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언제까지 제자리에서 맴돌 것인가…
윤여진 사회부 차장
의대 정원 확대가 연일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18년째 제자리걸음이었던 해묵은 과제가, 해결 기미를 조금씩 보이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다른 때보다 탄력을 받게 된 건 달라진 상황 덕분이다. 18년 전 3058명 수준으로는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여론에 유례 없는 무게가 실린 것이다.
특히 지역 의료는 참담한 지경이다. 이른바 ‘응급차 뺑뺑이’가 연일 이슈다. 경남 18개 시군 21개 보건소 중 의사 소장이 있는 곳은 8곳에 그치며, 산청군보건의료원은 1년째 공석이던 내과의사를 연봉 3억 6000만 원에 겨우 채용했다. 데이터도 이를 증명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서울은 인구 1000명당 3.47명의 의사가 있는 반면, 부산 2.52명, 경남 1.74명, 울산 1.63명에 불과하다. 경실련 조사결과 우리나라 인구 1000명 당 300병상 이상 병원의 의사 수는 서울 1.59명, 전남 0.47명으로 최대 3배 이상 차이를 보인다. 이 같은 지역의 현실을 보고 있으면, 의대 정원 확대는 논의 대상이 아닌 ‘디폴트’가 돼야 마땅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논쟁은 지나치리만치 지리하다. 지난 26일 열렸던 교육위 국감도 그래서 더욱 아쉽다. 정치 공방만 남았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지인은 기자에게 토로했다.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의대 정원 확대라는 당연한 일에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하냐”고.
맞다. 인원 확대를 전제로 보다 정교한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늘어난 의사들이 피부과·성형외과 등 소위 인기 과에만 몰린다면 더 큰 폐해가 빚어질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로 공급이 늘면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 인력난도 해결될 것이라는 낙수 효과는 그저 낭만일 뿐이다. 수년 전 제기됐다 무산된 공공의대는 졸업 후 최소 10년간 공공·필수의료 영역에서 일할 수 있는 의사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대안이 될 수 있다.
사실, 연봉으로 놓고 보면 지역 의사들의 연봉이 서울보다 높은 경우가 꽤 된다. 그런데도 왜 지역에서 근무하거나 개원하지 않으려고 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교육 등 기본적인 인프라가 한참 뒤떨어지는데, 지역 의대에서 지역 출신을 더 뽑는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환자들도 마찬가지. 최근 5년간 부울경 암 환자 23만 5000명이 소위 ‘빅 5병원’에서 원정 치료를 받았다. 서울과 비서울의 의료 격차를 누구보다도 절감하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은 또 어떤가. 지역에서 특히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진료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결국 지역 불균형 해소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지역 자체가 죽어가는데, 의대 정원을 늘리고 지역 인재 비중을 늘린다고 해서 지역 의료가 개선되고 지역 의학계가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 역시 환상에 불과하다.
정년퇴직은 사라진 지 오래고, 정규직조차 되기 어려운 현실에서 의사 자격증은 평생 직장의 보증 수표다. 의대 정원 확대 소식에 N수생이 급증하고, 유치원·초등 의대반이 생긴다는 기사를 볼 때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지만 그 또한 현실이다. 무너져가는 지역을 살리고 의료체계를 바로잡을 기회는 국민의 지지가 뒷받침된 바로 지금이다. 증원 공방만 벌이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사태가 더이상 재연되지 않기를 바란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