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승’ 낙인 걷어내고 ‘개혁가’ 신돈 재평가 나선다
김현우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창녕 신돈역사연구회 책 출간
내달 9일 영광도서 출판기념회
화엄십찰 비슬산 옥천사가 있었던 창녕 옥천사지 유적. 경남신문 제공
600년 이상 요승이란 낙인 속에서 온갖 허물을 지닌 타락한 인물이자 고려 왕조를 멸망케 한 장본인으로 꼽히는 신돈(?~1371)을 재평가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출간된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도서출판 경남신문)는 개혁가 신돈에게 씌워진 억울한 누명을 걷어내고자 한다. 책 제목의 ‘편조(遍照)’는 승려 시절 신돈의 법명이다.
먼저 경남 창녕을 중심으로 한 움직임이 주목된다. 신돈은 영산 신씨로 경남 창녕 사람이다. 이번 책은 창녕의 ‘신돈역사연구회’가 출간한 것이다. ‘신돈역사연구회’는 2017년 ‘신돈사상연구회’로 설립됐다가 더욱 포괄적으로 신돈을 재조명하자며 올해 이름을 바꾼 것이다. 김기섭 전 부산대 총장이 이사장, 창녕의 신용태 씨가 회장을 맡고 있다.
신돈역사연구회는 2017년 한국중세사학회와 공동으로 ‘창녕과 신돈, 개혁의 길’ 학술대회를 개최했으며 그간 신돈 관련 여러 행사·기념사업을 벌였고, 2020년 장편소설 <신돈의 하늘>도 출간했다. 이어 이번에 창녕 출생의 김현우 소설가가 지역신문에 쓴 글을 모아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를 낸 것이다. 김 소설가는 경남소설가협회장을 지냈으며, 경남문화상, 경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고려사> 45권 ‘반역전’에 실린 ‘신돈전’. 경남신문 제공
이 책의 핵심적 입장은, 고려를 무너뜨린 조선 왕조 세력이 새 왕조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신돈을 요승으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김 소설가는 “조선 건국 60년 만에 나온 <고려사> <고려사절요>는 우왕과 창왕이 공민왕 핏줄이 아니라 신돈 핏줄이라는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 ‘신우신창설(辛禑辛昌說)’로 역성혁명을 정당화했다”고 말했다. 우왕 창왕을 아예 ‘신우’ ‘신창’으로 칭하면서 가짜 왕을 내쫓을 수밖에 없었다는 ‘폐가입진’의 논리가 그것이다. 가짜 왕을 낳은 요승이 신돈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우왕은 공민왕의 아들로 ‘신우신창설’은 가공된 논리라는 데 거의 합의를 이루고 있다. ‘신우신창설’은 우왕 재위 시절에도, 또 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반란을 일으켜 우왕을 폐위시키고 최영을 죽일 때도 제기되지 않았다. 창왕이 들어선 그 이듬해인 1389년 11월 ‘이성계 암살 사건’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 주장이 나왔으며, 이후 역사는 창왕 폐위, 우왕과 창왕 두 왕의 시해, 나아가 결국 조선 건국까지 급격하게 내달았다.
공민왕의 위임 정치에 의해 신돈이 전일적 권력을 행사한 것은 6년여(1365~1371)였다. 신돈의 개혁 정치는 신돈을 부정한 <고려사>조차 “온 나라가 기뻐했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신돈은 공민왕도 어떻게 하지 못한 벌족과 세신 등 기득권 세력을 제압했고, 그들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본 주인에게 돌려주는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다. 신돈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이색 정몽주 정도전 등 신흥 유신을 대거 기용했는데 나중에 이들에 의해 부정당하는 냉혹한 역사의 아이러니도 벌어진 것이었다.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경남신문 제공
책은 신돈을 파격적으로 등용했고 전격적으로 처형한 공민왕에 대한 커다란 아쉬움을 표한다. 공민왕의 과오는 굳은 맹세를 내팽개치고 신돈을 반역자로 몰아 처형한 것과, 아들 왕우의 출생을 거들떠보지 않은 것, 이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그러한 질정 없고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 결국 새 왕조 이성계 세력에게 유리한 변수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공민왕도 신돈 처형 3년 뒤 파행·기행을 일삼다 암살당하고야 만다.
책은 신돈의 출신을 ‘옥천사 여종(婢)의 아들’이란 데서 ‘영산현 큰 가문인 신씨 집안의 아들’로 바로잡는다. 우왕 어머니 ‘반야’에 대한 고증에도 공을 들인다. 반야는 여종도, 신돈의 숨겨놓은 첩도 아니었으며, 외려 양가의 딸로 신돈의 조카뻘이었다고 밝힌다. 신돈의 유모 박씨가 재가해서 낳은 아들이 강성을이었는데 신돈의 동생뻘인 강성을의 딸이 강반야였다는 것이다. 반야를 신돈의 첩으로 보고, 그 아들 우왕을 신돈의 자식으로 보는 것은 ‘패륜 조작’이라는 것이다.
신용태 회장은 “신돈이 성장한 창녕 옥천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이었다”며 “옛 터 800여 평과 각종 석물이 확인되는 옥천사를 복원하는 것은 신돈 신원 사업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신돈역사연구회는 9월 9일 오후 2시 부산 영광도서에서 신돈 재평가 움직임을 확산하자는 뜻을 담아 이 책의 출판기념회를 연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