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상품보다 술·담배 구매… 지역 수혜 늘려야 [동백전 데이터 분석]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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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전·세븐일레븐 소비 패턴

베이비붐·X세대 96% 담배 구매
상권별 1순위 소비 품목도 술·담배
지역 소상공인 살리기 정책 취지 무색
대기업 편의점 캐시백 비율 조정
편의점 내 지역상품 판촉 행사 등
데이터 기반 맞춤형 대책 목소리

부산의 편의점에서 지역화폐 동백전으로 담배와 술을 사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확인돼 개선이 요구된다. 31일 오후 부산 한 편의점 계산대 뒤에 담배가 진열돼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의 편의점에서 지역화폐 동백전으로 담배와 술을 사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확인돼 개선이 요구된다. 31일 오후 부산 한 편의점 계산대 뒤에 담배가 진열돼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지역화폐 동백전은 출시 이후 1년 만에 전국 3위 규모의 발행량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짧은 기간에 급성장하면서 성장통도 잦았다. 최근에는 갈수록 높아지는 수요에 반해 국비 지원이 끊기는 등 예산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술·담배뿐 아니라 대형 학원 등 소상공인에게 큰 효과가 없는 품목에 소비가 쏠리면서 비난도 일었다. 이에 따라 이제는 흥행이나 외적 성장보다는 정책 취지에 맞는 운용으로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 결제 수단 벗어나야

최근 발표된 부경대 김정환 교수 연구팀의 ‘동백전·세븐일레븐 가명정보 결합 사례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4~10월 부산 세븐일레븐 편의점 600여 곳에서 동백전 구매 품목 1순위는 담배였다. 연령, 성에 관계없이 단연 지출이 가장 컸다.

X세대~베이비붐 세대(42~75세) 남성의 경우 비식품 중 담배 구매 비율이 무려 96%를 넘었다. Z세대(10~25세) 남성과 여성도 각각 88%, 80%였다. 식품 품목 중에서는 대체적으로 남성은 음료, 여성은 과자가 1순위였다. 연령별로 보면 베이비붐 세대(57~75세) 남성에게서만 맥주 소비가 가장 많았다.

대학가, 해변가 등 주요 상권별로는 술·담배가 엎치락뒤치락 1순위 경쟁을 벌였다. 동백전 소비가 가장 많은 금요일 오후 6~8시 기준으로 보면 서면에서는 담배, 해운대에서는 맥주가 가장 많이 팔렸다.

이 같은 소비 품목은 편의점 전체 매출의 상위 품목과도 유사하다. 사실상 지역 상품에 치중돼야 할 동백전의 소비 유형과 일반적인 편의점 소비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술·담배의 경우 세금만 70%에 달해 점주들의 이익 증대 효과도 크지 않다. 사실상 동백전이 캐시백을 받기 위한 결제 수단으로 인식되는 셈이다. 실제 지역화폐 혜택이 줄었던 지난해 8월에 전월보다 세븐일레븐 소비가 32.1% 감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븐일레븐을 포함한 편의점은 대표적인 일상 소비처로, 백화점에 이어 유통업계 매출 2위다. 점포, 이용객 수가 갈수록 느는 추세다. 편의점 내 동백전 소비도 덩달아 늘어날 가능성이 커 소상공인 이익 증대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실 동백전이 정책 취지와 달리 단순 결제 수단이라고 지적을 받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3년 전에도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가 낮은 입시학원, 치과, 피부과 등의 결제 비율이 상당히 높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다양한 분야의 지역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소비가 분산돼 상권이 살아나고, 이를 통해 경제 활성화를 이끈다는 동백전의 선순환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소비 분석 고도화…“체질 개선 적기”

이번 연구와 같이 동백전 소비 분석이 고도화됨에 따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산시에 따르면 과도한 술·담배 소비는 시행 초기부터 우려됐던 문제다. 세금이 높아 지역 소상공인에게 사실상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품목이지만, 품목별로 캐시백 비율을 조정하는 것에는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어 그간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술·담배 캐시백 비율을 낮추지 않더라도 소비 분석을 통해 편의점 내 지역 상품을 효율적으로 홍보하는 등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한 예로 부산 대표 상권인 서면, 해운대, 광안리 등지에서 동백전 매출이 가장 높은 시간대에 지역 관광 상품과 연계한 프로모션 이벤트를 여는 식이다. 이번 연구에서도 관련 행사나 휴가자가 많은 5, 7, 9월에 월별 동백전 사용량이 많았으며, 광안리 드론쇼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땐 매출이 크게 오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 교수 팀은 이번 연구에서 음주, 흡연 상품 구매를 지양하는 캠페인을 여는 등 ‘동백전 시민 건강 프로젝트’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지역 소상공인 단체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의 캐시백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정식 중소상공인살리기협의회장은 “대기업 본사로 자본이 빠져나가는 편의점은 지역 생산 유발 효과가 낮다”며 “다른 종합소매점이나 식당 등에 동백전 소비가 늘어날 수 있도록 캐시백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경실련 도한영 사무처장은 “동백전 활성화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캐시백 비율 조정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지역의 재정 자립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지역화폐 예산을 늘리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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