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만든 책은 어떨까?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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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만든 ‘아티스트 북’
책장 넘기면 소설가의 코 나오고
모피 코트 한 벌을 분해한 책까지
해운대구 OKNP, 10일까지 전시

엘뷔 봉뒬레 'SO-FAR-SO-GOOD'. ThreeStarBooks(OKNP) 제공 엘뷔 봉뒬레 'SO-FAR-SO-GOOD'. ThreeStarBooks(OKNP) 제공

예술로서의 책, 책으로서의 예술.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아티스트 북’ 전시가 부산에서 열리고 있다. ‘BAAA:Books As Art As’전은 작품의 재료 중 하나로 책이 있고, 작가들이 예술과 책의 만남을 어떤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 쓰리스타북스, 미국 프린티드매터, 와그너 부부가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출판사 웨스트레이히 와그너, 한국 미디어버스 등의 아티스트 북이 소개된다.

아티스트 북은 20세기 초 전위적 예술가들에 의해 초기 형태가 만들어졌다. 작가들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대신 책과 출판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책은 계층 간의 불평등을 깨는 매체로 최적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의 미술대학에 아티스트 북 전공 과정이 생겼고, 뉴욕현대미술관은 매년 프린티드매터와 함께 아티스트 북 페어를 개최해 많은 컬렉터를 모으고 있다.

존 발데사리 'NOSE PEAK'. ThreeStarBooks(OKNP) 제공 존 발데사리 'NOSE PEAK'. ThreeStarBooks(OKNP) 제공
마우리치오 카텔란 'Die.Die More.Die Better.Die Again'. ThreeStarBooks(OKNP) 제공 마우리치오 카텔란 'Die.Die More.Die Better.Die Again'. ThreeStarBooks(OKNP) 제공

이번 전시는 존 발데사리, 마우리치오 카텔란, 소피 칼, 에이에이 브론슨, 권오상, 김선우 등 국내외 작가의 아티스트 북을 소개한다.

미국 개념미술가 존 발데사리의 ‘노즈 피크’는 책 속에 코가 들어있다. 두툼한 책장을 하나씩 넘기면 러시아 문학가 니콜라이 고골의 코가 산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고골은 자고 일어나니 코가 사라졌다는 내용의 단편소설 <코>를 썼다.

2023년 상반기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진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만든 책도 볼 수 있다. 전시된 ‘쓰리-볼륨 세트’는 2008년, 2010년, 2011년에 나온 3권을 엮은 책이다. 책이라고 하지만 한 장씩 분리되어 있어 각각이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한다. 예술가가 만드는 책은 얼마나 남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듯 자신의 작품 사진 대신 작품 그림을 넣고, 타이핑이 아닌 손 글씨로 글자를 넣었다. 혁명적인 예술가의 혁명적인 아티스트 북은 관람객의 감탄사를 부른다.

박형진 '까마귀와 까치'. 미디어버스(OKNP) 제공 박형진 '까마귀와 까치'. 미디어버스(OKNP) 제공
디자이너 듀오 슬기와민 '나는 왜 출판하는가'. 벽에 붙은 그래픽을 같은 크기로 잘라내서 책으로 만들었다. 오금아 기자 디자이너 듀오 슬기와민 '나는 왜 출판하는가'. 벽에 붙은 그래픽을 같은 크기로 잘라내서 책으로 만들었다. 오금아 기자

세스 프라이스는 펼칠 수도 없는 하나의 덩어리로 된 책을 선보인다. 사이먼 후지와라는 모피 코트 한 벌을 분해해 책으로 만들었다. 라이언 갠더는 책장 하나하나를 벽에 작품처럼 걸 수 있는 아티스트 북을 만들었다. 태국계 미국 작가인 리크리트 티라바니자는 지인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것을 엮어 책의 주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데몬스트레이션’을 전시한다.

국내 아티스트북 섹션에서는 2021년 독일 아트북 재단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한 엄유정의 ‘푀유’, 작업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오동나무의 색을 일기를 쓰듯 6개월에 걸쳐 기록한 박형진 작가의 ‘까마귀와 까치’가 전시된다. 디자이너 슬기와 민이 책 표지처럼 생긴 벽면 그래픽을 퍼즐 조각처럼 잘라서 만든 책까지 예술가들의 예술적 책 실험을 보는 재미가 있다.

국내외 아티스트 북을 소개하는 ‘BAAA:Books As Art As’ 전시 전경. 오금아 기자 국내외 아티스트 북을 소개하는 ‘BAAA:Books As Art As’ 전시 전경. 오금아 기자

‘BAAA:Books As Art As’전은 부산 해운대구 그랜드조선 부산 4층에 위치한 오케이앤피 부산(OKNP·옛 가나부산)에서 오는 10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는 3000원(3세 이하·65세 이상·국가유공자·독립유공자 무료)이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부산의 독립서점 샵메이커즈와 서울의 더북소사이어티가 준비한 편집숍을 설치해 미술 관련 책을 전시·판매한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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