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올해의 단어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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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연말이다. 그간 소식이 뜸했던 친구가 안부를 물어 오고, 모임도 잦아지는 걸 보니 벌써 한 해의 끄트머리다. 길거리나 상점에도 울긋불긋한 장식의 크리스마스트리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모두 한 해가 끝날 무렵임을 알려주는 유·무형의 전령사들이다.

세밑의 전령사에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다사다난했던 점에서는 항상 같지만, 속을 헤집어 보면 늘 달랐던 한 해를 한마디의 단어나 문구로 압축해 표현한 ‘올해의 단어’다. 매번 지나고 보면, 올해 만한 때가 또 있었을까 싶을 만치 간단치 않았던 곡절은 한마디 말로 응축돼 세월의 창고 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처한 상황이나 곡절이 여러 갈래인 만큼 각자 입장에서 다듬고 깎은 올해의 이미지 역시 다양하기 마련이다. 이맘때면 전 세계에서 발표되는 올해의 단어를 살펴보는 소소한 재미가 세밑 풍치를 더한다.

20여 일 정도 남은 올해는 영국에서 먼저 올해의 단어를 선보였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뽑은 단어는 신조어인 ‘리즈(rizz)’. 지난해 처음 사전에 오른 이 단어는 사람을 휘어잡는 강한 매력을 뜻하는 ‘카리스마(charisma)’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영미권의 Z세대(1997~2012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했는데, 올해 6월 ‘스파이더맨’ 역으로 유명한 영국 배우 톰 홀랜드가 인터뷰에서 “나는 ‘리즈’가 전혀 없다”라고 사용한 것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 젊은 세대의 유행어가 됐다는 설명이다. 옥스퍼드 사전은 전 세계 뉴스 자료 등에서 수집한 220억 개의 단어와 문구 중에서 활용도를 판단해 선정했다고 하는데, 전 세대도 아닌 젊은 층에 유행하는 단어를 올해의 단어로 선택한 그 유연함에도 눈길이 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교수신문〉이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많은 관심을 끈다. 한자로 돼 있어 젊은 층엔 낯설고 단박에 뜻을 알 수 없다는 비아냥이 따르기는 해도, 절묘한 상징과 조합에 고개를 끄덕거릴 때가 많다. 올해는 우리나라의 한 해가 어떤 네 글자에 담길지 자못 궁금해진다.

올해의 단어는 당연히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보통 사람도 자신만의 시각을 담아 지을 수 있다. 네 글자든, 한 글자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자기 스스로 올해를 정리해 본다는 자체가 의미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런 것 없이 덤덤히 보낼 수도 있겠지만, 생각의 흔적이라도 하나 남겨 둔다면 세밑이 더 풍성해질 듯싶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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