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사라진 연말 특수… 송년회 ‘한파’에 더 추운 자영업
부산 연제오방맛길 등 번화가
크리스마스 연휴 주말에도 한산
연말연시 모임 예약 없는 식당도
회식 줄고 송년회 문화 변화 탓
점심 식사·영화·공연 관람 늘어
송년회가 사라졌다. 직장에서 저녁 회식이 급격히 줄었고, 코로나19 이후 음주 문화도 바뀐 때문이다. 굳이 연말 술자리를 갖지 않는 분위기다. 그동안 ‘송년회 특수’를 누려온 자영업자나 대리운전 업계는 ‘대목’ 하나를 잃었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부산 전역의 번화가에서 쉽게 확인된다.
지난 23일 오후 10시께 찾은 부산 연제구 연산교차로 연제오방맛길. 주점, 식당이 몰려 이 일대 대표 번화가인 이곳도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둔 주말 밤이지만 한산했다. 과거 20~30대는 물론이고 중장년층이 거리를 오가느라 붐비던 곳이다. 송년회 분위기는 아예 느껴지지 않았다. 연말을 맞아 새로 설치한 빛 조명 아래로 시민들이 발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음식점과 술집에도 손님이 드물었다. 한 고깃집엔 12개의 테이블 중 2개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상인들은 올해 단체 예약이 지난해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40평 규모 중국집 직원 왕 모(43) 씨는 “예년 같으면 지금쯤 12월 31일까지 예약이 꽉 차 있어야 하는데 남은 연말·연시 모임 예약은 0팀”이라고 토로했다.
소고기 체인점 직원인 김 모(22) 씨는 “단체 예약도 줄었지만 인원도 줄었다”며 “예전엔 30명 정도 대규모 예약이 많았지만 요즘엔 5~6명 정도의 소모임이 전부”라고 말했다. 횟집을 운영 중인 김민수(43) 씨는 “평일엔 단체 손님 1팀 받기도 힘들다”고 전했다.
대리운전 업계도 연말 특수는 물 건너갔다며 한숨을 내쉰다. 대리운전 기사 정수경(61) 씨는 “이 시기엔 보통 하루에 10번 정도 손님을 모셨는데 요즘엔 하루 2~3명 받는다”며 “그마저도 1차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밤 11~12시가 피크 타임이고 오전 1시 이후엔 거의 콜이 없다”고 토로했다.
송년회 ‘실종’은 직장 내 송년회 문화 변화 때문으로 보인다. 잡코리아가 직장인 10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연말 송년회 트렌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회사에서 송년회를 진행한다고 응답한 직장인은 44.1%로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송년회 계획이 있는 직장인 중에서도 절반 이상인 53.5%가 ‘작년보다 송년 모임이 적다’고 응답했다.
회식 횟수 자체도 줄었지만 그나마 술 없는 회식과 점심 회식으로 대체됐다. 과거 같은 저녁 음주 회식 문화는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송년회로 ‘간단한 점심’이 29.5%로 1위를 차지했다. 술을 강권하는 문화 대신 직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회식이 선호되는 모습이다.
회식 문화는 코로나19 때문에 더 빨리 변했다. 코로나19 당시 사회적 거리 두기 여파로 회식 자제 분위기가 잡혔고, 회식을 해도 간단하게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자리 잡은 회식 문화가 ‘뉴노멀’이 됐다.
젊은 층에서는 바뀐 회식 문화에 긍정적인 편이다. 3년째 병원에서 근무 중인 박지영(27) 씨는 “전체 회식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아 올해 송년회는 부서에서 간단히 진행하기로 했다. 인원이 많은 부서는 반으로 나눠서 진행한다”며 “요즘엔 1차에서 끝내는 것이 깔끔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회식 대신 영화·공연을 관람하는 경우도 늘었다. 직장인 이유인(37) 씨는 “송년회를 크게 열기보단 마음 맞는 직원들끼리 술 없이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는다”고 전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