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맹탕' 국민연금 개혁안, 정부 개혁 실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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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율·수급개시연령 언급조차 없어
책임감·강력한 의지로 국민 설득해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율 논의 관련 정부의 입장을 발표한 뒤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율 논의 관련 정부의 입장을 발표한 뒤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 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7일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확정 발표했다. 하지만, 국민이 매달 내는 보험료를 얼마를 올릴지, 몇 세부터,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와 핵심 쟁점은 쏙 빠져 맹탕 개혁안이라는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단지, 보험료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포괄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불과했다. 세대별 형평성을 고려해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연령에 따라 차등화하겠다는 내용 등이 눈에 띄지만, 전문가들조차 “구체적 수치가 없어서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혹평할 정도이다.

정부는 맹탕 계획안 발표에 이어, 세대 간 의견이 다양한 만큼 국회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며 연금 개혁의 부담을 국회에 다시 떠넘겼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정부가 국회에서 사회적 논의가 충실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국회로 공을 넘겼다. 정부가 수치와 근거를 포함한 구체적인 개혁안을 내고 국민과 국회를 설득해도 힘들 판에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는 모양새여서 더욱 답답하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가뜩이나 민감한 여야 정치권이 과연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연금 개혁안 논의를 국회 차원에서 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스럽다. 자칫 개혁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현실화되는 상황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어느 정권에게도 인기가 없는 일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1998년, 2007년 단 두 차례만 개혁이 이뤄졌을 정도로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불안정한 국민연금 구조를 바로잡지 않고, 개혁을 늦출수록 미래 세대의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추세라면 국민연금은 2055년에 완전히 고갈돼 1990년생이 연금을 받을 때가 되면 한 푼도 남지 않게 된다. “그대로 두면 나라가 파탄 난다”는 경고가 쇄도할 정도로 개혁은 불가피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면서 국민연금을 노동·교육과 함께 3대 개혁 과제로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가 구체적 개혁안조차 제시하지 않고, 책임을 국회에 넘겨 개혁 의지 실종이란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불안정한 국민연금 구조를 바로잡는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대한민국의 유례없는 저출산·고령화 사태까지 감안하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보험료율을 올리고, 지급개시 연령을 늦추는 것으로 개혁 방안은 정해져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다. 어려울수록 정부와 국회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미덥지는 않지만, 민생 우선을 선언한 국회에서 사명감을 갖고 하루빨리 연금 개혁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 언제까지 미뤄서 될 일이 아니고, 개혁 여건이 나아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지금이 국민연금 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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