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통영 활어·굴 양식장 가 보니…어민, ‘소비 절벽’ 불안감에 꺼림칙한 ‘반짝특수’
오염수 직격탄 당장은 면해도
수산물 소비 증가 체감 어려워
우럭 등 활어 출어량 절반 그쳐
풍작에도 굴 양식장 근심 가득
본경매 시점조차 아직 못 정해
대일 수출 시장도 경쟁력 저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가 본격화되자 부산·경남 양식업계의 시름이 깊다. 경남권 최대 양식 활어 산지인 통영시 산양읍해상 가두리양식장. 김민진 기자
“남들은 반짝특수라는데 현실은 딴판입니다. 활어는 정말 심각해요. 이대론 정말 얼마 못 버팁니다.”
경남권 최대 양식 활어 산지인 통영시 산양읍 앞바다에서 우럭과 참돔 30만 마리를 사육 중인 황인수 씨는 ‘원전 오염수’ 이야기에 한숨부터 토해낸다. “정부에선 수산물 소비가 되레 증가했다지만 우리에겐 크게 와닿는 게 없어요.”
실제 걱정과 달리 오염수 방류를 전후해 다소 숨통이 트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던 직전과 비교할 때 도드라지는 착시효과일 뿐 여전히 평소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심지어 이달 들어선 이마저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밤잠을 설쳐 가며 겨우 고수온 위기를 넘겼더니 이제 오염수에 말라죽을 판이다. 갈수록 더 심해질 텐데 어떻게 버텨낼지 벌써 앞이 캄캄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가 본격화되면서 남해안 양식업계의 시름이 깊어진다. 오염수가 퍼지기 전에 미리 먹어두자는 소비자들 덕분에 방류와 동시에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는 빗나갔지만, 불안감이 부추긴 ‘찜찜한 특수’가 행여 ‘마지막 만찬’이 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이다.
13일 서남해수어류양식수협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지난달 24일 이후 보름간 출하된 남해안 활어는 총 130t 상당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250t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주력 어종인 우럭(조피볼락)은 지난해 100t에서 올해 40t으로 급감했다. 이 중 수협중앙회가 수매해 준 16t과 반건조로 가공한 4t을 제외하면 실제 시장에 공급된 물량은 20t 남짓에 불과하다는 게 수협 측 설명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가 본격화되자 부산·경남 양식업계의 시름이 깊다. 경남권 최대 양식 활어 산지인 통영시 용남면 굴 박신장. 김민진 기자
서남해수수협은 경남과 전남의 양식 어업인 500여 명이 뭉친 국내 최대 양식활어 생산자 단체다. 우럭의 경우, 시중에 유통되는 국내산 10마리 중 8마리가 이들의 어장에서 키워낸 것이다. 김성훈 조합장은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바람에 병어, 조기 같은 선어는 대중 수출로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었다. 반면, 내수시장에 기대어야 하는 활어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면서 “보다 세밀한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2023년산 햇굴 개시를 목전에 둔 굴 양식업계도 속이 타들어 간다. 겨울이 제철인 굴은 보통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 중순에 대일 수출로 시작해 12월 김장철에 정점을 찍은 뒤 이듬해 6월까지 생산을 이어간다. 이 기간 통영시와 거제시, 고성군 앞바다에서 1만 4000여t, 1000억 원어치가 넘는 생굴이 수확돼 전국 각지로 공급된다. 이는 국내산 생굴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양이다.
지역 경제 낙수 효과는 상당하다. 겨우내 적게는 20여 명, 많게는 50명 이상의 인부로 북적이는 굴 박신장만 300여 곳이다. 가공시설까지 포함하면 연관 산업 종사자는 줄잡아 1만 2000여 명에 이른다. 매출의 3분의 1 이상이 인건비로 쓰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해에 최소 300억 원 이상이 지역에 풀려 소비를 견인한다. 특히 올해는 긴 장마에 육지에 있던 각종 영양분이 바다로 다량 유입돼 유난히 굴이 잘 컸다. 여기에 태풍이나 떼죽음 피해도 거의 없어 전례 없는 풍작이 기대된다.
관건은 소비다. 지금 추세라면 출하와 동시에 소비 절벽을 맞닥뜨릴 가능성도 있다. 굴 수협은 일단 내달 초매식(첫 경매 행사)에 앞서 임시 경매를 통해 시장 분위기를 확인한 뒤 본경매 시점을 조정하기로 했다. 수출도 녹록하지 않다. 남해안에서 생산된 굴 중 20%는 날것이나 냉동, 자숙 형태로 가공돼 수출길에 오른다. 최대 시장은 일본이다. 그런데 오염수 불안감은 국내보다 일본 소비자가 더 크게 갖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엔화 가치까지 떨어져 가격 경쟁력도 예전만 못하다.
부산의 미역, 다시마 양식어민 사정도 마찬가지다. 기장수협 관계자는 “지난 5월 다시마를 수확했을 때에는 오히려 사재기 현상이 일어날 만큼 소비가 조금 늘어났다”면서 “다행히 소비가 어느 정도 받쳐주고 방류도 초반이라 아직은 괜찮다. 이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속 주시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