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공교육과 잘 지내는 법
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직업적 특수성에 비춰 보면
헌신·책임감 등 삶의 가치관
교사에게서 더 크게 돋보여
공교육이 갖는 정성적 가치
서비스 관점으로 봐선 안 돼
긍정·신뢰로 역할 인정하길
누군가와 사랑할 때 서로 마음의 크기에는 차이가 없음에도 각자가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관계에 어둠이 드리우곤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상호관계 전문가인 개리 채프먼은 사람마다 사랑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주파수가 상대방의 주파수와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갈등이라고 진단한다. 즉, 상대를 무척 사랑하고 있음에도 그가 지닌 사랑의 주파수가 나의 주파수와 달라 내 사랑의 감정이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다.
개리 채프먼은 책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사랑의 주파수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어떤 사람은 인정하는 말을 들을 때 관계에서 충만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스킨십을 통해, 또 다른 사람은 선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다. 5가지 사랑법이 단독으로 존재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행위는 위의 속성을 모두 포함한다면 더욱 좋다. 하지만 개인에 따라 선호하는 사랑 표현 방식과 우선순위는 각자 다르게 나타난다.
5가지 사랑법은 사람이 지닌 가치관의 대표적인 범주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범위를 확장해 볼 수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진로를 고민하고 퇴사를 결정할 때, 그것이 인간관계가 아닌 직장과의 관계였지만, 이 책을 떠올렸다. 직업을 정하는 것은, 혹은 인생에 상당 시간을 보내는 직장과 맺는 관계는, 비록 대인관계는 아니지만 친밀한 관계만큼이나 많은 헌신과 책임감이라는 일종의 커미트먼트(Commitment)를 요구한다. 어떤 가치들이 내게 우선하며 직장은 내게 어떤 가치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합의점을 찾는 것이 직업적 행복에 기여할 것이다.
그렇다면 채프먼이 말한 5가지 사랑의 언어를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방향성으로 대칭시켜 해석하면, ‘5가지 인생의 언어’ 쯤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직업과의 관계에 나름대로 사랑법을 적용해 상상해 본다면, 인정하는 말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자아성장과 자아실현의 욕구다. 함께하는 시간은 소위 ‘워라밸’이라고 지칭되는 일과 삶의 균형과 시간적인 여유로움이다. 선물은 물질적이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보상이다. 봉사는 사회에 공익적인 가치를 나누고 실천하는 것이다. 스킨십은 조직 내에서 타인과 관계 맺으며 느끼는 소속감이나 네트워킹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교사라는 직업은 아마도 다른 사람보다 봉사와 스킨십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택할 것 같다. 봉사로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그들의 성장을 돕고 배움을 가르치며 보람을 얻을 것이다. 스킨십은 매년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고 동료 교사나 학부모와 관계 맺고 소통하며 사제간의 정을 나누고 소속감을 느낄 것이다. 물론 좋은 선생님, 존경하는 선생님이라는 인정하는 말도 중요할 것이고, 정시에 출퇴근하며 삶과 일이 균형을 갖추는 것도, 근로에 따른 적절한 보상도 중요할 것이지만, 다른 직업군보다도 공교육에 종사하는 교사라는 직업은 직업윤리 측면에서도 봉사와 스킨십의 가치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근래 교사의 고충을 반영하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연달아 이어졌고 지난주 공교육 멈춤의 날이 있었다. 앞서 사랑의 언어를 차용한 인생의 언어를 빌려와 사회적 가치관 차원에서 교권 위기의 문제를 떠올려보고 싶다. 오늘날 교사가 직업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하위에 두었던 가치라면 선물, 즉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보상으로 짐작된다. 지난 10년 동안 사기업의 임금인상과 비교하여, 공무원 임금구조를 따르는 교사의 처우는 실질적으로 해마다 악화되어 왔다.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위해 교사노조의 파업이 빈번한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 교사의 파업은 유례가 없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선물이라는 가치를 우선하는 쪽으로 변해 왔다. 그 결과 학부모와 학생은 공교육을 이해(利害)의 관점에서 서비스 거래처럼 여기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러나 사교육과 달리 공교육은 여전히 공공성과 봉사, 보람, 희생, 육성, 사회화, 인연과 같은 정량화하기 어려운 많은 가치를 포용한다. 공교육을 구성하는 관계 주체들 간에 주파수가 어긋나는 지점이다.
앞서 상대의 주파수를 알고 그것을 염두에 두고 배려해야 한다는 걸 이야기했다. 공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공교육이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공적 가치와 그에 맞는 적절한 관계의 언어가 고려되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공공성에 기반한 관계의 문법은 교육 당사자인 교사에게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사랑이든, 직장이든, 어떤 관계라도 폭언과 폭행, 갑질이 상호 간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약속이다. 사회적으로 교사의 역할을 긍정하고 인정하고 신뢰하고 나아가 존경하며 직업이 지닌 가치를 환기하는 노력은 공교육과 잘 지내는 가장 기초적인 사랑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