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1부두 ‘역사공원 보존 협약’ 어기고 도서관 강행
2021년 해수부·항만공사와 체결
복합문화공간 다른 곳 설치 합의
시 “훼손 없이 신축 악영향 없앨 것”
30일 시 세계유산위원회 ‘결론 보류’
전문가들, 문화유산 중요성 강조
“영국 리버풀, 개발 후 자격 박탈”
속보=부산항 1부두에 도서관 건립을 추진(부산일보 29일 자 1·3면 보도)하고 있는 부산시가 2021년 말 부산항 1부두를 역사공원으로 보존하고 복합문화공간 등 대체 시설은 다른 곳에 짓기로 업무협약을 맺은 사실이 확인됐다. 시가 업무협약 조항을 어기고 도서관 건립에 앞장선 셈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포함된 유산구역에 건물을 신축하면 잠정목록에서 철회될 수 있다는 문화재청과 전문가들의 권고와 지자체에 무상으로 부지를 내어줄 수 없다는 해양수산부, 부산항만공사의 입장마저 무시한 채 부산시가 도서관 건립을 강행하는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30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시는 2021년 12월 23일 부산항만공사, 해양수산부 등 3개 기관이 ‘부산항 1부두를 역사공원으로 변경해 보존하고, 1부두 복합문화공간 대체 공원시설은 문화공원 내에 설치하는 것으로 한다’ 등 5개 조항으로 구성된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 업무협약서’를 체결했다.
협약서에는 강준석 부산항만공사 사장, 문성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과 함께 박형준 부산시장이 서명했으며, 입회자로 최인호·안병길 두 국회의원이 서명했다. 협약서 첫 조항은 부산항 1부두를 보존하고, 복합문화공간은 1단계 재개발구역 내 다른 6곳의 문화공원 부지 내에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앞서 부산시는 2020년 6월 부산항 1부두의 장소적 가치와 의미를 살려 활용하기 위해 △기존 물류창고 철도정류장 조성 △추가 창고 복원 및 복합문화공간 조성이라는 두가지 안을 중심으로 활용 방안 마련에 나섰다. 그해 9월에는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 주무기관인 부산항만공사 측에 부산항 1부두에 항만시설 조성을 해줄 것을 요청했고, 항만공사는 이를 해수부와 협의해 당초 역사공원 부지 설계안에 시설 조성이 가능하도록 설계 항목을 추가했다.
같은 해 12월 말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계획(9차) 변경 과정에서 1부두 내 복합문화공간 조성안이 반영돼 기존 창고 리모델링과 새로운 항만시설 신축이 가능하게 됐다. 이듬해인 2021년 4월 부산항 1부두 역사공원 설계안이 완료됐고, 여기에 항만시설 신축, 즉 복합문화공간 조성 계획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 시점에 부산시청 내에 복합문화공간 조성에 대한 부서 간 이견이 발생했다. 부산항 1부두를 포함한 9곳에 대해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추진되고 있었고, 유산 보호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부산항 1부두에 대한 부산시 등록문화재 지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부산항만공사는 복합문화공간 조성 계획 추진 여부를 시에 질의했고, 이 과정에서 시는 유산 보호를 중시하는 문화유산과와 도시 재생을 앞세운 도시재생정책과 사이에 최종 조정안으로 ‘부산항 1부두의 보존조치 필요, 시 문화재 등록 후 착공 요청’으로 정리해 답변했다. 부산항 1부두의 보존을 우선에 두고, 시설 신축은 등록문화재 지정 이후 시작하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더욱이 그해 4~7월 3개월간 진행된 해양수산부의 감사 결과, 북항 재개발사업이 종료되면 지자체로 귀속될 항만 부지에 시설물을 조성하겠다는 시 사업에 정부가 비용을 지급할 수 없다며 부산항 1부두 내 시설 신축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해수부 감사와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로 인해 부산항 1부두 내 복합문화공간 조성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하지만 중구 주민 등 시민들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중구청은 물론 중구의회는 중구에 주민들이 누릴 문화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북항재개발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개발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왔다. 구의원들은 5분발언 등을 통해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으로 공원시설 건립을 기대했던 주민들의 뜻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끝에, 시는 부산항만공사, 해수부와 함께 1부두는 역사공원으로 보존하는 대신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은 다른 공원 부지에 짓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30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열린 시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는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보존·관리 계획 관련 재심의 결과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보류’로 끝났다. 회의에 참석했던 전문가들은 부산의 근현대 문화유산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부두 내 도서관 건립을 강력 반대했다. 앞서 문화재청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포함된 유산구역에 건물을 신축하면 잠정목록에서 철회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던 강동진 경성대 교수는 "기부자를 만나 위원들이 직접 설득해보겠다는 언급도 했지만 부산시는 강행 입장을 고수했다"면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렸다가 개발사업 등으로 목록에서 철회된 사례가 있어 부산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1년 7월 중국 푸저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영국 리버풀, 해양산업도시'가 세계유산 자격을 박탈당했다. 세계유산 지정 지역 안팎에서 축구장 건설 등 개발사업을 벌이면서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전달하는 속성이 돌이킬 수 없이 손실됐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1부두에 복합문화공간을 짓기 위한 법적인 근거 마련을 위한 업무협약이었고, 최대한 훼손 없이 신축해서 세계유산 등재에 영향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