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환경보도, 솔루션 저널리즘 지향해야
기후이슈, 필수 보도 영역 인식 필요
사실·데이터 근거한 정보 제시 기본
경고·갈등보다 문제 해결 과정 보도
현실 반영한 새 보도 체계 구축해야
언론계는 스스로를 위기라고 말하지만, 지구의 기후 위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연일 이상 기후로 인한 대형 환경 재난 소식들이 외신과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 온다.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화재부터 중국 북경과 그리스의 폭우, 모로코 지진, 리비아 항구도시 데르나의 폭풍과 홍수에 이르기까지 최근 전 세계에서 잇따라 들려오는 대형 재난 소식들은 인명 및 재산 피해 규모 면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막대해 충격적이다.
이상 기후로 인하여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서 과거의 공식이 깨지고 있다. 이제는 재난 발생 후 대처가 아니라 시나리오에 따른 사전 예측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식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언론도 환경 이슈에 대한 대응 방식과 보도 체제를 전면 재점검할 때이다. 언론은 기후 위기, 기상 이변 등의 이슈를 담당하는 환경 저널리즘을 신문사 편집국과 방송사 보도국의 독자적이고 전문화한 필수 보도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 이슈는 환경 보도에 대한 국내 언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전형이었다. 언론사들이 과학적 사실과 데이터에 기반한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심층 분석보다는 정치 지형에 편승한 정쟁적 이슈몰이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양극화 문제로 중병을 앓고 있는 정치 영역의 주장들이 환경 보도의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원전 오염수의 위해성 여부 논의라는 이슈의 본질은 묻히고 만다. 이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지만, 언론 역시 정치 지형의 대변인이라는 오명과 불신의 굴레를 피해 갈 수 없다.
환경 보도에서 과학적 본질이 왜곡되는 현상은 분명 국내 언론의 모습만은 아니다. 한국과학기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인 대표 공영 방송사인 영국 BBC는 2018년 환경을 포함한 과학 보도의 오류를 고백하였다. 그것은 불편부당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기후 변화를 노골적으로 부인하는 사람을 뉴스에 등장시켜 온 관행을 반성한다는 내용이었다. 기후 위기가 사실이며, 과학자들이 검증하고 동의한 사안이기 때문에 향후 기후 보도에 있어서 기계적인 균형을 추구하는 기조를 버리겠다는 결정이었다.
미국의 경우, 주류 언론들이 기후 위기에 대한 적은 보도량으로 인하여 시청률을 위해 공익을 포기한다는 비난까지 받아 왔다. 기후 뉴스가 언론사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시청률 저하 요인으로 부정적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8년 미국 몬태나주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산불은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언론사 기후 보도의 양이 증가하는 전환점으로 작용하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21년에 80명 이상의 기후 이슈 담당 기자를 채용하였고, 그해 보도한 기사량이 4000건으로 증가하는 변화를 불러왔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WP)의 경우 환경 기사를 빈번하게 1면에 배치해 관심을 높이고 있으며, 다수의 신문사와 방송사들이 기후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기 위하여 전문기자를 채용하고 있다. 미국 언론사들이 기후와 환경 분야에 대해 집중 투자를 하고 있는 배경에는 기성세대에 비해 기후에 더욱 민감한 젊은 세대를 미래 독자층으로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기후 변화라는 주제는 특정 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닌 전 지구적인 문제이다. 기후 변화가 가져온 지구 온난화를 포함한 기후 위기에 대한 언론의 역할에는 국내외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물론 한국 언론의 현실이 미국이나 영국의 현실과는 다른 점이 많지만, 해외 사례는 우리 언론이 환경 보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잘 보여 준다.
환경 보도에 있어서 언론은 과학적인 사실과 데이터에 근거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시해야 한다. 전문성을 가진 기자의 채용과 전문기자제의 제도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를 토대로 언론은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문제 해결의 과정을 추적하여 보도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경고와 갈등 중심에서 해결 중심으로 보도의 프레임을 변화시켜야 하고, 문제 해결의 결정권을 가진 정치권이나 기업의 소극적인 대응을 압박해 실천을 촉구하는 감시자와 촉진자의 역할도 적극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이 내부 점검을 통해 전문성과 지속 가능성을 가진 환경 보도 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진지하게 고민해야 마땅하다. 미래의 기후 위기에 못지않은 더 심각한 언론 위기가 닥치기 전에 말이다.
이화행 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