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터줏대감조차도 휘청… 동네 목욕탕이 사라진다
1972년 개업 남구 우암동 복천탕
공공요금 인상 등 겹쳐 문 닫을 판
최근 4년 새 목욕탕 14.7% 폐업
개인 사업체라 구청 지원도 한계
전기·수도 요금 등 치솟는 공과금과 목욕 문화 변화 탓에 부산에도 동네 목욕탕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기초 지자체도 주민 편의시설 격인 동네 목욕탕을 지원할 방법을 검토하고 나섰지만, 공공기관이 개인 사업체를 지원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31일 부산 남구청에 따르면 이달 기준 남구 우암동에서 영업 중인 동네 목욕탕은 ‘복천탕’ 한곳에 불과하다. 복천탕은 1972년 개업한 이래로 50년 넘게 우암동 주민에게 목욕 장소를 제공한 사랑방 같은 곳이다. 청암탕이라는 다른 동네 목욕탕이 수년 전부터 휴업한 이후로 복천탕은 사실상 우암동에 남은 마지막 동네 목욕탕이다.
하지만 동네 유일 목욕탕도 경영난으로 영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공중 목욕 대신 샤워를 선호하는 목욕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대중목욕탕이 설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복천탕이 있는 우암동 일대 재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목욕탕 주 이용객이던 주택 거주민이 동네에서 사라진 것도 복천탕 경영난을 부추겼다.
복천탕은 전기·수도 요금 등 공과금 압박이 날이 갈수록 커지면서 적자 운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현재 복천탕은 최대한 운영 비용을 아끼기 위해 영업시간을 줄이고 있다. 과거 복천탕은 저녁까지 영업했지만 현재는 손님이 적어 오후 2시 정도면 목욕탕 문을 닫는다. 복천탕 주인은 “하루에 손님은 보통 20명인데 비해 한 달 공과금은 200만 원 수준”이라며 “오후에는 손님도 없어서 장사할수록 손해인 상황이다. 점점 영업시간을 단축하면서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 목욕탕 사정이 어렵다는 소식에 주민들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우암동 주민 김 모 씨(72)는 “과거 마땅한 목욕 시설이 없던 주택이 점차 사라진 대신 현대식 목욕 시설이 갖춰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목욕탕 손님이 확 준 거 같다”며 “동네 목욕탕이 하나둘 사라져서 쓸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추세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든다”고 말했다.
주민 편의시설 격인 동네 목욕탕 되살리고자 남구청도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는 모양새다. 통상 개인 사업체가 공과금 보조 등 현금성 지원을 요구하지만, 현행법상 공공기관이 개인 사업체에 현금 지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구청 환경위생과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목욕탕 영업을 도울 수 있을지 여러 부서가 모여 논의해 봐야 할 것 같다”면서도 “현금성 지원은 어렵다”고 말했다.
동네 목욕탕 소멸은 부산 전역 문제이기도 하다. 부산시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부산에서 영업 중인 목욕탕은 총 712곳이다. 2019년(834곳)과 비교해서 4년 새 14.7%가 급감했다. 올해 부산 중구청은 구립 목욕탕 위탁 운영자를 찾는 데 난항을 겪는 등 목욕탕 산업 전체가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각 기초 지자체가 설립한 구립 목욕탕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지난 24일 세종시 한 목욕탕에서 감전 사고가 발생하는 등 동네 목욕탕 위축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