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차기’ 피해자 “공판 기록 수차례 요구… 받은 건 공소장뿐”
부산고법·지법 국감 참고인 출석
제3자가 된 문제점 조목조목 토로
피고인 중심 현 시스템 개선 촉구
반성문 양형 반영 부당함 지적도
“수많은 피해자 구제해 달라” 호소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 여성인 박민지(28·가명) 씨가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부산고등법원·부산지방법원 등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피고인 중심인 현행 사법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했다.
공판 기록 열람·등사권 확대, 피해자 알 권리 개선, 반성문을 비롯한 사건과 관련 없는 양형기준 폐지 등 <부산일보>의 기획시리즈 ‘제3자가 된 피해자’를 통해 여러 차례 지적했던 개선점이 국감장에서 논의됐다.
■‘피해자 알 권리’ 열람·등사권 확대
박 씨는 “법원에 수차례 공판 기록 열람을 신청했는데 겨우 받을 수 있는 건 공소장뿐이었다”며 “법원 직원은 ‘피해자는 재판 당사자가 아니니 가해자에게 민사소송을 걸어서 문서정보 촉탁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 기록도 1심 선고가 끝나고 나서야 겨우 받을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박 씨는 1심 첫 공판에서 피해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처음 봤고, 사각지대로 끌려간 7분에 대해서도 비로소 알게 됐다. 박 씨는 영상의 복사본이라도 달라며 법원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어쩔 수 없이 가해자인 이 모 씨에게 손해배상소송을 걸었다.
박 씨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개인 정보가 노출된 것으로 본다. 법원이 처음부터 공판 기록에 대한 열람·등사를 허용했더라면 보복 범죄의 위험에 노출될 일도 없었다. 현재 공판 기록 열람·등사권은 전적으로 담당 판사의 재량에 달려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피해자가 직접 소송 걸어서 받은 재판 기록과 증거 자료만 1268페이지가 된다. 이렇게 무거운 기록의 무게가 바로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사법 불신의 무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흥준 부산고법원장은 “피해자에게 위로의 말씀부터 전해드리고 싶다. 그간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고인의 방어권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게 사실인데, 부산 돌려차기 사건 이후 피해자의 권리와 지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공판 기록 열람·등사 신청 허가의 폭이 더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국회입법조사처는 공판 기록의 열람·등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예외적 경우에만 이를 제한하는 형태로 피해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된 지 16년이 지났지만, 열람·등사에 관한 간단한 통계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반성 없는 반성문, 감형 안 돼
가해자가 제출하는 반성문이 양형에 반영되는 사법시스템의 부당함도 논의됐다. 박 씨는 “저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반성문이 지속적으로 제출됐고, 1심 재판부는 이를 양형 기준으로 일부 반영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며 “반성 없는 반성문 때문에 감형을 받았다고 하는 건 피해자로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에는 ‘감형 받기 위한 반성문 팁’ 등을 쉽게 검색할 수 있고 반성문 대필 업체가 성행한 지도 오래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이런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회 분위기나 흐름에 법원이 뒤처지는 것을 법원에 근무했던 저도 느낀 적이 있다”며 “법원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형이 너무 높으니까 기계적으로 감경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공론화 없이도 공정한 재판”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법원은 사실 인정과 양형에 관한 부분을 조사할 수 있다. 게다가 피해자는 무려 7차례나 탄원서와 의견서를 제출했다”며 “요지부동이었던 항소심 재판부는 언론 보도가 집중적으로 나가자 그제서야 입장이 바뀌면서 여러 추가 혐의를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피해자가 가만히 있었으면 추가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3월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 측은 CCTV 사각지대에서의 7분을 검증하자며 DNA 재감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부정적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김흥준 부산고법원장은 “단순히 시간적인 순서만을 가지고 재판부가 어떤 심리 계획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다”며 “피해자가 탄원서를 제출한다고 해서 재판장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며 조 의원의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씨는 앞서 <부산일보>에 “1년간 생업을 뒤로 한 채 사건을 파고 들었고, 여러 언론을 통해 공론화를 하지 않았다면 공소장 변경 등의 결과를 얻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0년 뒤 죽을 각오로 피해자들을 대변하고 있다”며 “이미 재판이 끝난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제 사건을 계기로 힘 없는 수많은 범죄 피해자들을 구제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