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현장 ‘그라운드 제로’엔 채워지지 않는 슬픔의 구덩이가 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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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비극을 기억하는 법
뉴욕 쌍둥이 빌딩 자리 추모공원
22년째 3000여 명 희생자 기려

9·11 테러 22주년인 지난 11일 미국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터에 수천 명이 모여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했다. 9·11 테러 22주년인 지난 11일 미국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터에 수천 명이 모여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했다.

지난 11일 미국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 추모 공원에 미국 시민 수천 명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은 미국 최악의 참사로 꼽히는 9·11 테러 22주년이었다. 20년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이들의 추모는 현재진행형이었다.

폭격의 중심지, 대재앙의 현장을 의미하는 그라운드 제로는 한 국가의 비극적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소로 꼽힌다. 부산에 조성을 추진 중인 우키시마호 추모 공간이 참고해야 할 하나의 선진 사례다. 수천 명의 한국인 강제징용자를 태운 우키시마호는 78년 전 일본 마이즈루항에서 의문의 폭발과 함께 침몰했다.

이날 오후 3시. 추모행사가 끝나고 정치인과 경찰이 빠져나간 그라운드 제로를 시민들이 채워나갔다. 거대한 정사각형으로 꾸며진 그라운드 제로 ‘메모리얼 풀’의 네 면을 빼곡하게 메웠다.

9·11 테러 10주년인 2011년 9월 11일 완공된 그라운드 제로 추모 공원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에 들어섰다. 새로 지은 마천루 사이 거대한 텅 빈 공간을 추모 공간으로 남겼다. 가로와 세로 각각 60m, 깊이 9m의 정사각형 풀에는 9m 높이의 폭포수가 쉼 없이 쏟아졌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폭포수는 한가운데 움푹 파인 정사각형 구덩이 속으로 사라진다. 아무리 많은 물이 쏟아져도 구덩이는 채워지지 않는다. 가족과 시민을 잃은 도시의 채워지지 않는 슬픔을 형상화한 것이다.

뉴욕은 참사 이후 도시 재건에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세계적인 디자인 공모를 통해 현재의 그라운드 제로 설계안이 탄생했고, 9·11 테러 피해자를 위한 기금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메모리얼 풀 테두리 동판에는 3000여 명의 희생자 이름이 새겨졌다. 시민들은 동판에 국화꽃을 놓거나 희생자의 이름 앞에서 한참을 머무르다 자리를 떴다. 자전거 장바구니에 싣고 온 하얀 국화꽃 다발을 추모비 위에 두고 나서도 자리를 뜨지 못하던 줄리엣(46)은 끝내 눈물을 훔쳤다. 그는 9·11 테러의 생존자다. 줄리엣은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당시 그의 남자친구였던 밥은 끝내 건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는 “매년 이곳을 찾아 밥과 그날을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쌍둥이 아들과 추모 공원을 찾은 패티(39)는 22년 전 이곳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며 “한순간에 사라진 아버지의 흔적이 남은 공간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비극의 공간이 추모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그라운드 제로에 애정을 드러냈다. 애즈마(25)는 “올 때마다 많은 시민들이 여전히 그날의 비극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놀란다”면서 “역사의 아픔을 실재의 공간으로 만들어뒀기 때문에 각자의 기억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이 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욕/글·사진=변은샘 기자 iamsam@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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