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연명의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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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경우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자신의 임종에 대비해 연명의료와 호스피스에 대한 의향을 미리 작성해 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적힌 주요 내용이다. 임종 과정이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연명의료 중단에 서명하면 임종 과정에 놓였을 때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중단할 수 있다.

임종 과정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약한 사람들이 곧 2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존엄사법’, ‘웰다잉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2018년 2월 4일 처음 시행된 지 5년 만이다.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가 임종 전까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는다. 2018∼2020년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만성 중증질환으로 사망한 222명의 임종 전 치료를 분석한 결과, 말기 환자 10명 중 4명이 임종 24시간 내에도 중증 치료를 받았다. 임종 직전까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에 의지했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연명치료를 했던 경험이 있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런 서약을 했는지 바로 이해할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에 따라 실제로 연명의료가 중단된 건수는 8월 말까지 30만 3350건으로 5년 만에 30만 건을 넘겼다고 한다. 19세 이상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누리집(www.lst.go.kr)에 나온 전국 656개 지정 등록기관을 찾아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서명할 수 있다. 그런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추계에 약간 의외의 조사 결과가 눈에 띈다. 지난 8월 말 기준 등록 건수 194만 1231건 가운데 여성이 131만 9812명으로 68%를 차지하고, 남성은 62만 1419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성별에 따라 크게 다를 리가 없는데 이 차이는 대체 어떻게 발생했는지 궁금해진다. 주변에 물어보니 “여성들은 돌봄에 대한 책임이 있을 뿐, 정작 자신이 병에 걸렸을 때 적절한 돌봄을 받으리란 기대가 없어서 그렇다” 혹은 “딸과 며느리가 간병하면서 맞닥트린 현실은 아들과 사위보다 더욱 힘들다”라고 답을 했다. 돌봄 대상이 생기면 여성은 나의 일로 여기지만, 남성은 간병인의 일로 생각한다는 대답도 가슴에 와닿았다. 남자의 계절이라는 가을이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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