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최대 국적선사 HMM 새 주인 찾기… 순항할까?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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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8위 선사 성장·경영 정상화 계기 매각 추진
글로벌 해운 경기 침체·해운사 실적 하락이 변수
HMM 인수자, 반드시 해운 전문성·애정 있어야

우리나라 최대 국적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이 해운·물류업계를 비롯한 경제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최근 HMM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왔기 때문이다. 이 회사 최대 주주인 한국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난달 20일 HMM 매각 공고를 내고 본격적인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이른바 ‘HMM 민영화’ 작업이다. HMM 매각 주관사인 삼성증권은 오는 21일까지 예비입찰 신청을 접수한 뒤 적격 인수 후보를 추려 본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세계 해운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특수로 인한 대호황이 끝나고 침체 국면을 맞고 있다. 또한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2M’의 ‘2025년 해체’라는 큰 변곡점에 직면했다. 2M을 이루는 세계 1, 2위 해운사인 스위스 MSC와 덴마크 머스크가 각자도생을 위해 2년 뒤 결별하기로 결정해 세계 유수 선사들 간 전략적 이합집산과 함께 새로운 해운동맹의 탄생도 예상된다. 글로벌 해운 경기가 침체하고 해운업의 지각변동이 예고된 가운데 HMM의 새로운 주인을 찾기 위해 추진되는 매각의 순항 여부가 주목된다.

부산항 부산신항에 계선줄을 이용해 정박해 있는 1만 6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 ‘HMM누리호’. 부산일보DB 부산항 부산신항에 계선줄을 이용해 정박해 있는 1만 6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 ‘HMM누리호’. 부산일보DB

■한진해운 파산

HMM이 국내 최대 선사로 발전한 것은 한진해운의 퇴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7년 2월 국내 1위, 세계 7위의 국적선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최대 규모 선사들과의 치열한 경쟁과 누적된 적자, 기업주의 도덕적 해이 등으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서다. 이 때문에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크게 약화돼 해상 운송을 통한 수출입으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는 물류대란에 시달리는 등 큰 충격을 받으며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한진해운이 40년에 걸쳐 전 세계에 구축한 해양영토인 촘촘한 바닷길이 하루아침에 퇴출과 동시에 없어진 탓이다. 이에 자국 해운산업의 중요성을 절감한 우리 정부는 같은 해 4월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수립·발표한 데 이어 2018년 7월 실질적 정책 수행 기관인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한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지난 5년간 국내 해운업 정상화를 위해 쏟아부은 예산은 무려 8조 9507억 원. 해운업의 가치를 간과해 한진해운 위기 사태에 적절히 선제 대응하지 못한 대가는 이같이 막대했다. 아무튼 그동안 국내 120개의 크고 작은 선사가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지원을 받았다. 최대 수혜 업체는 2019년 2만 3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 2020년 1만 6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 8척 확보 등에 금융 지원을 받은 HMM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HMM을 국내 1위, 세계 8위의 선사로 키우느라 수혈한 공적자금을 포함한 지원 금액은 모두 3조 원이 넘는다. HMM을 앞세운 한국 해운산업은 국가의 대규모 지원·투자에 힘입어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 등 국제 경쟁력을 한진해운 퇴출 이전 수준 가까이 회복할 수 있었다.

한진해운 퇴출 이듬해인 2018년 세계 컨테이너선 선복량 순위. 자료: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한진해운 퇴출 이듬해인 2018년 세계 컨테이너선 선복량 순위. 자료: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급성장한 HMM

HMM은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상선 시절이던 2011년부터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려 왔다. 글로벌 금융 위기에 따른 세계 해운업계 변화와 컨테이너선의 초대형화 추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까닭이다. 하지만 HMM은 정부에 미운 털이 박혔던 한진해운과 달리 위기가 닥칠 때마다 국가와 채권단의 지원이 이뤄져 살아남았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찾아온 국제 물동량 증가, 해운 운임 급등 등의 대호황을 누리며 황금기를 맞았다. 2019년 영업손실이 2996억 원에 달했던 HMM은 2020년 영업이익 9810억 원을 기록하며 10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이듬해에는 7조 3775억 원이나 되는 영업이익을 올리고 지난해에도 영업이익 9조 9515억 원의 호실적을 거뒀다. HMM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국내 기업 중 최대치다. 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인 눈부신 실적으로 10년 불황을 한방에 털어 냈을 정도다.

HMM은 해운 재건 정책의 지원 덕분에 신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대거 확보해 선복량을 크게 늘리면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HMM은 선복량이 2010년 33만 7407TEU에서 최근 82만TEU로 급증해 세계 8위 선사로 도약했다. 호실적과 급성장에 고무된 HMM은 선복량을 오는 2026년 120만TEU까지 늘려 굴지의 글로벌 선사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다시 찾아온 글로벌 해운업 불황에 따라 국내외 선사들의 실적 하락이 우려되는 상태에서 HMM의 중장기 발전을 위한 경영 전략이 잘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HMM이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선인 2만 4000TEU급 ‘HMM알헤시라스호’. HMM 제공 HMM이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선인 2만 4000TEU급 ‘HMM알헤시라스호’. HMM 제공

■HMM 민영화

정부는 HMM의 경영 정상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로 구성된 채권단을 통해 정책자금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원 부분에 대한 출자 전환을 통해 HMM의 1, 2대 주주가 됐다. 두 기관이 보유한 지분은 각각 20.69%, 19.96%다. 산업은행이 금융위원회,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해양수산부 산하 공공기관인 점을 고려하면 HMM은 사실상 국유화된 셈이다. HMM이 세계 10위 경제대국 반열에 올라선 선진국인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해 온 K해운을 대표하는 대형 선사가 된 만큼 새 주인을 찾는 민영화 추진에 많은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HMM 매각 작업은 2016년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이 선사를 현대그룹한테서 넘겨받은 지 7년 만이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HMM 매각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건 부실했던 이 회사가 장기간에 걸친 체질 개선 노력 끝에 정상 기업으로 거듭났다는 판단이 확실하게 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매각을 위한 입찰 대상은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의 합산 지분 40.65%다. HMM 보통주 1억 9879만 156주와 CB(영구전환사채)·BW(신주인수권부사채) 전환분 2억 주다. 이를 지난 7일 증시의 HMM 주가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6조 9429억 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매각 대상 주식의 시가와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감안할 경우 매각가는 적어도 6조 원대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2021년 5월 27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개최된 신조 선박 'HMM라온호' 명명식. HMM 제공 2021년 5월 27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개최된 신조 선박 'HMM라온호' 명명식. HMM 제공

■인수 관심 기업

최소 6조 원대로 예상되는 ‘쩐의 전쟁’에서 HMM을 인수할 승자는 누가 될까? 지난해 여러 차례 HMM 매각설이 시기의 적정성 논란을 빚으며 나돌 때만 해도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글로비스, 포스코, CJ그룹, LX그룹의 LX판토스 등 굵직한 재벌 기업의 이름이 인수 후보로 거론됐다. 당초 HMM의 엄청난 몸값 때문에 인수전은 풍부한 현금을 갖춘 대기업들의 대결이 될 것으로 점쳐졌던 게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인수 의사를 밝힌 곳은 SM상선을 보유한 SM그룹과 하림그룹, 동원그룹 등 중견 대기업뿐이다. 의류 수출업체인 글로벌세아도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 들어 글로벌 해운 경기 침체 여파로 HMM의 실적과 주가가 동반 하락한 데다 향후 해운업의 불확실성마저 커지면서 HMM 인수전은 생각보다 미지근한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수 의향이 있는 SM·하림·동원그룹은 각각 해운업이나 물류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HMM의 경영권을 획득한다면 기존 사업을 더 키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세 기업은 M&A로 사업을 확대하며 사세를 키운 공통점도 갖고 있다. 하림그룹은 2015년 국내 최대 벌크선 운송사 팬오션을 인수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SM그룹이 현재 HMM의 지분 6.56%를 가진 3대 주주라는 점에서 인수를 원하기보다는 보유 주식의 주가를 방어할 목적도 있어 보인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SM그룹이 HMM 인수 자금으로 책정한 4조 5000억 원은 HMM 매각 예상가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게 이러한 의견이 나온 배경이다.

2021년 세계적인 물류대란으로 처리되지 못한 컨테이너가 잔뜩 쌓인 부산항 부산신항 장치장. 부산일보DB 2021년 세계적인 물류대란으로 처리되지 못한 컨테이너가 잔뜩 쌓인 부산항 부산신항 장치장. 부산일보DB

■바람직한 매각은

현재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면 정부의 HMM 매각이 순항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세계 해운업이 침체로 돌아서고 올해부터 HMM의 실적도 하락하고 있어 선사의 가치와 매력도가 떨어질 수 있는 시기여서다. HMM 인수 예비입찰까지 아직 기간이 남아 있어 재벌 기업의 참여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인수 의지를 드러낸 몇몇 기업의 자금 동원 능력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렇다고 충분한 인수 자금 확보를 위해 사모펀드 등 재무적 투자자(FI)와 손을 잡는 방법은 국민의 혈세가 투입돼 회생한 HMM의 경영 정상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HMM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더라도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승자의 저주란 M&A 경쟁에서 이겼으나 과도한 비용이나 대가를 치르는 바람에 인수 기업이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을 말한다. 매출 정점을 찍고 몸값이 최대로 높아진 선사를 무리해서 인수했는데, 해운업계 불황으로 실적 악화가 이어진다면 뒷감당이 힘들 수밖에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할 테다.

이처럼 우려스러운 조건 속에서도 산업은행은 HMM 매각을 성사시키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산업은행이 그간 주도해 온 기업 구조조정 대부분이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따라서 HMM 매각마저 차질을 빚거나 무산된다면 국책은행의 책임을 비난하는 여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게 분명하다. 이 같은 이유로 해운 업황이 좋고 HMM의 기업 가치가 높게 평가됐던 지난해에 매각을 추진해 최대 이익을 실현하지 않은 걸 아쉬워하는 시각이 있다. 잘못된 생각은 아니지만, 매각 이익의 극대화에 치중하는 건 지양해야 마땅하다. HMM 매각은 단순히 한 기업을 팔아 치우는 일이 아니고, 한국 해운업의 흥망은 물론 나라 경제와 관련된 중차대한 사안이다. 정부가 HMM에 공적자금을 대대적으로 지원한 목적도 회사를 비싸게 팔아 차익을 많이 남기는 게 아니라 국가와 우리 기업들을 위한 글로벌 국적선사를 육성하는 데 있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이달 5일 김인현 고려대 교수의 해상법연구센터 강연회에서 유창근 전 현대상선 사장이 강조한 말을 매각 과정에서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해운업에 대한 전문성과 애정을 가진 이가 HMM을 인수해야 회사를 키워 나가며 기간산업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HMM은 앞으로 해운업의 불확실한 업황, 2M 동맹 해체에 따른 새로운 경쟁 체제 등 만만치 않은 글로벌 해운업계의 풍랑을 잘 헤쳐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HMM에게 좋은 주인을 찾아 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강병균 논설위원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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