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스마트 변기
조선시대 임금님은 똥을 누는 것이 아니라 매화꽃을 피웠다. 임금님의 대변을 매화라고 미화한 까닭이다. 왕의 대소변을 ‘매화 열매와 비’, 즉 매우(梅雨)로도 불렀다. 그래서 임금님 변기는 ‘매화틀’이 됐다. 궁중에 매화틀을 담당하는 나인(지밀나인)까지 있을 정도였다. 임금님이 변을 보면 어의가 직접 색깔 등 상태를 관찰했다. 왕의 변을 통해 건강을 살피고 식단 조절까지 했던 것이다.
프랑스 절대 왕정의 상징 베르사유 궁전은 화려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하지만 정작 화장실이 없었다. 루이 14세는 화장실을 불결한 공간으로 여겨 만들지 말라고 지시했다. 대신 자신은 전용 변기를 갖고 다녔는데 그 수가 26개에 달했다. 전용 변기를 준비하지 못한 귀족들은 정원에서 볼일을 해결했다. 귀족 여성들의 드레스가 레이스로 겹겹이 둘러싸인 것도 용변을 위한 디자인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향수 산업이 발달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현대적 의미의 수세식 변기는 1596년 영국의 존 해링턴이 엘리자베스 여왕을 위해 발명했다. 그 이름이 ‘Water closet’이었는데 W.C의 유래다.
변을 보는 일은 지극히 은밀하고 개인적 영역이다. 2005년 개봉한 영화 ‘아일랜드’에는 복제 인간이 볼일을 보면 ‘나트륨 과다 섭취’ 같은 분석 결과가 뜨고 이에 따라 건강 상태를 조절하는 장면이 나온다. 공개적 개인 용변 정보 수집이 여러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대목이다. 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묵었던 싱가포르 호텔에 북한 당국이 전용 이동식 변기까지 가져간 것으로 알려진다. 최고 지도자 동지의 건강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이야기다.
한국인 과학자가 ‘스마트 변기’ 개발로 올해의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박승민 박사는 대소변 색깔과 양 등을 분석해 개인의 건강 상태나 코로나19 등 감염병 여부까지 파악할 수 있는 변기로 공중보건 분야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른 항문 모양으로 신원 파악도 가능하다. 가장 개인적 공간으로 여겨지는 화장실은 우리 건강의 조용한 수호자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박 박사의 설명이다. 국내 비데 업체와 상품화도 진행 중이라고 하니 머지않아 일상 속 현실이 될 전망이다. 건강검진을 위해 채변 봉투에 변을 담는 일도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질 듯하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