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2 예림이’ 방지, 범죄 피해 대처법 공유 나서야
죽음 내모는 강력 범죄와 2차 가해
사회적 경각심 제고 안전망 정비를
지난 10일 스물일곱 살 나이로 생을 마감한 표예림 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 사회가 2차 가해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 준 사건이다. 그는 초중고 12년간 학폭을 겪었으나 이를 용기 있게 고발하고 피해자들과 연대해 그들의 작은 목소리나마 세상에 알리고자 애썼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유튜버의 저격 영상과 악성 댓글 등 잇단 2차, 3차 가해 앞에서 심리적 고통을 이겨 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2차 가해는 그 심각성이 인지되지 못하는 익명성 기반의 온라인상에서 더욱 격렬한 법이다. 여기에 더해 피해자가 피해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법적인 한계도 큰 문제로 지목된다. 이런 범죄와 2차 가해가 가벼이 여겨지지 않게 제도적 안전망 구축 작업이 시급하다.
2차 가해에 무너진 표 씨의 사연은 일면식 없는 남성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2022년 당시 피해자는 직접 CCTV를 확보하고 스스로 물증을 찾아야 했는데, 최근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자가 직접 나서야만 움직이는 우리 사법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는 1차 피해는 가해자에게서 받았지만 2차 피해의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엄중한 의미로 읽힌다. 표 씨의 죽음도 스스로 2차 피해를 증명해야 했던 힘겨운 과정과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과 무관치 않다. 더군다나 돌려차기와 유사한 강력 범죄는 날이 갈수록 기승이다. 범죄 발생과 2차 피해는 그 누구에게도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돌려차기 사건의 경우, 수감 중인 가해자는 반성은커녕 피해자에게 출소 후 보복하겠다는 협박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바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 출옥 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불안한 심정을 호소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결코 말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가 진정 피해자 편에 서서 마음을 헤아리려 한다면 관련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국가가 외면한 역할을 개인이 떠맡아야 하는 현실은 아직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방증이다.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는 “아무 잘못도 없는 피해자들이 강력 범죄를 겪고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한다. 그래서 살인, 스토킹, 폭행, 학교폭력 등 각종 범죄 피해자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피해 사건에 적극 대응하고 재판·소송 과정을 온라인 카페나 SNS로 알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를 통해 범죄 피해 대처법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공유되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그동안 무수히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결연함을 잃지 않는 그 노력에 이제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