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지나가다 ‘화들짝’… 선정적 광고, 이대로 둘 건가요
여성 신체 일부 노출 광고
해운대 등 번화가 ‘버젓이’
음란·퇴폐 세부 규정 없어
지자체·주민 갈등 되풀이
부산 번화가 곳곳에 설치된 광고물을 둘러싸고 주민과 담당 공무원 사이의 갈등이 이어진다. 일부 주민들은 거리 곳곳에 내걸린 광고물이 선정적이라며 민원을 제기하지만 선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갈등 해소는 요원한 실정이다.
부산에 거주하는 박경숙(45·가명) 씨는 최근 해운대구 구남로 일대를 지나다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아이들과 함께 길을 지나던 중 여성의 신체 일부가 노출된 광고물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해당 광고는 튼살을 없애주는 시술을 홍보하기 위해 미용업체가 설치한 광고물로, 시술 전후를 비교한 여성의 엉덩이 부분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었다. 박 씨는 “여성의 엉덩이가 절반 이상 노출된 광고가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시 한복판에 버젓이 설치돼 있다”며 “아이들이 보기에 선정적이어서 부적절한 광고라고 생각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후 박 씨는 해운대구청에 민원을 제기해 광고를 시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구청으로부터 “선정적인 것을 판단하는 명확한 규정은 없다”며 “내부검토 결과 광고물이 피부시술을 광고하기 위해 설치됐고 규격·내용상 법을 위반한 것은 없다고 판단해 광고물 교체·철거를 강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현행 옥외광고물법 제5조는 ‘음란하거나 퇴폐적인 내용 등으로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 ‘청소년의 보호·선도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것’ 등을 금지광고물로 규정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을 음란하거나 퇴폐적인 내용으로 볼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기준이 없고 대부분 관할구청 담당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금지광고물 판단을 위해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는 규정이 마련돼 있지만 이 경우에도 구청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시·군·구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먼저 거친 뒤 여성가족부에 다시 심의를 요청해야 하는 등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보니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관련 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공무원과 민원인 사이의 갈등이 불거진다. 부산의 한 지자체에서는 지난 여름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번화가 일대에 주류 광고를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민원이 접수된 바 있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가 정해진 규격에 맞지 않은 광고물 일부를 제외하고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류 광고를 허용하면서 민원인과의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 밖에도 유흥업소, 술집, 마시지 업체 등에서 여성의 신체가 노출된 사진을 광고물로 사용하는 경우 이를 금지광고물로 볼 것인지를 두고 민원인과 종종 마찰을 빚는다는 게 지자체의 설명이다.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피부시술 관련 광고물의 경우 업체 측에 민원 사실을 전달했고 다른 광고물로 교체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곧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신체 일부가 노출되어 있어도 음란성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은 경우들이 많다. 규격, 청소년보호법 저촉 여부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따져야하다보니 판단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