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그래도, 사랑해.”… 자이니치의 아픈 삶이 절규하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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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젓한 아버지에게/후쿠자와 우시오

자이니치 2세 소설가 장편소설
분단된 조국, 일본 밀항한 스기하라
일본인 기요코와 운명적인 만남
한국 정치 상황에 ‘비존재’ 삶 살아

자이니치와 디아스포라 문학 ‘주목’

일제강점기의 식민 상황, 해방 이후 남북 분단의 정치적 굴곡, 일본 사회의 차별이 배태한 자이니치 삶에 대한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는 차원에서 장편소설 <버젓한 아버지에게>는 주목된다. 자료 사진은 역시 자이니치 문제를 다룬 소설 원작의 드라마 ‘파친코’ 스틸 컷. ⓒ애플TV 일제강점기의 식민 상황, 해방 이후 남북 분단의 정치적 굴곡, 일본 사회의 차별이 배태한 자이니치 삶에 대한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는 차원에서 장편소설 <버젓한 아버지에게>는 주목된다. 자료 사진은 역시 자이니치 문제를 다룬 소설 원작의 드라마 ‘파친코’ 스틸 컷. ⓒ애플TV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 장편소설 <버젓한 아버지에게>에서 이 말은 가슴 아릿하고 절절하게 울린다. 자이니치(在日) 아픈 삶의 총량이 그대로 얹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자이니치 2세 소설가 후카자와 우시오(57)의 2015년 작품이다. 재일코리안 문학에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알렸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다.

“미안해”는 자이니치라는 차별적 신분이 빚는 어쩔 수 없는/없었던 상황에 대한 아픈 마음의 표현이다. 일본에서 한국/조선 이미지는 문화적으로 뒤떨어져 있고, 스마트하지 않고, 일본과 역사적으로 복잡하고 왠지 지겹다, 라는 것이다. 소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머니는 늘 조선인과 사귀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개나 고양이는커녕, 가축인 돼지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게 불가촉천민 같은 신세의 자이니치다.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는 이 소설 주요 대목에서 세 번 나온다. 그 말은 상대에게 대놓고 하는 말이 아니라 혼자 속으로 찢어질 듯 아프게 삼키는 말이다. 1960년대 ‘스기하라’ 는 조국 민주화의 비원을 품고 경상도에서 일본으로 밀항한 활동가다. 해방이 돼도 조국은 두 동강 난 채 부패와 탄압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그는 네다섯 개의 이름을 지닌 ‘비존재’로 숨어다닌다.

그러다가 1964년 도쿄올림픽이 개막하던 날, 일본인 처자 ‘기요코’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결혼 결심을 한 두 사람. 그러나 기요코 부모는 “더럽다”며 집에서 내쫓던 스기하라를 향해 소금까지 뿌린다. 스기하라는 둘이 처음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날, 둘의 운명을 예감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조국의 말을 혼잣말로 속삭였던 것이다.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었고, 그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비련의 사연이다.

한국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바쁘게 활동하며 1~6개월, 그러다가 1년에 한 번꼴로 집에 오던 스기하라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잠적한다. 혼자 딸을 키우며 악착같이 살아 버젓한 사회적 신분까지 쟁취한 기요코는 나중에 중의원 선거에 출마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미혼모이고, 외동딸의 아버지는 북조선 공작원이고, 젊은 선거 참모와 불륜 관계라는 흑색선전에 휩싸이며 낙마를 결심한다.

어릴 적 불분명한 기억 속 아버지를 언젠가 만나리라는 희망을 지녔던 외동딸 ‘도모미’. 엄마의 낙마 후 딸은 혼돈 속에서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그리며 모아놓았던 소중한 모든 것들을 휴지통에 버리고 가출한다. 텅 빈 딸 방에서 엄마 기요코는 휴지통에 버려진 그것들을 꺼내면서 눈물을 삼키며 그 위에 손가락으로 단어를 그려나간다.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 기요코가 쓴 그 단어는 스기하라가 말한 그대로의 한국어 발음이다.

장편소설 <버젓한 아버지에게>. 전망 제공 장편소설 <버젓한 아버지에게>. 전망 제공

3번째 그 말이 나오는 곳은 도쿄에서 소설 장소를 옮긴 오사카다. 이곳에 스기하라가 숨어 살았던 것이다. 오사카의 한 공원에서 스기하라와 외동딸 도모미, 스기하라의 오랜 친구 3명이 만나는 장면은 찡하다. 그런데, 도모미는 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아직 ‘자신의 자리’를 못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스기하라의 고백이 이어진다. 스기하라는 1974년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과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한다. 단지 문세광과 아는 사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그는 저격 사건 이후 일본 공안과 한국 중앙정보부의 맹렬한 추격을 받으면서, 기요코와 딸이 연좌되는 것을 걱정해 잠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후 스기하라는 또 다른 신분의 ‘비존재’로 오사카에서 그를 숨겨준 이의 딸, 지금의 부인과 살게 됐다고 한다.

스기하라는 친구에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와서 남긴 것은 단 하나, 피를 나눈 딸뿐”이라고 말한다. 그 딸이 눈앞에 있는데…. 그러면서 언젠가 딸을 만나면 주리라고 간직한 선물을, 그 자리에서 친구의 딸이라고 자신을 감춘 도모미에게 건넨다. 스기하라는 도모미에게 오랜 선물을 건네며 혼자 한국말을 중얼거린다.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 그것으로 ‘건너지 못한’ 몇십 년의 아픔과 사연 일부가 ‘찢어진 삶’의 속울음으로 맺어진다.

스기하라는 그 석 달 후 죽는다. 2014년 도모미는 한국 전문가로 변신하는 길에 들어서고 화해한 엄마, 자신의 딸과 한국을 찾는다. 북송사업 때 북조선에 건너간 자이니치 일가족이 지어준 ‘도모미’란 이름에는 ‘벗 붕(朋)’ 자가 들어 있다. 이 소설을 옮긴 이재봉 부산대 교수는 “비존재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 동질적이라 믿어지는 내부를 향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낸다”며 재일조선인 문학의 새로운 영역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다. 후쿠자와 우시오 지음/이재봉 옮김/전망/320쪽/1만 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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