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지키던 바다, ‘오늘’이라 더 특별합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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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의 날, 충무공 발자취를 찾아

경남 통영시 이순신공원에 우뚝 선 충무공 동상(왼쪽)이 한산도대첩 역사의 현장인 한산도 앞바다를 가리키고 있다. 경남 통영시 이순신공원에 우뚝 선 충무공 동상(왼쪽)이 한산도대첩 역사의 현장인 한산도 앞바다를 가리키고 있다.

10월 5일 ‘부산시민의 날’은 이순신 장군에게도 각별하다. 1592년 이날(음력 9월 1일),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부산 앞바다에서 일본의 군선 100여 척을 격파했다. 이 부산포해전 승리를 기념해 1980년 부산시민의 날이 제정됐다. 아쉽게도 부산에선 부산포해전 역사의 현장이라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부산시민의 날을 있게 한 충무공의 발자취를 만나려면, 가까이 경남 지역으로 걸음을 옮겨야 한다.

■ 통영의 이순신 동상은 특별하다

충무공 이순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역은 통영이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대첩의 전장이자, 삼도수군통제사 임명과 함께 통제영이 설치된 곳. 옛 지명(충무)과 현 지명(통영) 모두 이순신과의 각별한 인연을 말해 준다.

전국 곳곳에 이순신 동상이 있지만 통영 한산도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이순신공원의 충무공 동상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이순신공원 주차장에서 조금만 오르막길을 걸으면 오른쪽으로 충무공 동상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장군은 왼손으로 장검을 짚고 오른손으로 한산도대첩의 전장을 가리키고 있다. 동상 아래 기단엔 충무공의 친필 휘호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가 적혀 있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를 온몸으로 외치는 듯하다.

자세히 보니 동상 아래 바닥에 첫 옥포해전부터 마지막 노량해전까지, 이순신 장군의 32전 32승 승전도가 새겨져 있다. 한산도대첩은 8번째, 부산포해전은 16번째 전투다. 성벽 산책로를 따라 공원 위쪽 정자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 견내량을 빠져나온 왜선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진에 격퇴되는 전황이 그려진다. 치열했던 전투를 아는지 모르는지, 바다는 고요하고 하얀 요트가 오가는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전국의 수많은 동상 중에서도 통영의 이순신 동상은 특별하다. 전국의 수많은 동상 중에서도 통영의 이순신 동상은 특별하다.
이순신공원에 설치된 천자총통 너머로 바라보이는 한산도대첩 전장. 지금은 평화로이 요트가 지난다. 이순신공원에 설치된 천자총통 너머로 바라보이는 한산도대첩 전장. 지금은 평화로이 요트가 지난다.

조선 수군의 승리를 이끈 거북선과 판옥선이 궁금하다면 이순신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군선 관람 시설이 있다. 충무김밥 맛집이 모여 있는 강구안에 가면 바다 위에 떠 있는 판옥선과 거북선 3척(전라좌수영거북선·한강거북선·통제영거북선)에 올라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배들은 작은 역사관처럼 꾸며졌다. 하나같이 낡았지만 역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 어록, 거북선의 구조, 조선 수군의 역사와 무기 등 각종 자료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유익하다. 배 하부로 내려가면 취침실·치료실·무기창고·조리실 등 당시 수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선미에 위치한 장령방과 선장방 등 군선의 기본 구조를 비롯해 자료로 확인된 거북선만 다섯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용머리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전라좌수영거북선, 용머리에서 대포를 쏠 수 있는 통제영거북선 등 차이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통영시 강구안에 접안된 거북선과 판옥선. 조선시대 군선의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통영시 강구안에 접안된 거북선과 판옥선. 조선시대 군선의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거북선 하부 공간의 치료실. 수면실·조리실 등 수군의 다양한 생활 공간이 배 하부에 있다. 거북선 하부 공간의 치료실. 수면실·조리실 등 수군의 다양한 생활 공간이 배 하부에 있다.

■ 한산도는 이순신의 섬이다

통영에 왔다면 최초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된 한산도 제승당(옛 운주당)을 지나칠 수 없다. 통영항여객선터미널과 제승당을 오가는 배(카페리)는 수시로 운항한다. 한산도를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다면 차량을 선적해도 좋다.

여객터미널을 출항한 배는 한산도 앞바다를 유유히 지나 제승당 선착장으로 향한다. 상죽도 옆을 스쳐 아늑한 한산만 입구에 다다르면, 오른쪽으로 바다 위 거북선 등대(한산항등표)와 산 정상 ‘한산대첩 기념비’가 교차한다. 거북선 등대는 60년 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 조형 등대로, 등대문화유산이기도 하다.

30분 남짓 짧은 항해를 마치고 선착장에 내리면 오른쪽을 따라 곧장 제승당으로 향하는 길이 이어진다. 경상남도에서 관리하는 제승당 일대는 이충무공 유적지로, 곳곳에 장군의 자취가 서렸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대첩을 승리로 이끈 뒤 지금의 제승당 자리에 운주당(집무실 겸 작전지휘본부)을 짓고 1593년부터 1597년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으로 삼았다.

제승당은 관람안내소에서도 10분 가량 걸어 들어가야 한다.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길은 적송·들꽃 등 굽이굽이 만나는 풍경이 다채롭다. 수면은 잔물결 하나 없이 잔잔한데, 길 위에서 마주친 바닷게가 아니었다면 호수로 착각할 정도다. 제승당관리사무소를 지나 몇 분을 더 걸으면 우물이 나타난다. 지금은 음용수로 부적합하지만 운주당 시절 이순신 장군과 군사들이 실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한산도 제승당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산 정상의 한산대첩 기념비와 거북선 등대 한산도 제승당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산 정상의 한산대첩 기념비와 거북선 등대
한산도 제승당 경내 충무사에 모신 이순신 장군의 영정. 한산도 제승당 경내 충무사에 모신 이순신 장군의 영정.

계단을 올라 충무문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제승당이다. 왼쪽으로 홍살문을 지나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로 향한다. 종2품 통제사 관복을 입은 충무공의 영정은 갑옷 차림과는 또 다른 위엄을 뿜어낸다.

제승당 북서쪽엔 수루가 자리한다. 한산대첩 기념비와 한산만이 한눈에 펼쳐지는 풍경이 액자 속 그림 같다. 1976년 제승당 정화사업 때 새로 지은 뒤 2014년 다시 나무로 고쳐 지었다고 한다.

제승당 뒤편에는 장군이 부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하던 활터(한산정)가 있다. 한산정에서 145m 떨어진 산비탈에 과녁이 있는데, 활터와 과녁 사이에 바다가 있는 구조다. 실전처럼 해전 훈련을 하기에 적합한 위치라 하니, 훈련 장소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은 장군의 지혜로움이 엿보인다.

제승당 경내 수루에서 바라본 풍경이 액자 속 그림 같다. 바다 너머 산 정상에 ‘한산대첩 기념비’(가운데)가 보인다. 제승당 경내 수루에서 바라본 풍경이 액자 속 그림 같다. 바다 너머 산 정상에 ‘한산대첩 기념비’(가운데)가 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한 활터(한산정)에서 바라본 과녁.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한 활터(한산정)에서 바라본 과녁.

■ 거제·합천·사천, 아픔도 역사다

한산도 운주당은 1597년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에서 파직된 뒤 원균이 이끌던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면서 폐허가 된다. 거제도와 다리로 연결된 칠천도에는 칠천량해전의 아픈 역사를 전하는 ‘칠천량해전공원전시관’이 있다.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반성, 과오를 되풀이 않겠다는 다짐이 녹아 있는 전시관은 입구부터 수몰된 조선 수군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조성돼 절로 숙연해진다.

전시관 내부는 선조의 오판, 이순신의 하옥, 가덕도와 부산포에서의 패전 등 칠천량 대패가 있기까지의 전조 과정은 물론 패전의 결과로 왜군에 유린당한 백성의 아픔까지 담담하게 전한다. 부하·백성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데 수장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운다.

이순신의 고난을 몸소 느껴볼 수 있는 길도 있다. 옛 의금부 터인 서울 종각역에서 출발해 합천 모여곡에 이르는 670km ‘이순신 백의종군길’이다. 종착지 마을엔 완보자 전당이 마련돼 있다. 1597년 4월 1일(음력) 출옥한 이순신 장군은 6월 6일 합천군 율곡면 낙민리에 도착한다. 도원수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던 장군은 42일 동안 이 마을에 머물다 칠천량해전 대패 소식을 듣고 직접 전황을 조사하러 다시 길을 떠난다. 현재 마을 입구에는 이순신이 머물렀던 유숙지(이어해의 집) 현판이 있고, 마을 안쪽엔 이어해의 후손이 살았다는 기와집이 빈집으로 남았다.

칠천량해전 대패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하는 경남 거제시 칠천도 ‘칠천량해전공원전시관’. 칠천량해전 대패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하는 경남 거제시 칠천도 ‘칠천량해전공원전시관’.
경남 합천군 율곡면 ‘이순신 백의종군로’ 종착지 마을 입구에 세워진 완보자 전당. 경남 합천군 율곡면 ‘이순신 백의종군로’ 종착지 마을 입구에 세워진 완보자 전당.
사천해전의 승리와 선진리왜성 전투의 패배를 함께 전하는 경남 사천시 선진리성. 사천해전의 승리와 선진리왜성 전투의 패배를 함께 전하는 경남 사천시 선진리성.

전무후무한 이순신 장군의 업적, 32차례 승리 중 사천해전은 처음으로 거북선을 출전시켜 승리한 전투다. 역사의 현장인 선진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북쪽 언덕에는 선진리성이 자리한다. 왜군은 명량해전에서 대패한 이후 남해안 곳곳에 왜성을 쌓았는데, 선진리성은 고려시대 토성 위에 쌓은 왜성이다. 현재 토성과 왜성의 성곽 일부가 복원돼 있다. 성 안엔 사천해전승첩기념비도 있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성 주변으로, 선진리왜성 전투에서 전사한 조선·명나라 연합군의 무덤(조명군총)과 비총(코무덤)을 보고 나면 생각이 많아진다. 비총은 왜군이 전리품으로 베어 간 조선인의 코를 묻은 무덤에서 흙을 가져와 안치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와 충무공 정신을 따라가다 보면 종국엔 평화의 가치에 다다른다. 부산시민, 부산시민의 날이 아니어도 한 번쯤 탐방해 볼 만한 평화와 깨달음의 여정이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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