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영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버'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장병진 경제부 부동산팀장

올해 초 부산 한 지역의 부동산 분위기를 알아보려 부동산중개사무소에 들른 적이 있다. 중개사무소에서는 손님이 반가웠는지 냉큼 커피를 내줬다. 그러고는 어떤 지역을 보고 왔는지, 투자나 실거주 목적인지를 살뜰하게 물었다.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누던 소장은 지금은 적합한 물건이 없지만 좋은 물건이 나오면 꼭 연락을 주겠다며 연락처를 남기라고 했다. 연락처를 남겼더니 정말 물건이 접수될 때마다 문자를 보내줬다. 해당 물건은 주변 시세에 비해 어느정도 저렴하고 언제 입주가 가능하다는 상세한 부연 설명과 함께 말이다.

어느 순간 연락이 뜸해졌다. 너무 긴 시간 계약을 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락을 주던 세 군데에서 비슷한 시기에 연락이 끊겼다.

이런 말이 있다. 부동산 시장을 이해하려면 부동산중개사무소 소장의 태도를 보라라는 말이다. 당연히 친절이야 하겠지만 부동산 호황기와 불황기 때 친절의 깊이는 다를 수 있다. 2~3년 전 폭등기에는 부동산 소장들이 바빠 진득한 상담조차 어려웠다. 이것저것 대화가 길어질 것 같으면 “다음 약속이…”라고 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래서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커피를 마실 때는 단지 계약할 때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를 하던 시기였다.

한동안 손님이 뜸하다 최근 부동산은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서도 “이제 바닥 지난 거 아니야, 그럼 지금쯤 사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들이 늘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이미 매매가격이 오르고 있고 부산도 인기 매물을 중심으로 가격이 반등하고 있다. 분명히 극심한 하락세에서는 조금 벗어나는 분위기다.

여기에 올해 부산에 분양한 매머드급 두 단지인 두산위브더제니스 오션시티와, 대연 디아이엘이 완판을 기록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더 뚜렷해지고 있다. 대형 단지라 관심이 컸는데 ‘완판’을 기록하니 다들 놀라 다시 부동산앱을 켜고 서둘러 부동산을 찾는 듯하다.

누군가는 지금이 바닥이니 부동산 투자의 적기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데드캣바운스’라는 평가도 한다. 데드캣바운스란 죽은 고양이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튀어 오른다라는 뜻으로 급격한 하락 후 잠깐 상승한 후에 다시 하락하는 모양새를 일컫는다. 평가가 엇갈리는 것을 보니 투자가 어려운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부동산 시장의 시계가 흐린 만큼 중요해진 것은 자금 계획이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낸 다음 투자를 한다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끌어모은 영혼을 버티기 위해 이자를 어떻게 낼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여전히 금리는 높고 부동산 규제도 많은 상황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턱대고 투자를 했다가는 감당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앱과 인터넷을 뒤지며 좋은 물건을 찾고 현장을 방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끌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비교해야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부동산 투자는 대부분 일정 기간 이상이 필요하다. 게다가 투자액도 수억 원이 넘어가니 이자도 비싸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확실한 전망이 어려운 시기인 만큼 영끌을 ‘영버’(영혼 버티기)할 수 있는 장기 자금 계획은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