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6년 만의 민방위훈련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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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월 25일. “앵앵앵~ 지금은 훈련이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수도권에 민방위본부의 다급한 방송과 함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북한 미그19 전투기가 남한 영공을 침범해 남하하자 공습 위험을 알리는 경계경보가 국내에서 처음 발령된 것. 미그기 조종사 이웅평 상위(대위)가 귀순 의사를 밝히면서 소동은 끝났지만, 국민들은 잠시 전쟁이 터진 줄 알고 공포에 휩싸였다. 같은 해 8월 7일 중국군 비행사가 우리나라로 미그21기를 몰고 와 망명을 요청하는 과정에선 사상 최초의 공습경보가 전국을 강타했다가 17분 뒤 해제됐다. 이날 ‘경기도 일원 적기 공습 중’이란 TV 자막까지 떠 온 국민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공습경보와 경계경보는 항공기 등을 이용한 공중 총격과 폭격이 발생하거나 공격이 예상될 때 각별한 주의와 긴급 대피를 주문하는 조치다. 지금까지 모두 14차례 있었다. 지난해 11월 2일 북한이 동해상에 쏜 단거리 탄도미사일 세 발 중 하나가 북방한계선(NLL) 이남 해역에 떨어져 인근 울릉도에 공습경보가 발령된 게 가장 최근 일이다. 2010년 서해 연평도에선 북한 포격 도발로 3차례나 공습경보 또는 경계경보가 내려졌다.

이 같은 실제 공습에 대비한 민방위훈련이 23일 오후 2시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 화해 분위기와 코로나19 대유행을 이유로 2017년 8월 이후 중단됐다가 6년 만에 부활했다. 국민이 참여하는 이날 훈련은 공습경보, 경계경보, 해제 순으로 20분간 진행된다. 경보 사이렌이 울리면 사람의 이동과 차량 운행이 통제된다. 즉시 가까운 민방위 대피소나 안전한 지하 공간을 찾아 피해야 한다.

민방위훈련의 재개는 실전 같은 연습의 필요성 때문이다. 올 5월 31일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당시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잘못 발령하고 재난문자를 받은 시민들은 영문을 몰라 허둥대며 위기 대응에 허점을 드러냈다. 반면 북한의 핵 위협과 미사일 도발은 잦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의 공습 수단이 항공기뿐 아니라 미사일, 드론 등으로 다양해지고 파괴력이 엄청나다는 걸 보여 주며 평소 대응력을 키우는 훈련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상기후로 재난의 빈도와 강도마저 높아졌다. 이번 훈련이 느슨해진 민방위 체계를 재확립하고 국민들은 공습과 재해에 동요 없이 신속히 대처하거나 대피하는 요령을 숙달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나라와 국민의 생명·재산을 지키려는 훈련인 만큼 자발적 참여와 불편 감수가 요구된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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