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따옴표와 저널리즘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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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일방적 의견을 검증 없이 인용하기 일쑤
객관성 잃고 편향성·무책임 발언 부추겨
정파적 공방 중계 대신 문제 본질 다뤄야
취재원 주장 보도할 때 사실 확인 필수적

저널리즘은 기사에서 사실과 의견의 구분을 추구한다. 적어도 스트레이트 기사는 ‘팩트’를 근거로 작성하고 작성자의 주관을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능하면 중립적인 어휘를 사용하고, 신뢰할 만한 출처에서 취재한 팩트에 의존하며, 취재원의 주관적인 진술을 활용할 때는 따옴표 안에 표시한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모든 절차가 객관성 추구라는 원래 취지를 망각한 채 껍데기만 남은 요식행위처럼 변해 가고 있다. 특히 인용부호의 사용 관행이 대표적인 예다.

기사의 인용문은 기본적으로 발언자의 주관적 의견이다. 객관적 형식을 갖춘 기사에서도 인용문은 어떤 부분을 어떻게 인용하는지에 따라 정파성이나 편향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한국 언론에서 정파적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러한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인용부호가 잘못된 맥락에서 악용되는 사례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을 들 수 있다.

첫째는 특정한 정파적 주장을 기사 전면에 부각하는 형태다. 지난여름 전북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 잼버리 행사 파행과 관련된 보도는 이러한 유형의 인용문으로 넘쳐났다. “민주 ‘잼버리 대회 좌초, 윤석열 정부 안일한 대응 탓’”, “여, 잼버리 실패? ‘뻘밭 대참사 원인은 문재인… 윤석열 탓 마라’” 등등. 여러 언론은 특정한 정파적 취재원의 발언을 기사의 중심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아예 기사 제목으로 배치해 자극적인 논란거리로 부각했다. 정치인은 이른바 권위 있는 정보원이고 인용부호 속의 발언은 팩트처럼 통한다는 점에서 물론 이러한 인용 방식이 객관적 기사의 형식 요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처럼 따옴표 활용 기사의 남발로 정작 언론이 중시해야 할 기삿거리는 뒷전으로 밀려나다시피 했다. 잼버리 파행은 그동안 국제행사 유치 과정에서 고질화한 방만하고 무책임한 운영의 문제점이 표면에 드러난 희귀한 사례다. 그런데 언론이 소모적인 정파적 공방의 중계에만 몰두하는 사이에 중요한 문제점을 다룰 기회를 날려 버린 셈이다. 인용은 기사의 출발점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둘째는 논란의 여지가 큰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계해 여론을 오도하는 형태다. 2015년 당시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 부총리가 G20 재무장관 회의차 페루를 방문 중 발언한 내용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한국 금융산업의 낙후성을 비판하면서 “오후 4시면 문 닫는 은행이 어디 있느냐. 입사 10년 후에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일 안 하는 사람이 많아 한국 금융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 부총리의 주장은 상당 부분 잘못된 팩트에 근거하고 있음이 이후에 드러났다. 우선 금융기관의 연봉 체계에서 입사 10년 차에 억대 연봉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반박이 나왔다. 금융산업 경쟁력이 우간다보다 낙후되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 역시 극소수 기업인 대상의 만족도 조사 위주로 되어 있어 국가 간 비교의 근거로 삼기에는 부적절했다. 더욱 뼈아픈 지적은 금융산업 낙후성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최 부총리가 수장으로 있던 기획재정부의 낙하산 인사와 관치금융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최 부총리의 발언 직전 기획재정부 산하의 국책 연구기관 보고서에서 지적한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언론이 공인의 발언을 인용할 때 팩트체킹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 준다. 당시 최 부총리의 발언은 다른 여러 취재원이 관련된 사안이라 이후에나마 교차 검증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부 고위직의 발언이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보도되는 바람에 여론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최근에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문재인 전 대통령 부친의 친일 전력 문제를 거론한 발언이 보도되어 파장을 일으켰다. 그의 발언에서 주목할 부분은 확인된 팩트가 아니라 정황적 의혹을 근거로 삼았으며, 이후 논란 자체가 사실 규명보다는 주로 정파적 갈등의 소재로 소비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팩트체킹에 나선 언론은 거의 없었다.

언론의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사 작성의 오래된 전통 역시 단순히 답습하는 수준을 넘어 개선이 필요하다. 언론 보도 관행은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처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공직자의 발언을 여론 형성에서 근거로 삼을 만한 권위 있는 정보원으로 보기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국가의 핵심 고위직에서도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발언이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는 언론이 발언 인용을 넘어 팩트를 확인하고 신중하게 선별해야 할 책임을 소홀히 한 데에도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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