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힘의 논리
미·중,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충돌
세계 지도력 확보 위해 곳곳 경쟁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조화 중요
현 정부 ‘힘에 의한 평화’ 우려도
패권경쟁 이면에 자국 이익 우선
지구적 문제 해결 위해 협력해야
가끔 태극기를 보면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태극과 4괘(건곤감리)가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조건을 상징하는 듯해서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라는 4대 강국 사이에 놓인 한반도 말이다. 태극은 38선으로 갈린 남북한과 비슷한 모양이랄까. 미·러·중은 세계 3대 군사 강국, 미·중·일은 세계 3대 경제 대국이다.
19세기 일본도 독특한 생각을 했다. 한반도가 일본 열도를 향한 ‘비수’(예리한 칼)라고 본 것이다. 조선이 제 앞가림을 못할 경우 자신들이 위태롭다며 조선 침략과 대륙 진출의 논리를 만들었다.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이다.
국제사회의 본질은 ‘무정부 상태’라는 것이다. 제도적 권위체 없이 힘에 좌우된다. 현재 국제사회의 키워드는 G2, 즉 미·중 간의 패권경쟁이다. 한반도는 공교롭게도 둘이 처음 전쟁을 벌인 곳이다. 여기에 일본의 보통국가화, 러시아의 부활까지 얽힌 곳이 한반도다.
지정학의 창시자인 영국의 매킨더는 인류 역사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대립으로 봤다. 유럽은 줄곧 동쪽 대륙세력의 공격을 받다가 15~17세기 대항해시대를 열어 바다를 통한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19세기 군함을 앞세운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역사를 만들었다. 현재 두 세력의 대표 주자가 바로 미·중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중국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이 충돌한다. 아편전쟁 등 19세기의 비극은 지금도 중국의 트라우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을 키운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소련과의 체제경쟁에서 또다른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했다. 중국이 1971년 유엔에 가입하고 중화민국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이어받은 것도 미국 덕분이다. 물론 중국 입장에서도 ‘먼 오랑캐’(미국)을 활용해 ‘가까운 오랑캐’(소련)을 견제한 것이고, 미국 또한 머지 않아 중국이 ‘떨치고 일어나’ 건곤일척의 경쟁 상대가 될 것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았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소련의 해체로 체제경쟁에서 승리했지만 정작 그 뒤 미국은 흔들렸다. 2001년 9·11테러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당성과 지도력이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입지 축소는 중국의 부상과 관계가 깊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패권을 지속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스마트파워’ 개념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하드파워와, 문화·이념·제도 등을 바탕으로 한 소프트파워의 조합이다.
스마트파워는 어찌 보면 세상 이치를 재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냉전 데탕트, 베트남전 종식 등을 이끈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책 〈중국 이야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거의 모든 제국은 완력에 의해 이뤄졌지만 힘으로 지탱되는 곳은 없다. 보편적 통치가 오래 지속되려면 힘을 ‘의무’로 바꿔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통치자의 에너지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지배력을 유지하느라 소진된다.”
키신저는 이 책에서 미국과 중국의 차이점을 비교한다. 미국은 ‘선교사’처럼 자기의 가치관을 전 세계에 전파하려고 애쓴 반면, 중국은 개종보다 조공을 받으며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폈다고 분석했다. 지금도 미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기치를 내걸고 곳곳에서 개입주의 정책을 편다. 그에 맞서 중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 아래 디지털 기술과 공공외교를 활용해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 영향력을 넓힌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존 대북정책을 가짜평화로 규정하며 ‘힘에 의한 평화’를 역설한다. 지난달 한·미·일 연합 공중훈련이 사상 처음 실시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이 ‘힘’은 하드파워에 가깝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북·중·러는 점점 더 밀착하는 모양새다. “절대적 안보 추구는 절대적 불안정을 야기한다”는 키신저의 지적이 현실이 될까 우려스럽다. 미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도 책 〈강대국의 흥망〉에서 군사력이 제공하는 단기적 안보와, 생산소득 증가에 의한 장기적 안보 사이에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패권경쟁을 한 꺼풀 벗겨보면 자국 이익 중심주의가 드러난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민주주의와 안보 못지 않게 자본주의 맹주로서 경제적 이익을 중시한다. 그 과정에 신자유주의로 인한 불평등, 문화적 억압 등에 대한 저항이 있다. 중국은 첨단기술을 앞세워 ‘디지털 권위주의’를 확산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인권, 민주화 등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있는 것이다.
최근 150년간의 한반도를 떠올려보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질서가 뼈저리게 느껴진다. 대륙과 해양에 반씩 걸친 우리에게 외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미·중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갈까. 계속 패권 다툼을 벌일지, 공존을 모색할지, 아니면 그 사이 어디일지. 기억해야 할 것은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둘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김마선 콘텐츠센터장 msk@busan.com
김마선 기자 m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