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단편소설 심사평] 희소병 환자 이야기, ‘슬로모션 기법’ 서술 인상적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8편이다. 수백 편의 응모작에서 가려낸 작품인 만큼 각 작품의 구도와 서술방식도 다양하다. 이런 다채로움 때문에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경향 혹은 편향이라 할 것도 쉬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 심사위원은 작품의 내적 논리를 살피고 문장의 완성도를 따져 최종적으로 ‘파랗게’와 ‘6이 나올 때까지’를 두고 토론하였다.
‘파랗게’는 청우리라는 특정 지역만 비가 오지 않아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낸다는 예외적 상황을 배치하고, 고향을 떠나 자유를 찾겠다는 은하와 고향에서도 자유롭다는 이담의 대비를 보여준다. 그러나 서사적 긴장을 구성할 만큼 두 인물의 길항을 밀도 있게 다룬다고 보기 어렵고, 특히 고향에 대한 은하의 의식과 행위에 납득할 만한 동기가 충분하지 않았다.
‘6이 나올 때까지’는 온몸에 종기가 돋고 단명한다는 희소병 환자 박도일의 실존에 관한 서술이다. 서술자는 결정론이 아니라 확률론으로 박도일의 출생과 질병을 해명하고, 이로써 우리의 삶 또한 무수한 우연의 중첩이며 무한대의 조건이 맞물려 만들어진 결과임을 암시한다. 무작위성으로 삶을 해명한 것이 특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지만, 무위로 끝날 박도일의 주사위 던지기에 실존적 가치를 부여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또 슬로 모션 기법처럼 피사체의 움직임을 극단적으로 느리게 영사하거나 시간을 무한대로 분절하는 서술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삶의 우연성이라는 주제와 잘 부합한다. 이에 우리 심사위원은 ‘6이 나올 때까지’를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신인의 탄생에 축하를 보내며 모든 응모자에게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정찬·나여경·서정아·신호철 소설가, 황국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