 틸다 스윈튼, 마고 로비 등 주연급 유명 배우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배우들이 랩을 하듯 쏟아내는 대사에 녹아든 위트는 소소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또 영화 곳곳에는 원자폭탄 실험 등 50년대 미국의 모습도 자연스레 녹아있습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지난달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습니다. 웨스 앤더슨은 이 영화에 대해 “역사의 한 특정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 속에서 사랑과 외로움, 애통과 희망,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녹이려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야속하거나 무색하거나…세월이 완성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2021년 한 국제 기사를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해리슨 포드가 영화 촬영차 방문한 이탈리아 남부 휴양지에서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가 돌려받았다는 기사였습니다. 기사를 읽다가 해리슨 포드가 벌써 79세라는 사실에 놀라고, ‘인디아나 존스 5’를 촬영 중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42년을 이어온 시리즈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1944년의 한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중년의 얼굴을 한 인디(해리슨 포드)가 유물을 구하기 위해 나치에 잠입했다가 들통나 펼쳐지는 액션씬입니다. 젊어진 인디는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열차 지붕을 뛰어다니며 관객을 흥분시킵니다.

중년으로 돌아간 포드의 얼굴은 ‘디에이징’ 기술 덕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종전에는 포토샵으로 주름을 지우고 피부 톤을 밝게 하는 수준이었는데, 특수효과 기업 'ILM'이 제작한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통해 정교하고 자연스럽게 나이를 되돌릴 수 있게 됐습니다.

인상적인 도입부가 끝나면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1969년의 미국이 펼쳐집니다. 흰머리를 한 인디는 고고학 교수직에서 은퇴할 정도의 나이가 됐습니다. 인디는 이제 조용히 살기를 바라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또 다시 모험을 떠납니다. 나치 열차에서 생사를 함께 넘나든 고고학자 친구 ‘바질 쇼’(토비 존스)의 딸 ‘헬레나’(피비 월러 브리지)가 불편한 동료가 됩니다.

이번 작품에서 인디가 찾아야 할 보물은 아르키메데스가 발명한 원형 숫자판 ‘안티키테라’입니다. 애초 인디는 나치 열차에서 확보한 안티키테라의 반쪽을 갖고 있었지만, 나머지 반쪽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타임머신의 일종인 안티키테라가 완성되면 ‘시간의 틈’을 통해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치 열차에서 만났던 과학자 ‘위르겐 폴러’(매즈 미켈슨)가 네오나치 일당과 함께 안티키테라를 찾아 과거를 바꾸려 한다는 겁니다.

영화는 세월의 야속함을 억지로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머리는 백발에, 얼굴은 푸석해졌고, 근육이 처진 해리슨 포드는 두 발로 전력질주 하는 것조차 힘들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그러나 영화 속 인디가 보여주는 액션은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박력 넘칩니다. 말을 타고 도심 퍼레이드 한복판에 뛰어들고, 인디 특유의 투박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펀치도 지체 없이 날립니다. 모로코 골목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액션 씬을 비롯해 영화 중반까지 시원시원한 액션이 이어져 지루할 새가 없습니다.

다만 뒷심은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전개가 다소 늘어지면서 지루한 구간이 있습니다. 위치추적 장치라도 심은 듯 결정적일 때마다 인디를 방해하기 위해 눈앞에 등장하는 악당들과, 그런 악당들에게서 그리 어렵지 않게 벗어나는 인디 일행의 억지 ‘티키타카’가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주연급인 ‘헬레나’와 조연인 ‘테디’ 캐릭터의 존재감도 아쉽습니다. 캐릭터 자체의 역할은 작지 않지만, 이들이 인디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과정에서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그래도 상상력이 가미된 후반부 시간여행은 흥미진진합니다. 또 비행기 공중액션이나 해저 탐사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블록버스터 본연의 재미를 보장합니다. 4DX 포맷으로 감상했더니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모션체어의 격렬한 움직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인디의 시그니처인 카우보이 모자와 채찍, 그리고 메인 테마곡 ‘레이더스 마치’(Raiders March)는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실제로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4050 세대에게 인기입니다. 관람객 통계에 따르면 30일 오후 2시 현재 ‘운명의 다이얼’ 관람객 중 40대와 50대의 비율이 62%(40대 30%, 50대 32%)에 달합니다.

한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1∼4편을 흥행시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선 총괄 제작자로 참여했고, 연출은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맡았습니다. 스필버그는 제작 초기 단계부터 인디 역에 포드가 아닌 다른 배우를 캐스팅할 가능성은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포드 역시 외신 인터뷰에서 “나는 인디아나 존스다. 내가 죽으면 그는 없다”며 여전한 열정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운명의 다이얼’로 지난달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포드는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전작들처럼 가족애라는 핵심 메시지로 마무리됩니다. 맨골드 감독은 ‘운명의 다이얼’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가족을 위한 오락 영화”라며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액션과 연기가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최근 액션 영화들을 보면 액션 자체에 집중해 폭력적인 요소도 많다”고 지적하며 “‘인디아나 존스’는 액션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고, 전반적인 스토리텔링이나 감정을 함께 유지했다는 점에서 좀 더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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