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자녀 vs 홈 프로텍터 [키워드로 트렌드 읽기]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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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合肥)시의 잡페어 행사장이 참가자들로 붐비고 있다. 지난 6월 중국의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1.3%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4일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合肥)시의 잡페어 행사장이 참가자들로 붐비고 있다. 지난 6월 중국의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1.3%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최근 중국의 치솟는 청년 실업률과 관련해 '전업자녀(중국어로 全職兒女)'라는 신조어가 알려져 국내에서도 화제다. '전업자녀 현상'은 구직난 심화로 고학력 청년들이 취업 활동을 보류한 채 집에 머무는 상태를 뜻한다. 다만 부모의 경제력에 자녀가 일방적으로 의존하진 않고 나름의 계약 속에 일정 급여를 받는 점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백수'와 약간의 차이는 있다. 고용된 집사처럼 식사·청소·운전 등의 여러 가사 업무를 보는 셈이다. 남들 보기에는 적어도 부모 속 썩이는 '등골 브레이커'는 면한 것 같은데, 현지에서도 사실상 '실업자'를 말로만 좋게 포장한 게 아니냐는 비판 역시 뒤따른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당장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한중일 청년이 한 자리에 모여 △ 일본 “먼저 인사드렸던 6년차 '자택 경비원'입니다. 서로 인사라도 나누시죠” △ 한국 “현직 4년차 '갓수'입니다. 이렇게 만나 뵈서 영광입니다” △ 중국 “5년차 '전업자녀'입니다. 집에서 시간보내기 바쁘실 텐데,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묘사한 글이 올라와 관심을 끌었다. 뭔가 비즈니스를 하는 듯 있어 보이는 말투를 쓰지만 실상은 '자택 경비원'과 '갓수' 역시 '전업자녀' 처럼 백수를 다르게 일컫는 표현이다. 즉 말끔한 정장을 입고 당당하게 인사를 나누는 세 청년 모두 실제로는 진짜 '○년차'도 아니었던 것.



10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20대 고용률은 61.4%로 1년 전보다 0.1%포인트(p) 하락했다. 20대 고용률이 하락한 건 2021년 2월(-1.7%포인트) 이후 29개월 만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구직자가 실업급여 신청 관련 서류를 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0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20대 고용률은 61.4%로 1년 전보다 0.1%포인트(p) 하락했다. 20대 고용률이 하락한 건 2021년 2월(-1.7%포인트) 이후 29개월 만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구직자가 실업급여 신청 관련 서류를 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당장 '자택 경비원'부터가 일본에서 2000년대 중후반에 나온 신조어로 이른바 '니트족(일할 의지도 없는 무직자)'들이 자학개그로 사용했던 표현이 널리 유행한 걸로 추정된다. 그나마도 최근엔 이 '자택 경비원' 시장을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 대체하는 바람에 거실에서 밀려나 '자기 방 경비원'으로 강등되기 일쑤다. '갓수' 역시 2010년대 중반 한국에서 탄생한 유행어로 백수의 앞 글자 자리에 신을 뜻하는 '갓(god)'을 조합했다. 일반 직장인들이 불만족스러운 급여와 스트레스에 허덕일 때, 백수들은 충분한 수면에 용돈과 불로소득으로 쾌적하고 여유 있는 생활까지 누리는 게 마치 신과 같다는 거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여기에 요즘의 '힙한' 분위기를 좀 안다면 10년이 다 된 '갓수'를 대신할 새로운 직업명으로 '홈 프로텍터(Home Protector)'를 써주는 게 대세란다. TV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 출연자들이 자신의 직업을 공개하는 장면을 한 유튜버가 '백수'에 빗대어 패러디하는 과정에서 나온 표현인데, 알고 보면 단순한 업무를 마치 대단하고 생소한 직종인양 근사하게 꾸며서 얘기하는 포인트를 짚어낸 게 누리꾼들의 공감을 샀다. 비슷한 예로 '유명 햄버거 체인점 알바'를 두고 '글로벌 외식 프랜차이즈기업 재직', '소매치기'를 두고 '머니 캐처(Money Catcher)'라고 변형하는 식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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