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름대교 공격 직후 러 흑해곡물협정 거부… 식품 가격 ‘들썩’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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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3200만t 수출길 막혀
밀·옥수수 가격 각각 상승
식량 원조받는 국가들 위기
미·유엔 일제히 러 비난 나서

우크라이나 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름대교가 17일 공격 받은 직후 러시아는 흑해곡물협정의 연장을 거부했다. 크름대교가 파괴돼 왼쪽 상판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름대교가 17일 공격 받은 직후 러시아는 흑해곡물협정의 연장을 거부했다. 크름대교가 파괴돼 왼쪽 상판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보장해온 흑해곡물협정이 러시아의 연장 거부로 17일(현지 시간) 자정을 기해 만료됐다. 흑해곡물협정 종료가 당장은 세계 식품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식량안보 등에 중기적으로는 부담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유엔은 러시아의 거부 직후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가 이날 흑해곡물협정 종료를 선언하면서 4번째 연장은 무산됐다. 러시아는 자국 농산물·비료 수출 보장 약속이 이행되고 있지 않다며 연장 불가 가능성을 거론하다 결국 이날 탈퇴를 선언했다.

흑해곡물협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가 흑해를 통해 곡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보장한 것으로 우크라이나는 이 협정을 통해 약 1년간 3200만t 이상의 곡물을 수출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지난해 7월 유엔, 튀르키예의 중재로 흑해곡물협정을 체결했고 현재까지 3차례 연장됐다.

러시아의 연장 거부는 우크라이나 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름대교가 공격받은 직후 발표됐다. 이날 공격으로 크름대교 통행은 긴급 중단됐고 러시아 반테러위원회(NAC)는 이를 우크라이나 특수기관에 의한 테러로 규정했다. 다만 러시아는 크름대교에 대해 벌어진 공격과 이번 협정 종료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흑해곡물협정이 만료되면서 식량안보 우려도 다시 제기된다. 앞으로 주요 식품 가격이 오르면서 식량난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T)에서 밀 선물 가격은 부셸당 6.81달러로 3.0%, 옥수수 가격은 부셸당 5.21달러로 1.4% 각각 상승했다.

농업 싱크탱크인 팜 파운데이션의 올리아 타이입 셰리프는 “흑해 항로가 폐쇄되는 기간이 길어지면 식품 가격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고 식품 안보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이집트 등 일부 수입국은 식품 가격 인플레이션 여파로 곡물가 지급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량 원조를 받는 국가들도 위기에 직면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아프가니스탄, 예멘, 아프리카 국가들에 식량을 조달하는 데 차질을 겪을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날 AFP통신은 “흑해곡물협정 붕괴로 인한 즉각적인 타격은 거의 없겠지만 중기적으로는 시장에 긴장을 주고 식품 가격을 압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 속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통화해 식량 공급 안정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이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서 “흑해곡물협정 종료는 기아를 무기화하고 세계 식량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러시아의 또 다른 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흑해 항로를 통한 식량 안보와 공급을 회복하기 위해 책임 있는 국가들과 협력하기로 구테흐스 사무총장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엔은 일제히 흑해곡물협정을 거부한 러시아를 규탄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7일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곡물협정 중단 결정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이라며 “이는 식량 부족을 악화하고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취약계층을 한층 위험에 빠트린다”고 비판했다. 또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협정 연장을 위한 중재안을 제시했던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17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이행 종료 결정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며 “내 제안이 무시된 것도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연장 거부 의사를 재확인했으며 중국도 러시아의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미트리 폴랸스키 주유엔 러시아 차석대사는 스푸트니크통신 등 자국 매체에 “이번 협정 종료는 최종적인 결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우리는 해법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모든 당사자의 우려를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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