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토끼 떠올리다 삼천포로 빠지면 '별주부전' 전설의 섬이…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경남 사천시 여행]

토끼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닮았다는 경남 사천시 '비토섬'은 기이한 형태의 해안선과 드넓은 갯벌이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지녔다. 사천시 제공 토끼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닮았다는 경남 사천시 '비토섬'은 기이한 형태의 해안선과 드넓은 갯벌이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지녔다. 사천시 제공

한가위가 코앞이다. 보름달에 소원을 빌며 토끼 얼굴을 찾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올 추석엔 달토끼가 선명하게 얼굴을 보일까. 그러고 보니 올해는 ‘검은 토끼’의 해인데… 생각이 삼천포로 빠지려다, 진짜 삼천포로 향했다. 옛 삼천포 시내에서 조금만 차를 달리면 ‘별주부전’ 전설의 고향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별주부전 토끼가 달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 토끼와 거북, 전설의 고향 속으로

토끼를 만나러 가는 길, 첫 목적지는 비토섬이다. 섬 모양이 토끼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사천시청을 지나 사천대교를 건너면 서포면이고, 서포면의 남쪽 끝에 비토섬이 자리한다.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첫 번째 다리가 ‘비토교’, 두 번째 다리는 ‘거북교’다. 오후 1시께, 때마침 간조라 다리 아래는 광활한 갯벌이다. 비토섬 갯벌은 사천 9경 중 하나로 꼽힌다. 거북교 주변은 갯벌 체험장으로도 이용된다.

비토섬 거북교 아래 펼쳐진 갯벌. 비토섬의 갯벌은 사천 9경 중 하나로 꼽힌다. 비토섬 거북교 아래 펼쳐진 갯벌. 비토섬의 갯벌은 사천 9경 중 하나로 꼽힌다.

비토섬 입구엔 별주부전의 배경이 남해안(사천시) 일대임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우뚝 섰다. ‘남해용궁’이란 단어와 사천지역 지명을 연결 지어 볼 때 비토리가 별주부전의 배경이라는 얘기다. 진실 여부를 가리는 건 학계의 몫이고, 여행객 입장에선 토끼와 거북이로 스토리텔링을 풀어내니 그저 흥미롭다.

전설의 고향을 향해 거북교를 건너면 양 갈래 길이다. 왼쪽(하지봉·낙지포)은 ‘토끼로’, 오른쪽(낙지포·수협공판장)은 ‘거북길’이란 이름도 재밌다. 어느 쪽이건 섬을 한 바퀴 돌아 만나게 되는데, 이름에 끌려 왼쪽(토끼로)으로 향했다. 비토마을회관을 지나 비토섬 한가운데를 통과하면 왼편에 ‘별주부전 테마파크’ 주차장이 나타난다. 아쉽게도 캠핑장 리모델링 탓에 다음 달께나 시설이 다시 개방하는데,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걸어서 오를 수 있다.

용궁으로 떠난 남편 토끼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 토끼 동상을 지나 5분 남짓 산책로를 오르자 2층짜리 육각 정자가 나타난다. 거북이 등 위에 올라탄 듯한 정자 형상이 인상적이다. 정자 2층은 사방이 뚫렸지만 곳곳이 나무에 가려 기대만큼 풍광이 시원하진 않다.

거북이 등에 올라탄 것 같은 재미난 형태의 별주부전 테마파크 전망대. 거북이 등에 올라탄 것 같은 재미난 형태의 별주부전 테마파크 전망대.
별주부전 테마파크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 바다 건너 남해군이 훤히 보인다. 별주부전 테마파크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 바다 건너 남해군이 훤히 보인다.

이제 진짜 토끼섬과 거북섬을 만나러 갈 차례다. 비토섬의 동쪽 끝엔 월등도가, 다시 월등도의 동쪽 끝자락엔 토끼섬과 거북섬이 자리한다. 이들 섬은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빠질 때만 연결되기 때문에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온라인에서 물때표를 검색하니 오후 1시 23분이 간조다. 간조에서 몇 분 넘긴 시점이라 비토섬과 월등도, 월등도와 토끼섬·거북섬을 연결하는 바닷길이 훤히 드러나 있다.

전설에 따르면 별주부(거북) 등에 타고 육지로 돌아오던 토끼가 수면 위 달빛에 반사된 월등도를 보고 황급히 뛰어내리다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그 자리에 지금의 토끼섬이 생겨났다고 한다. 토끼를 놓친 별주부는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북 모양의 섬이 됐다.

전설을 알고 나니 두 섬을 그냥 지나치기 아쉽다. 토끼섬은 나무덱으로 연결돼 물때와 상관없이 둘러보기 좋다. 내친 김에 거북섬으로 건너가 본다. 고요한 분위기 때문일까. 월등도를 사이에 둔 두 섬의 자태에서 전설 속 토끼와 별주부의 모습이 스친다. 남해용왕 탓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처지가 닮았듯, 섬 모양도 비슷해 보인다.

비토섬의 동쪽 끝,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린 거북섬·월등도·토끼섬.(왼쪽부터) 비토섬의 동쪽 끝,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린 거북섬·월등도·토끼섬.(왼쪽부터)
월등도와 나무덱으로 연결된 토끼섬. 월등도와 나무덱으로 연결된 토끼섬.
간조 때 월등도와 바닷길로 연결되는 거북섬(왼쪽). 간조 때 월등도와 바닷길로 연결되는 거북섬(왼쪽).

■ 남일대, 자연이 조각한 ‘코끼리 바위’

경남 사천시에 얽힌 동물은 토끼·거북이만이 아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절경에 반해 이름 붙였다는 ‘남일대’에 가면 또 다른 동물, ‘코끼리’를 만날 수 있다. 삼천포항을 지나 남일대해수욕장에 도착하자 남일대 유적비와 최치원 동상이 눈에 띈다. 선생의 유적비는 후손과 시민이 뜻을 모아 2012년 건립했다고 한다.

남일대 정자에 올라 바라본 전망도 운치 있지만 해수욕장 한가운데 포토존에 더 눈길이 간다. 영어로 쓴 ‘NAMILDAE’ 알파벳 중 가운데 ‘I’ 꼭대기에 하늘색 코끼리 캐릭터가 귀여운 포즈로 웃고 있다. 코끼리 캐릭터의 살짝 왼쪽, 바다 멀리 예사롭지 않은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기다란 코를 내민 옆얼굴이 영판 ‘코끼리 바위’다.

코끼리 바위는 가까이 접근도 가능하다. 해변 동쪽 끝에서 시작하는 나무덱과 해안길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코끼리 바위로 이어지는 갯바위다. 해상 추락사고 위험을 알리는 경고판을 지나 조심스레 갯바위로 걸음을 내딛자 곧 코끼리 얼굴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머리에 초록색 수풀 모자를 쓴 듯한 모습이 인상적인데, 주변의 기암괴석 역시 장관이다. 줄자로 그은 듯 층층이 퇴적층이 드러난 바위가 세월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코끼리 바위는 반대편 서쪽 끝에서 바라봐도 매력적이다. 사천스카이워크가 조성돼 있어 바위는 물론 멀리 수평선과 한려수도의 섬을 조망하기에도 좋다.

남일대해수욕장 서쪽 끝 사천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코끼리 바위'. 남일대해수욕장 서쪽 끝 사천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코끼리 바위'.
남일대해수욕장 동쪽 끝에 자리한 '코끼리 바위'. 초록색 수풀 모자를 쓴 것 같은 모습니다. 남일대해수욕장 동쪽 끝에 자리한 '코끼리 바위'. 초록색 수풀 모자를 쓴 것 같은 모습니다.

남일대해수욕장 서쪽 끝에서는 진널전망대까지 해안 산책로(남파랑길34코스)가 이어진다. 걷기가 부담스러운 이들은 내비게이션을 따라 5분 정도 차를 몰면 막다른 길 직전에 전망대 입구가 나온다. 꽤나 가팔라 보이지만 계단과 오르막을 조금만 오르면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망대 3층에서 바라본 풍광은 비토섬 전망대보다 시원하다. 서쪽으로는 가까이 목섬과 멀리 창선도, 그리고 창선도와 육지를 잇는 삼천포대교가 바라다보인다. 남쪽과 동쪽으로는 추도·신수도부터 수유도·두미도·욕지도·사량도까지, 여러 섬들이 소나무 사이로 빼꼼히 보인다. 전망대가 한두 층만 높았다면 더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는 시간, 발걸음을 돌리기 아쉽다면 사천대교 위쪽 ‘부잔교 갯벌탐방로’에 들러볼 만하다. 간조 때는 드넓은 갯벌이 펼쳐지는 곳인데, 늦은 오후 밀물 때라 바닷물이 부잔교 입구까지 들어찼다. 갯벌은 잠겼지만, 밀물의 잔잔한 흐름을 느끼며 부잔교를 따라 바다 위를 걷는 기분도 색다른 경험이다.

남해안 일대를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진널전망대. 남해안 일대를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진널전망대.
바다나 갯벌 위를 걷는 이색 경험이 가능한 ‘부잔교 갯벌탐방로’. 바다나 갯벌 위를 걷는 이색 경험이 가능한 ‘부잔교 갯벌탐방로’.

■ 사천에만 있는 이색 맛집·카페

사천은 바다와 접한 고장이라 해산물이 흔하다. 좀 특별하면서도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다면 삼천포터미널 근처 ‘박김밥’을 추천한다. 대표 메뉴인 박김밥은 갈색으로 졸인 박과 달걀·청경채가 들어간다. 단출해 보이는 재료들이 어우러지면서 깔끔하고도 깊은 맛이 난다. 간이 심심하면 겨자를 푼 소스에 찍어 먹길 권한다. 박김밥은 2줄(8000원)부터 판매하는데, 배가 큰 이들은 혼자서 푸짐하게 먹기 좋다.

레트로 감성의 가게 내부도 특색 있다. 음식을 내어주는 쟁반과 접시, 유리병에 든 보리차까지 옛날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벽면 크게 내걸린 방명록에는 맛과 분위기에 만족해 하는 방문객들의 글귀가 빼곡하다.

더 진한 레트로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남양동주민센터와 맞닿은 ‘카페 정미소’에 들러 보자. 이름 그대로 옛 정미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카페 내부 한가운데엔 정미소 시절 쓰던 커다란 기계가 자리한다. 괘종시계, 텔레비전, 카세트 테이프, 사이다 병 등 추억의 소품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어 시간 여행을 온 기분이다. 음료를 주문하면 기본 과자로 ‘튀밥’을 내어 준다. 공간에도 어울리고 음료와도 알맞은 조합이다.

카페와 연결된 다른 장소도 흥미롭다. 야외 테라스 너머 복합문화공간 ‘쌀’은 작은도서관도 있어 아이와 함께 들르기 좋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졸인 박과 달걀, 청경채가 들어간 ‘박김밥’. 쟁반과 접시까지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긴다. 졸인 박과 달걀, 청경채가 들어간 ‘박김밥’. 쟁반과 접시까지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긴다.
옛 정미소를 리모델링한 '카페 정미소'. 내부를 지나면 복합문화공간 '쌀'로 이어진다. 옛 정미소를 리모델링한 '카페 정미소'. 내부를 지나면 복합문화공간 '쌀'로 이어진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