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하구 구평동 산사태 복구 '하세월'... 주민 불안 가중
사고 재발 방지책 요원
국방부·사하구 책임 미뤄
부산 사하구 구평동 산사태가 발생한 지 4년이 넘었음에도 사고 재발을 막을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어 주민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국방부와 사하구청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시민들의 피해만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구평동 산사태가 발생한 지역은 7일 현재까지도 산등성이에 쌓인 시커먼 석탄재를 둘러싸고 곳곳에 파란 천막이 찢어져 방치돼 있다. 가파른 산비탈면에서는 금방이라도 흙더미가 떨어져 내릴 듯 위태위태한 상태였다. 한 구평동 주민은 “비가 올 때마다 산사태를 걱정해야 하고, 석탄재가 물과 함께 쓸려 내려와 오염지대에 사는 기분”이라며 우려를 쏟아냈다. 전날에도 부산 곳곳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우박이 쏟아지면서, 이곳 주민들은 또 한번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구평동 산사태는 2019년 10월 예비군훈련장 인근 야산 비탈면이 집중호우로 붕괴하며 발생했다. 당시 마을 주민 4명이 토사에 매몰돼 숨지고 산비탈 아래 기업들이 수십억 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2월 국방부는 붕괴사고 관련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뒤 상고를 포기하며 36억 원 상당을 배상하라는 선고를 확정받았다.
국방부의 최종 패소가 확정된 지 2년에 달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비탈면 복구공사 등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다. 국방부와 사하구가 이행 조치를 두고 씨름하면서 시간이 지연된 까닭이다.
앞서 사하구는 국방부에 산사태 지역 비탈면에 대한 보완 공사를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이에 따라 국방시설본부는 복구설계를 위한 현장조사 등 명목으로 지난 5월 사하구에 산지 일시사용 신고 협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사하구는 국방시설본부가 요청한 산지 일시사용 신고와 복구 설계안이 승인 기준에 부적합하다며 지난 9월 최종 반려했다.
사하구는 국방부가 산사태 방지 공사에 있어 법에 명시된 규정을 무시하고 국방부 기준을 내세우고 있어 주민 불편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하구 관계자는 “산지복구를 위해선 산지관리법에 따라 복구 설계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국방부가 제출한 세부기준과 복구 계획은 기본적인 부분들조차 미흡했다”며 “수차례 보완 요구를 했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국방부는 구청이 제시한 산지관리법이 아닌 자체적으로 다른 법률을 적용한 기준에 따라 복구하겠다는 입장만을 통보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부산일보>는 국방부에 관련해 지난 4일부터 3일간 수차례 공식 입장을 요청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국방부와 사하구청의 다툼이 이어지면서 구평동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피로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박종호 구평동 주민자치회장은 “올해 장마가 길었음에도 큰 비가 오지 않아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다”며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생명이 관계된 일에 있어 재해 가능성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구평동 산사태 사고 이후 사고 이후 구평동 주민들은 추가로 대형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방부에 예비군훈련장 이전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이에 사고 책임이 있다고 지목 받은 국방부는 2024년 말까지 사하구 일대 육군 제53사단 예하 군부대와 구평동 예비군훈련장을 해운대구 장산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