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102. 가슴에 붙은 불을 끄는 ‘부채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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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자세’는 복부 기관의 활동을 도와 위장 장애를 완화하고, 장내 가스를 제거해 준다. 하복부 지방 제거와 허리 근육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시연 비시야 김미선 ‘부채 자세’는 복부 기관의 활동을 도와 위장 장애를 완화하고, 장내 가스를 제거해 준다. 하복부 지방 제거와 허리 근육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시연 비시야 김미선

부채란 부치는 채라는 말인데 이 말이 줄어서 ‘부채’가 된 것이다. 부채를 한자어로는 선자(扇子)라고 한다. 대오리로 살을 만들어 넓적하게 벌려서 그 위에 종이나 헝겊을 바른 것이다. 민요에 ‘가을에 곡식을 팔아 첩을 사고 오뉴월 되니 첩을 팔아 부채 산다’는 해학적인 가사도 있다. 여름에는 무엇보다 부채가 제일임을 표현한 것이다.

‘부채는 인공적인 바람이 아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자연스러운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지만 자연과의 미적 조화를 보여 주기도 한다. 부채 속의 그림이 그렇고 피부에 느껴지는 정감이 기계의 힘으로 내는 바람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눈으로 즐기고 만지는 촉감으로 즐기며, 일으키는 바람에 마음까지 시원함을 얻을 수 있다’고 정목일이 말하고 있듯이 부채는 한여름의 반려 물품이었고 한국인의 여유와 멋을 상징하는 예술품이었다.

한 외국인 학자는 ‘한국의 부채는 모두가 예외 없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우아(優雅)의 시대를 말해 주고 있다’고 했다. 우아란 말이 의미하듯 부채에는 시원하다는 실용적인 의미 외에 많은 정서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아름다움을 우아미, 숭고미, 비장미, 그리고 골계미로 나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제일로 치는 것이 우아미라고 한다. 우아미가 다름 아닌 고전적인 형식미를 의미한다고 볼 때, 부채 특히 합죽선의 선면(扇面)에서 그와 같은 완벽한 형식미를 보게 되는 것이다.

문장가들에 따르면 선면화(扇面畵)의 소재로는 설경(雪景)이나 우경(雨景), 혹은 파초나 연잎 같은 것이 제격이라 하고, 특징으로는 그 기법과 자세에 있다고 말한다. 곰살스럽게 그린 사실화보다는 느슨한 기분이나 활달한 필세로 툭툭 친 선화(禪畵)적인 세계를 높이 쳤으며, 거기에 속기(俗氣)가 없으면서도 낭만적인 시정(詩情)이 넘친다면 금상첨화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런 그림들을 한가로이 보고 있노라면 먼 산마루에서 선선한 솔바람이라도 불어 오는 듯 한결 상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동양화 자체가 그럴 테지만 선면화에서는 특히 여백이 강조된다. 꽉 차게 채우기보다는 허허롭게 비우기를 원한다. 촘촘하게 채운 선면에서는 소쇄한 기분을 맛보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부채 속 그림의 아취와 풍류는 우리 겨레의 생활 속 멋과 미의식을 자연스레 보여 주고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필체로 한시(漢詩)나 손수 지은 짧은 시 한 소절 멋지게 새긴 부채는 보기만 해도 한여름 땡볕 정도는 거뜬히 견뎌 낼 듯 하다. 그것은 기꺼이 휴식과 평온을 가져다 주는 물건이었으며 하나의 풍류이고 예술품이기도 했다. 일종의 휴대용 미술품이었다 할까. 접으면 손가락 굵기의 대나무 가지에 지나지 않지만 한번 펼치면 열두 폭 병풍처럼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신비스러운 물건! 선조들의 이런 기발한 착상에 감탄하게 된다 .

부채를 뜻하는 선(扇)자를 보면 초기의 부채는 새의 깃털로 만들었을 것이다. 부챗살은 열 개에서 육십 개까지 다양하다. 길이는 6촌에서 한 자가 넘는 것까지 있다. 부채에 다는 선추 장식도 금, 은, 옥, 옥추단(玉樞丹), 뿔 등 사치가 대단했다고 한다.

부채의 종류에는 방구부채와 접부채가 있다. 방구부채는 둥근 부채로 단선 또는 원선이라 불렀다. 접부채는 접는 부채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다. 접는 부채가 우리나라에 처음 나온 것은 11세기 중엽이다. 방구부채는 중국이 역사가 깊고 접는 부채는 일본이 역사가 깊다. 방구부채는 부챗살 모양과 바탕의 꾸밈새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오엽선, 연엽선, 파초선, 태극선, 까치선, 공작선 등이 유명하다. 접부채는 부채살의 수와 부채 꼭지의 모양과 선추의 종류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백선, 칠선, 유선, 복선, 반죽선, 합죽선, 윤선 등이 그것이다.

부채는 그 쓰임새가 많다. 제갈량은 백우선(白羽扇)으로 삼군을 지휘했다. 이때 부채는 지휘봉이 되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은 순절하기 직전 나랏일 때문에 자식의 도리를 다 못하는 내용인 ‘군신의중 부자은경(君臣義重 父子恩輕:군신의 의가 중하니 부모의 은혜는 오히려 가볍다)’을 적은 절명시를 부채에 적어 부모에게 보냈다. 부채가 편지의 역할과 유품이 된 것이다.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는 신미양요 때 노획해 간 부채가 있다. 여기에는 부챗살마다 전투에 참가한 우리 병사들의 이름과 직함이 적혀 있다. 이때 부채는 죽음의 맹세를 하는 매체가 됐다.

삼국사기를 보면 태조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자 후백제 견훤이 사신을 통해 공작선(孔雀扇)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견훤의 부채는 대나무로 만든 죽선이 아니라, 공작의 깃털로 만든 공작선이었다. 공작선은 둥글게 생긴 방구부채이다. 이럴 때 부채는 통치권을 인정하는 상징이 됐다.

전주의 특산물인 합죽선은 일찍이 왕에게 진상됐고, 전라도 각 영(營) 안에서는 이를 위해 선자청(扇子廳)이라는 기관까지 두었다고 한다. 왕이 단옷날을 기해 신하들에게 부채를 나눠 줬고, 민간에서도 부채를 선물로 주고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단옷날 선물은 부채가 제일이요, 동짓날 선물은 책력(冊曆)이 제일이라 했다. 더욱이 춘향전에서 어사또가 살만 남은 헌 부채에 솔방울로 선추(扇錘)를 달고 민정을 살피러 나서는 대목은 슬며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부채란 뜻을 나도 잠깐 생각하니 가슴에 붙은 불을 끄라고 보냈도다. 눈물로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서 어이 끄리”라고 ‘고금가곡’은 전한다.

강원도 관찰사 임백견은 사랑하는 기생으로부터 받은 부채를 너더너덜해질 때까지 갖고 다녔다. 이때의 부채는 사랑의 정표이다. 연인들의 애끓는 정한을 노래한 연가에서도 으레 부채는 빠질 수 없었다. “달 같은 부채로도 여윈 얼굴 못가리리/뇌성인 냥 수레 몰아/오셔야 할 님이여” 상사일념으로 여윈 얼굴은 은은히 비치고 달같은 비단 부채로 해서 한층 더 읽는 이의 마음을 애틋한 감상에 젖게 한다. 정약용이 강진에 귀양 갔을 때 동료에게 시를 적은 부채를 줬다. ‘대나무 몇 가닥에 새벽달이 걸릴 적에/고향이 그리워서 눈물 줄줄이 맺힌다’ 동료는 당시의 세도가 김조순 앞에서 이 부채를 부쳤고 이를 알아차린 김조순은 정약용을 유배에서 풀어 주도록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김종태의 ‘옛것에 대한 그리움’ 참조)

부채의 역할은 더 많이 있다. 소리꾼들에겐 소도구가 돼 장단을 맞춰 준다. 무속인들은 부채 없이는 신바람이 나지 않으며, 서예가나 화가들의 캔버스가 되기도 하고, 벽에 걸면 장식품이 되며, 선추 장식에 향료를 넣으면 방향제가 된다. 검술깨나 익힌 사람들은 부채가 곧 그대로 검이 돼 호신용 무기가 된다. 사당패가 외줄을 탈 때는 균형을 잡는 도구가 된다. 선추에 옥추단(玉樞丹)을 넣으면 비상약품 역할을 한다. 전통혼례 때에도 부채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차단막 역할을 했다. 신랑은 파란 부채로, 신부는 빨간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상(喪)을 당했을 때는 흰 부채를 들고 다니며 얼굴을 가렸다. 나라끼리 주고받는 국교품도 된다. 단순한 부채 하나가 이렇듯이 요긴하게 쓰이는 것은 실로 한국적인 특징일 듯하다.

장신구로서 기능을 떠나서 잠시 심리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부채의 표정에는 미묘한 느낌이 있다. 부채의 이런 표정과 역할은 우리의 고전 예술에서 특히 요긴하게 발휘되고 있는 것 같다. 판소리에서 부채의 역할은 매우 다채롭다. 때로는 지극히 극적이기까지 하다. 소리꾼은 이 부채 하나로 텅 빈 무대 위에서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복잡한 극적 상황과 극중 인물들의 심리적 갈등까지 표현해 낸다. 판소리에서는 반주보다 소리가 먼저라고 하는데 오히려 먼저인 것은 부채의 움직임일 듯하다. 명창의 본산이 전주이고 합죽선의 명산지 또한 전주인 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부채를 들고 추는 부채춤은 근래 한국무용 중 우아한 선과 리듬, 그리고 멋을 가장 잘 살린 춤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목일은 “무용이 시공간적인 예술이지만, 꽃과 나비 등의 형상화를 보여 주면서 이를 통해 인간이 추구하는 미와 멋, 염원을 한껏 펼쳐 보이는 부채춤은 꽃의 숨결, 나비의 날갯짓으로 이루어진 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이 꿈꾸는 이상 세계와도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그러므로 부채춤은 한국무용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우아한 춤의 대명사로 기억될 것이다”고 말한다. 한 번 더 생명과 존재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부채춤이 아닐까

부채 자세, 범어로는 ‘위로 뻗은 발 자세’라는 뜻의 ‘우르드바 프라사리타 파다 아사나’는 누운 상태에서 손을 아래나 위로 올리고 다리는 곧게 펴서 모아 준다. 허리가 바닥에서 뜨지 않도록 하고 다리를 직각으로 세웠다가 천천히 내려서 60도, 45도, 30도, 15도 각도가 되게 하다가 정지 상태를 유지한 뒤, 다시 역순으로 올리기를 반복한다. 무릎을 구부리면 복부에 힘이 덜 들어가 운동 효과가 떨어지고, 허리가 바닥에서 떨어지면 척추에 무리가 올 수 있다. 때로는 다리를 직각으로 들어 올렸다가 내리기를 연속으로 하거나 두 다리를 붙인 채 좌우로 원을 그릴 수도 있다.

이 자세는 복부 기관의 활동을 도와 위장 장애를 완화하고, 장내 가스를 제거해 준다. 하복부 지방을 제거하는 데도 효과가 있으며 허리 부분을 강화시켜 바른 자세를 돕는다. 하단전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수직으로 높게 발을 편 자세의 모양이나 두 발로 원을 그릴 때 접부채나 방구부채 같다고 해 ‘부채 자세’ 또는 ‘부채꼴 자세’라 한다.

녹음 짙게 우거진 정자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펴 놓고 한들한들 부채를 부치면서 매미 울음소리 뒤로 하고, 잠시 노동의 피로를 푸는 달콤한 오수(午睡)에 들면, 삼복더위도 어느덧 아득히 저 먼 곳으로 묻혀 들고 말았던 풍경이 떠오른다. 그래서 부채는 무더운 한여름을 날 수 있도록 청량감을 선사하는 리듬이며 박자였고, 생활의 지혜이며 슬기였으며, 또한 정신적인 휴식과 평온을 맛보게 하는 요긴한 도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부채를 잘 구경 할 수가 없게 됐으니 애석한 일이다. 선풍기와 에어컨 바람에 밀려 이제 부채란 한낱 과거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진정 애석한 것은 과거의 그 우아와 품위, 그리고 여유의 시대가 부채와 함께 우리의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채 자세’를 통해 신체를 단련함은 물론이고, 그 옛날 부채가 주던 탈속의 운치와 넉넉한 정취, 그리고 풍류와 아련한 향수를 조금이라도 맛보고 기억해 봤으면 좋겠다.

생각난 김에 졸(拙)한 솜씨지만 아담한 부채에다 아사나(요가 동작) 그림 또는 ‘요가수트라(요가경전)’ 명문 한 구절이라도 그리고 써서, 여름날 땀 뻘뻘 흘리며 열성적으로 수업하는 요가 선생님들께 하나씩 선물하리라 다짐해 본다.


부채에 쓴 글. 글 최진태. 부채에 쓴 글. 글 최진태.
부채에 그린 그림. 그림 이진희 부채에 그린 그림. 그림 이진희

[부채 자세]

옛적부터 선조들이 애용해 온 반려 도구/눈으로 즐기시고 촉감으로 정감 느낀/여유와 멋 함께 지녔던 물건 중에 상 물건

단순히 바람 얻는 도구만은 아니었네/자연과 어울리며 삶의 여유 잃지 않는/맛깔스런 이 풍류 보소 그 무엇이 부러우리

녹음 짙은 나무 아래 돗자리 펼쳐 놓고/하늘하늘 부채질에 농주라도 한잔 치면/만사가 눈아래여라 신선 아니 부러웠지

매미소리 자장가 삼아 오수에 빠져들면/삼복더위 대수일까 범부들의 소확행에/그 시절 아득하여라 옛 여름날 농촌 풍경

신문물에 밀려나서 찬밥 신세 되었지만/탈속의 운치 하며 격조까지 두루 갖춘/그대의 우아한 풍치 그 멋일랑 잊지 않길

누운 채 다리 들고 아래위 좌우로도/접부채 방구부채 그 모양이 닮았구려/하단전 연단하는 데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gi7171gi@naver.com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gi7171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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