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3代 “할아버지는 3년 옥고, 손자는 3년 복무…정당한가?”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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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 기간 현역병 2배인 36개월 유지
복무시설 부족으로 소집 대기도 2년 이상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가 처음 시행된 2020년 10월 26일 오후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의 입교식이 열린 가운데 입교생들이 입교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가 처음 시행된 2020년 10월 26일 오후 대전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의 입교식이 열린 가운데 입교생들이 입교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한국 현대사에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80여 년 전이다. 1939년 6월, 일본 천황 숭배와 징병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한국 신도들이 치안 유지법 위반과 불경죄로 체포됐다. 이후 1945년 8월 해방되기까지 최소 66명의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평균 4년 6개월간 복역했고, 그중 6명은 옥사했다. 일명 ‘등대사(燈臺社) 사건’의 전말이다. 정부가 펴낸 ‘한민족 독립운동사’에는 이 사건이 항일운동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죄인 취급을 받았다. 헌법재판소에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리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2018년이 되어서야 징역형을 면할 수 있었다. 2020년 10월부터 시행된 대체복무제는 어느덧 3주년을 앞두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옥태민(62) 씨는 아버지처럼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다. 지금은 그의 아들도 병역거부로 대체복무 중이니 3대째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옥 씨의 부친은 ‘등대사 사건’을 통해 항일 투사로 인정받았지만, 옥 씨는 투옥을 면치 못했고, 아들 규빈 씨는 36개월에 달하는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

옥 씨는 우선 “옥고를 치르신 아버지의 신념과 제 아들이 가진 신념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과거 아버지는 일본에 대항한 투사로 인정받았다. 부친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서는 적용할 혐의가 없어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됐고, 몇 년 후에 정식 재판을 받은 뒤 3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로부터 80년도 더 지난 지금 제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한 신념을 지킨다는 이유로 똑같은 기간 복무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때 적용된 3년이라는 기간이 현재에도 비슷하게 유지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현역 장병의 2배에 달하는 복무기간은 가혹하다”고 호소했다. 내년 2월이면 대체복무를 마치는 아들 규빈 씨는 올해 여름 열린 여호와의 증인 부산지역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가족과 만났다고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 옥살이를 한 옥태민 씨(맨 오른쪽)와 가족들이 대체복무 중 휴가를 나온 아들 옥규빈 씨(가운데)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옥태민 씨 제공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 옥살이를 한 옥태민 씨(맨 오른쪽)와 가족들이 대체복무 중 휴가를 나온 아들 옥규빈 씨(가운데)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옥태민 씨 제공

대체복무는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현역·예비역·보충역의 복무를 대신해 교도소 등 대체복무기관에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이다. 2019년 제정된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은 대체복무요원의 복무 기간을 육군 현역병의 2배인 36개월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복무기간이 징벌적 성격을 띠고 있어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대체복무요원의 합숙 복무기간을 6개월 범위에서 단축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당시 국방부는 이에 대해 “대체복무요원의 복무기간 조정은 현역병 복무기간 조정과 연계된다”며 “병역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조정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이에 인권위는 “현역병의 복무기간이 단축됐는데도 국방부가 대체복무요원에 대한 복무기간을 조정하지 않는다면 동일하게 헌법상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이들이 차별적으로 대우받아 평등권이 침해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7월에는 병무청 대체역심사위원회도 대체복무 기간을 27개월로 줄이자는 내용의 대체복무 개편방안을 병무청에 전달했다. 개편안에는 복무 장소를 합숙시설이 구비된 소방서나 119안전센터로 확대하는 방안 등도 담겼다.

이에 대해 병무청은 “독립기구인 심사위에서 제안한 내용일 뿐이고 실제 집행될지는 국방부 등 유관기관과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대체복무와 관련해 100건이 넘는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판단을 보류하고 있으며, 헌재 결정 방향과 일치시켜 나가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역시 “대체역복무제도 관련 헌법소원이 다수 제기된 상황을 고려해 이 제안을 신중히 검토할 예정”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놨다.

양심·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국가는 대만, 그리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핀란드, 스위스 등 20여 개국에 달한다. 이들 국가에서 시행하는 대체복무제도 전반적으로 복무기간이 현역병보다 길지만, 한국처럼 2배에 달하는 국가는 드물다.

그리스는 15개월(현역 9~12개월), 스위스는 390일(현역 260일) 등 현역의 1.5~1.7배 수준이고 복무방식도 합숙이 아닌 출·퇴근이다. 1931년부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핀란드는 복무기간이 347일로 현역병(최소 165일)의 약 2배에 달하지만, 사회복지·소방 등 치안 분야, 삼림 등 자연보호 분야 등에서 출·퇴근 방식으로 복무한다.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한다는 신청서만 내면 별도 심사 없이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페카 하비스토 핀란드 외무부장관도 대체복무자 출신이다.

대체복무 기간과 관련해 국제법 수준의 강제조항 규범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이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은 현역 복무기간의 1.5배이다. 국제 인권 규범은 대체복무 기간이 아무리 길더라도 ‘현역 복무기간의 1.5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밝혔고,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는 1.5배에서 2배였던 회원국들에게 ‘징벌적’이라고 지적해왔다. 유럽평의회 사회권위원회는 “대체복무 기간은 군 복무 기간의 1.5배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대체복무 심사부터 실제 복무 시작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도입된 지 3년이 다 되어 가지만, 정작 이들을 수용할 시설이 태부족해 소집 대기에 길게는 3년까지도 걸리는 실정이다.

대체복무를 앞두고 있는 황민혁 씨는 “대체복무자들은 대부분 2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이를 복무기간과 합하면 5년이 넘는다. 20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간”이라며 “저도 19살인 2018년 6월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25살인 현재까지 복무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긴 대기 시간도 하루빨리 조정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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