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법카 유용
2019년 모 신용카드 회사의 대리급 직원이 회사 법인카드(법카)로 거액을 무단 사용하다 적발돼 금융권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법카로 상품권을 구매해 현금으로 바꾸는 등 3년간 14억 원가량을 개인적으로 쓴 것으로 드러나 해고됐다. 이어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카는 법인 임직원이 회사 업무를 수행하는 데 사용하는 신용카드다. 법인이 지출하는 경비의 투명성을 높이고, 카드를 업무 용도로 쓰는 과정에서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7월 기준 은행이 발급한 법카는 총 1064만 장에 이른다. 법카 발급 규모는 개인 신용카드의 9.6%에 불과하지만, 결제 액수는 개인카드의 25% 가까이나 된다. 더욱이 법카의 평균 승인 금액은 13만 6280원으로 개인카드보다 3만 6421원이 많을 정도다.
문제는 카드회사 대리의 사례처럼 법카가 개인의 쌈짓돈으로 인식돼 사적으로 유용되는 일이 잦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법카를 클린카드로 바꾸는 곳이 늘고 있다. 클린카드는 단란주점, 룸살롱 같은 유흥업소 등을 제한업종으로 지정해 여기서 사용할 경우 결제가 이뤄지지 않는다. 2005년 공공기관이 임직원 청렴도를 높이려고 도입한 뒤 사기업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그런데도 올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의 법카 유용 의혹이 잇따라 터져 나와 한심스럽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인 김혜경 씨의 해묵은 경기도 법카 사적 사용 의혹은 최근 국감에서 법카를 최대 100건까지 썼다는 주장이 더해져 여야 간 격렬한 공방의 소재가 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인터넷진흥원 2급 간부가 지난 3월 14차례 술집에서 2838만 원을 법카로 결제했다는 지적도 국감장에서 제기됐다. 산림조합이 공무와 관련이 적은 귀금속 업체와 맥줏집에서 법카로 1520만 원을 긁고,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영홈쇼핑 임직원이 방만하게 법카를 사용한 것도 이번 국감에서 지적된 사실이다.
법카로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사고 지인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건 법카가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르고 사는 다수 국민의 공분을 부르는 짓이다. 법카를 남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행위는 국민의 혈세나 회사 공금을 자기 돈으로 여기는 도덕불감증에 빠진 범죄다. 내부 단속 강화와 함께 개개인의 경계심, 엄정한 처벌이 필요한 악습이다. ‘내돈내산’(내 돈으로 내가 산다)이 강조되는 시대에 근절해야 마땅하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