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 감자·포카차에 바롤로 와인·시골음식까지 [세상에이런여행]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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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미식투어 (1)>

지난 6월 미식가 19명 부산서 함께 출발
아름다운 음식 맘껏 즐긴 황홀한 9박11일
첫날 토리노에서 피에몬테 전통의 맛 경험
와이너리 두 곳에서 시음하고 시골 점심도

여행업계에 따르면 2024년 해외여행 트렌드는 소도시, 이색적 주제, 효율성이라고 한다. 이런 흐름은 단체 패키지이든 개인 자유여행이든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다들 ‘나만의 여행’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여행 흐름을 반영해 아주 이색적이고 독특한 주제로 여행을 다녀온 여러 사람의 각종 경험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준비에서 출발까지

2022년 초봄 코로나 여파가 아직 여행을 막던 시기였다. 부산 금정구 부산대학교 근처에 사무실을 얻어 ‘준투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사업자 등록을 하고 유럽여행 사업을 재개했다. 여름부터 옛 단골을 모시고 유럽 여러 곳을 다니기 시작할 때 후배의 소개를 받은 낯선 여성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KBS방송국 뒤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라’의 셰프인 남정민 대표였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의 바롤로 와이너리로 가는 도중에 버스 창 밖으로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 지나가고 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의 바롤로 와이너리로 가는 도중에 버스 창 밖으로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 지나가고 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

남 대표는 레스토랑 개점 10주년 행사로 이탈리아 북부지역 미식투어를 기획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 전통 맛집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여행 일정은 어떻게 짜야 하는지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요리 유학을 하고 현지 레스토랑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였지만 아무래도 여행은 본업이 아니었기에 서툴렀던 것이다.

1시간 동안 이야기한 끝에 우리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20여 년간 다져온 ‘준투어’의 유럽 배낭여행 경험과 남 대표가 자부심을 가지는 이탈리아 미식의 노하우가 접목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가려는 곳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와 에밀리아 로마냐 주, 베네토 주 그리고 돌로미티였다. 볼거리는 적어도 미식 여행에 적합한 지역이다. 로마,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만큼 많은 유적지나 관광 명소를 가진 곳이 아니어서 한국인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곳이다.

여행 상품 기획을 위해 먼저 현지 사전 답사를 다녀왔다. 바롤로 와이너리, 올리브 농장, 치즈 공장, 프로슈토 공장, 발사믹 농장 방문을 섭외했다. 또 현지 소믈리에, 음식 코디네이터와 여러 차례 화상회의를 거쳐 2022년 10월 드디어 포스터를 제작하고 정식 상품을 출시했다. 2023년 6월에 출발해 9박 11일 동안 이어지는 여행이었다. 상품가격은 819만 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현지 전통 식사와 고급 호텔을 제공하고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을 관람하는 데다 최고 인기 여행지로 각광받는 돌로미티 지역까지 둘러보려면 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 미식투어 참가자들이 식사 도중 즐거운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 이탈리아 미식투어 참가자들이 식사 도중 즐거운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

솔직히 처음에는 여행객 모집에 성공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뜻밖에 여행객 정원은 두 달도 안 돼 80% 이상 채워졌다. 남 대표가 남천동에서 오라를 운영하면서 요리 교실을 수년째 진행한 덕분에 이탈리아 음식 마니아인 단골 층이 두터웠던 덕분이었다.


■토리노의 첫날

부산에서 직항 항공편이 없어 인천국제공항으로 올라가야 했다. 전세 우등버스를 타고 새벽에 출발하는 것으로 여행은 시작됐다. 참가자는 모두 19명이었다. 우리는 독일 뮌헨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갈아타 이탈리아 토리노공항으로 들어갔다.

피에몬테 사람들은 아주 공손하고 세련되며 완벽을 추구하는 기질을 가졌는데 음식에서도 이런 특징이 나타난다. 이곳 시골마을의 전통음식은 예술처럼 세련됐고 근사하다. 프랑스에 접한 데다 알프스 끝자락이어서 프랑스 음식과 유럽 ‘산(山) 음식’의 특징이 섞였다.

또 고급 쌀이 자라는 포 계곡 평야에서 알프스의 높은 봉우리의 훌륭한 유제품 목초지까지 지형과 음식 재료가 다양하다. 육즙이 많은 각종 고기, 강과 호수의 다채로운 생선, 손으로 만든 재료로 속을 채운 만두, 신선한 치즈 등도 풍부하다. 여기에 ‘와인의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와인을 생산하는 바롤로 지역이 있어 최고의 음식과 특급 와인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어 미식투어에 최적화된 지역이다.

특히 주도인 토리노에서는 카르보나라 소스, 부라타 치즈, 햄인 프로슈토, 로스트 비프, 라구 소스, 참치 소스 송아지 고기 등 전통요리에서부터 현대 메뉴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다양한 토핑이 들어간 토리노 감자 요리. 손준호 준투어 대표 다양한 토핑이 들어간 토리노 감자 요리. 손준호 준투어 대표

첫째 날 여행 주제는 ‘길거리 음식’이었다. 토리노에서 다양한 길거리 음식, 그중에서도 감자로 여행을 시작했다. 이곳은 북쪽 지역인데 감자가 중요한 식재료 중 하나다. 우리는 먼저 현지인이 매일 가정요리에 쓸 음식 재료를 사는 재래시장을 방문해 다양한 현지 식재료를 구경했다. 아케이드로 위가 덮여 현대화된 시장이었다. 이곳에서 제철 과일인 체리와 납작 복숭아를 사서 나눠 먹은 뒤 감자를 즐기러 갔다.

토리노 감자 요리는 독특하다. 무게가 400g인 전통 감자만 사용한다. 겉은 바삭하게, 속은 촉촉하게 굽는 특수 오븐(우리나라 길거리 군고구마 기계와 비슷)을 이용해 감자를 굽는다. 구운 감자를 반으로 잘라 리구리아 올리브와 소금으로만 간을 하고 마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다양한 내용물을 채운다. 구운 감자는 똑같지만 주문한 사람에 따라 내용물은 다르다. 낮에 맥주와 함께 즐긴 다양한 감자 요리는 모두의 눈맛과 입맛을 사로잡았다. “부산의 사무실 근처에 이런 가게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탄성이 쏟아졌다. 하지만 감자 종류가 달라서 부산에서는 이런 맛을 내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감자 요리를 즐긴 다음에는 제노바식 포카차 빵집으로 달려갔다. 포카차는 올리브 오일과 소금, 허브 등을 넣어 구운 납작한 빵이다. 이 빵집은 흘러내리는 치즈로 속을 채운 얇은 포카차와 병아리콩 가루로 만든 피자인 파리나타로 유명한 가게였다. 빵집 방문에 앞서 가게에 들러 가위를 샀다. 많이 먹는 이탈리아 사람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1인당 피자 1판, 포카차 한 개는 너무 양이 많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맛은 봐야 하니 잘라서 나눠 먹어야겠다 싶어 가위를 산 것이었다.

이탈리아 미식투어 참가자들이 토리노 시내에서 우산을 쓰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 이탈리아 미식투어 참가자들이 토리노 시내에서 우산을 쓰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

20명 가까운 인원이 작은 빵집에 들어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포카차를 보자 마자 피자는 고사하고 한 사람이 포카차 하나를 다 먹는 것조차 힘들다고 생각하며 다들 웃었다. 포카차를 사서 빵집 밖으로 나가 길거리에 있는 테이블에 판을 깔았다. 가위로 포카차를 조각으로 잘라 나눠 먹었다. 가게 안에서 현지인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빵집 사장이 “제노바식 전통 포카차”라며 서비스로 내놓은 푹신한 포카차까지 받아 비 오는 거리에서 가위로 잘라 가며 포카차와 파리나타를 맛있게 나눠 먹었다.

우리는 포카차로 배를 채우고 간단하게 첫날 관광을 즐겼다. 토리노 시내 중심부를 둘러보고 이탈리아 첫 통일 왕국의 왕궁이었던 사보이 궁전에도 갔다.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사보이 궁전의 정원은 아름다웠지만 내부는 그다지 인상 깊지 않았다.

이탈리아 미식투어 참가자들이 토리노의 전통식당 ‘라 바데사’에서 스테이크를 즐기고 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 이탈리아 미식투어 참가자들이 토리노의 전통식당 ‘라 바데사’에서 스테이크를 즐기고 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

첫날 여행을 마친 뒤 저녁 식사는 피에몬테 전통 요리였다. 현지에서 제법 유명한 ‘라 바데사’라는 식당으로 다들 걸음을 옮겼다. 에피타이저는 피에몬테 전통으로 유명한 참치 소스 송아지 요리였다. 지금은 토리노 어느 식당에서나 맛 볼 수 있는 음식이며, 다양하게 변형돼 이탈리아의 샌드위치인 트라메지니의 내용물로도 이용되고 피자에 토핑으로 올려 먹기도 한다. 다른 에피타이저는 피에몬테 토종 소고기로 만든 육회인 파소나 소고기 타르타르였다. 한우나 다른 지역 소고기와는 다른 육향과 식감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제1요리는 피에몬테의 유명한 파스타인 타야린을 이용한 면 요리였다. 타야린은 달걀 노른자만 사용해 만든 얇고 가느다란 면이다. 또 고기 부산물을 속에 넣어 만든 이탈리아 북부 지역만두 아뇰리티도 함께 먹었다. 메인요리는 바롤로 와인으로 졸인 송아지 볼살요리인 파소나 안심 스테이크였다. 디저트 역시 피에몬테 전통 모듬 디저트를 주문해 입맛을 가다듬었다. 식사 내내 테이블을 지킨 와인은 당연히 피에몬테의 자랑인 바롤로 와인이었다.


바롤로 와이너리로 가는 도중에 버스 창 밖으로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 지나가고 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 바롤로 와이너리로 가는 도중에 버스 창 밖으로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 지나가고 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

■바롤로의 와이너리

우리는 둘째 날 토리노 인근 바롤로의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전날 저녁 식사에 곁들여 나온 와인을 만드는 곳이었다. 토리노에서 남동쪽으로 50km 지점에 있는 바롤로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뛰어난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여기에서 주로 생산하는 제품은 레드 와인이다. 피에몬테는 북쪽과 서쪽으로는 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여 차가운 북풍, 강수로부터 보호받고, 남동쪽으로는 아펜니노 산맥 최북단에 자리를 잡았다. 또 150~600m에 이르는 구릉지대여서 온도 변화가 심해 늦게 익는 품종을 생산하기에 좋다.

이탈리아 미식투어 참가자들이 바롤로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맛보고 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 이탈리아 미식투어 참가자들이 바롤로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맛보고 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

바롤로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시음하고 시골마을의 전통음식을 먹는 내용으로 점심 예약을 했다. 오전, 오후에 한 군데씩 와이너리를 방문해 바롤로 와인의 특성에 대해 들었다. 가문에서 여러 대를 이어 운영된다는 각 와이너리의 특색 있는 와인도 마셨다. 오전에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오후 와이너리 방문에 앞서 시골마을의 경치 좋은 식당에서 피에몬테의 전통적인 음식을 다양하게 먹으며 점심 시간을 보냈다. 참치 소스 송아지 요리, 엔초비 헤이즐넛 크림, 파프리카 절임, 피에몬테 만두 아넬로티 토끼고기 등등이었다. 우리는 바롤로의 포도밭을 내려다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손준호 준투어 대표·남정민 오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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