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치영 한국장기기증협회 회장 “더 많은 나눔 위해 장기 기증자, 국가 의사자 예우를”
재단법인 설립 이후 32년간 몸 담아
15만 명 기증 서약·339명 이식 결연
“중앙·지방 정부 활성화 대책 필요”
“아직도 장기 이식을 받지 못해 하루에 7명이 사망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아름다운 나눔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려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사)한국장기기증협회 강치영 회장이 장기 기증 운동에 몸 담은 지 올해로 32년이 됐다. 1991년 재단법인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발기인을 시작으로 평생을 장기기증 운동에 몸바쳐 왔다. 장기기증운동본부는 이듬해 출범했고, 강 회장은 당시에 간사를 맡았다. 그는 “그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시민운동에 대한 인식도가 낮았고, 장기 기증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할 때였다”면서 “홍보도 힘들었고, 피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 당시에는 화장 문화도 없었잖아요. 장묘 문화가 매장 문화인 데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유교적 신념 때문에 더 쉽지 않았죠.”
장기 기증으로 생명을 살렸다는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점점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퍼져가기 시작했다. 강 회장은 “당시 지역 신문이 많은 도움을 줬다. 기사 말미에 본부 번호를 실어줘서, 기사가 나가고 나면 또 한동안 장기 기증하겠다고 연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수십 년간 그를 움직이게 한 동력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이었다. 수여자가 귀했던 만큼, 기증자가 발생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갔다. 또 날짜나 시간을 정해놓고 발생하는 일이 아닌 만큼, 밤낮 없는 생활도 이어졌다. “그때만 해도 삐삐였죠. 새벽 1~2시에도 연락이 오면 바로 나갔어요. 시간이 지체되면 안 되니까 앰뷸런스를 타고 이곳저곳 참 많이도 다녔습니다.”
강 회장은 특히 1997년 성탄절날 세상을 떠난 정영주 양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그는 “정 양은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간호사를 꿈꿨던 아이였다”며 “악성뇌종양으로 12월 24일에 뇌사 판정을 받았는데 당시 가족들이 먼저 본부로 연락을 줘서 기증 의사를 밝혀왔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그날 정 양은 8명의 생명을 살렸다. 화장하는 날 어머니가 아이가 춥지 않게 내의를 입혀 보내고 싶다고 울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2000년 장기기증법률이 생기면서, 수여자와 공여자를 연결하는 일을 정부가 담당하게 됐다. 이후 한국장기기증협회는 장기 기증 문화 확산을 위한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장기 기증과 관련한 단편영화를 제작했고, 서포터스단을 운영하는 등 장기 기증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활동하면서 15만 명의 장기 기증 서약을 받았고, 339명의 장기 이식 결연, 103구의 시신을 기증했다. 강 회장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장기 기증자를 국가의사상자로 예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강 회장은 “장기 기증자는 자신을 희생해 수많은 생명을 살린다. 이들에 대한 예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나라에도 스위스·스웨덴 등 유럽 국가에서 도입한 ‘옵트아웃’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기 기증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잠재적 기증자로 보는 제도이다. 이에 앞서 중앙과 지방정부가 장기 기증 활성화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8일에는 부산시가 주최하고 한국장기기증협회가 주관한 ‘장기기증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강 회장은 “국민 인식도 그냥 따라오는 게 아니라 시너지를 끌어낼 동력이 필요하고, 이는 결국 예산과 제도에서 나온다”면서 “하늘이 허락하는 날까지 생명 나눔 운동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