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끝을 보여주다…“생명은 그 자체로 위대할 수 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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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산김정한문학관
신호철 소설가 초대 행사
‘원 그리기’ 작품 놓고 토론
“거침없는 입담 부러워” 반응

요산김정한문학관에서 열린 ‘이달의 초대 작가 신호철 소설가’ 행사 모습.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요산김정한문학관에서 열린 ‘이달의 초대 작가 신호철 소설가’ 행사 모습.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지난해 출간된 신호철 소설가의 첫 소설집 <원 그리기>(문이당)는 문제작이다. 그 문제작이 조명받고 있다. 흥겨운 가야금 연주가 끝난 뒤, 흥미로운 ‘말의 연주’가 이어졌다. 21일 요산김정한문학관 강당에서 열린 ‘이달의 초대작가-신호철 소설가’ 행사는 ‘새로운 작가와 상상력의 탄생’을 보여줬다. 행사는 <원 그리기>(문이당)를 놓고 박향 소설가의 사회와 이희원 평론가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너무 재미있는 소설”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가”란 이 평론가의 평이 나왔고 ‘바퀴벌레’를 언급했다. ‘슈뢰딩거 고양이’란 작품에 바퀴벌레를 튀겨먹는 인터넷 방송 장면이 나온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책장에서 바퀴벌레가 나올 거 같아 겁났다.”

신 소설가의 답은 이랬다. “어릴 때 마당이 넓은 고가에서 살아 식물이나 동물을 기르고 관찰하면서 컸다. 오래된 집이어서 벌레들도 많이 나왔는데 큰 바퀴벌레도 예사로 날아다녔다. 많이 봐서 그런지 저는 무서운 벌레가 전혀 없다. 그래서 ‘바퀴벌레 튀김’을 썼을 때 ‘참신하다’고만 여겼다.”

그는 “‘관측 가능한 불두덩의 중력장’은 사이비 교단의 살벌한 얘기로 인간 세상, 특히 정치판의 속임수와 기만을 풍자한 것”이라며 “재미있고 웃기게 쓴 것 같아 소설집 맨 앞에 놓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교주’라는 제목이었는데 제목을 고쳐놓고 보니 그럴듯했다.”

박향 소설가가 “이 작품의 거침없고 막힘없는 입심 입담은, 소설가도 부러워할 정도로 대단하다. 비결이라도 있나”라고 물었다. 신 소설가는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가 <관촌수필>을 쓴 이문구 선생인데, 선생의 작품 대부분을 필사했다. 지금도 필사한 것을 출력해 틈틈이 보고 있다”며 “이문구 선생을 공부한 입담을 빌려와 쓴 작품이다”라고 했다.

신호철 소설가의 첫 소설집 <원 그리기>(왼쪽)와 최근 이북으로 출간 장편소설 <타인의 기억들>. 문이당·마카롱 제공 신호철 소설가의 첫 소설집 <원 그리기>(왼쪽)와 최근 이북으로 출간 장편소설 <타인의 기억들>. 문이당·마카롱 제공

어릴 때는 수의사, 화가,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는 그. 그의 소설 특징은 “좀 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학적 개념’을 빌려온다는 것이다. ‘단세포적 참회’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프랙탈’이 소설 제목이다.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우리 삶을 규정하는 과학 법칙이 있고, 그것에 아주 깊은 철학이 있다. 존재와 존재하지 않은 것을 오가는 양자역학은 현대물리학의 꽃으로 너무 매력적이다. 어려우면서 재미있고…, 그래서 즐거운 것이다. 뭔가를 시도해본다는 기쁨이 있다. 아직 심취해 있다.”

“‘아니 이럴 수가’라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표현들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 소설가의 답. “쓰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쓰고야 말았고, 표현하고야 말았다. 변명할 수 없다. 저는 ‘인간 삶’보다는 ‘인간 자체’에 더 관심을 가진다. 인간의 무서운 욕망을 가감 없이 표현하면서, 이를테면 욕망이 간질간질한 거냐, 속에서 올라오는 거냐, 과연 그게 뭘까를 추적해서 쓰고 싶었다. 느껴보려 했고, 그걸 표현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는 “늘 알고 싶고 궁금한 것이 죽음”이라고 했다. “삶 속에 죽음이 공존하고 있다.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고, 그래야 새로운 것이 생성된다. 죽지 않는 것이 암이 되는 것이다. 죽음의 비밀은 결국 생명에 있는 것 같다. ‘단세포적 참회’ 같은 작품으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빛이 나고 소중한 것인지’를 말하고 싶었다.” 그는 201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는데 작품집의 어떤 작품들은 10년 이전에 쓴 것이라고 했다.

진행자 둘은 “단편 ‘프랙탈’이 이 소설집의 핵심 전언을 담았다”고 말했다. 신 소설가는 “저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며 “창조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서 생명은 ‘쓸모없음’이란 말이 쓸모없을 정도로 그 자체가 위대하다”고 했다. 고심의 글쓰기로 그의 소설은 끊김이 없이 술술 읽힌다. “장편에 최근 이북을 통해 장편 <타인의 기억들>을 냈고, 조만간 또다른 장편이 출간될 거란다. 그는 첫 소설집 <원 그리기>로 2023 요산김정한창작지원금을 수상한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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