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엑스포 유치 실패와 부산의 미래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부산 미래, 이벤트에만 의지 안 돼
지역인재 육성 위한 도시계획 필요
대학 중심 혁신, 지역으로 확산해야
부산이 2030세계박람회 유치에 실패했다. 유치 실패 당일,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신속히 사과했다. 부산시민이 받은 충격을 고려한 듯하다. 유치 결과 발표 당일, 필자는 부산의 한 생방송에 출연했다. 출연 전 판세를 알아보니 백중세라고 했다. 그래서 엑스포 유치는 부산을 획기적으로 바꿀 기회로, 2차 결선 투표도 가능하다며 희망적인 얘기를 했다. 지면을 빌려 사과드린다.
도시계획 전문가로서 ‘과도한 이벤트주의를 경계하라’고 내내 배웠다. 계획가의 무능은 종종 메가 이벤트에 의지한다. 제대로 된 기반 시설이 부족한 도시는 이를 이벤트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은 수도권에 밀려 국가의 투자 순위에서 항상 뒤로 밀렸다. 최근까지도 광역철도 예산의 90% 이상이 수도권에 사용되었다. 많은 인재와 기업은 혁신이 어려운 조건을 지닌 지방을 떠났다.
급기야 이젠 지역 대학들도 우수 인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고, 일부 대학은 신입생 모집도 어려운 지경이다. 얼마 전 한국관광공사 부사장의 ‘부산 촌 동네’ 발언과 수도권의 ‘메가 서울’ 논의까지 이러한 모든 상황이 우리를 절실하게 만들었다. 우리 부산도 메가 이벤트에 의지해 부족한 기반 시설을 일거에 건설하길 바랐다.
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중앙정부는 부산의 가덕신공항, 북항 재개발 등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약속했다. 물론 이의 이행 여부를 계속 챙겨야 하지만, 우리도 부산의 미래를 메가 이벤트에만 의지할 순 없다. 도시의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 차근차근 내실을 다져야 한다.
먼저 어떠한 도시를 전략적으로 벤치마킹할 것인지 살펴야 한다. 얼마 전 싱가포르국립대학(NUS)을 방문했다. 싱가포르는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국가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면적은 740㎢로 부산과 거의 비슷하다. 인구는 약 560만 명으로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할 당시엔 160만 명이었으나, 전 세계로부터 인재가 몰리면서 인구가 급성장하고 있다. 30여 년 전 대한민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GDP 8만 7000달러를 자랑한다. 대략 부산의 세 배 수준이다. 싱가포르 번영의 원인은 항상 도시학자들에게 연구 대상이다.
싱가포르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도시계획 측면에서 임대주택 정책과 도심 교통관리 등으로 유명했다. 독립 당시 싱가포르 정부가 도시의 토지 대부분을 매입해 주택의 50% 이상을 사회주택으로 제공하였다. 또한 자동차 소유를 엄격히 규제해 도심으로 들어오려면 특별 허가를 받은 번호판을 사야만 했다. 물론 지금도 임대비용 증가라는 문제가 있지만, 인근 홍콩보다는 덜 심각하다. 하지만 이러한 강력한 정책만으로 현재의 번영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건 최근 도시 경쟁력을 위해 교육 혁신을 고려한 도시계획이다.
특별히 주목되는 건 세계의 인재가 싱가포르로 급격히 몰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발표된 한 세계 대학 순위에 따르면 싱가포르국립대는 8위, 난양공대도 20위권에 들었다. 싱가포르에는 MIT, 예일대, 스위스공과대 등 최상위 세계 명문대학들이 싱가포르대학과 연계해 연구소를 개설하고 있다. 싱가포르국립대 주변에는 이미 해외 연구자들이 2만 명 이상 포진하고 있다. 이런 연구시설 단지를 유치·관리하기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White 존(용적률을 유지한 채 용도는 자유롭게 하는 지역)’ 등 용도 지역을 과감히 혁신하고 있다.
대학은 이제 전통적인 인재 양성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의 성장 동력이 될 만한 첨단산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있다. 지자체·산업·대학(지산학)을 연계한 지역 혁신전략은 이미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스탠포드대 중심의 실리콘밸리 지역, MIT중심의 보스톤 지역, 텍사스오스틴대 중심의 실리콘 힐 지역 등이 지산학의 모범 사례다. 싱가포르 역시 지산학의 모범 사례로 손색이 없다. 지역대학, 혁신산업이 선순환하는 모델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도시철도 인근으로 곳곳에 대학이 위치한 부산은 인재육성 기반의 도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때 부산은 지역을 떠난 인재의 관점에서 선진 도시를 비교해 내실 있는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부산을 국가균형발전의 중심축으로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산이 혁신을 멈춘다면 경쟁력은 더 떨어져 수도권과의 격차는 심화하고, 국가경쟁력도 후퇴할 것이다. 부산의 미래를 위해 지방 교육을 중심으로 한 연구중심 지식산업 육성이 필요하다.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혁신을 지역에 접목하고 주변으로 확산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