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진실은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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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진실·허위 뒤섞인 혼돈의 시대
건축·도시의 참된 의미 물어야
선거정국 분열·증오 난무 우려
편견 없는 겸손과 성찰 절실해

유명 배우의 자살과 정치인의 피습사건으로 지난 연말부터 계속 어수선하다. 무성한 말과 소문은 진실을 난도질하고 침묵의 숲에 가둔다. 무엇이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간의 조롱을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상처가 깊다. 아무리 억울해도 바람을 이길 재간이 없다. 버틴다고 진실이 밝혀진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의 유명 사전출판사 메리엄웹스터가 ‘진짜의’ ‘진품의’라는 의미의 ‘어센틱’(authentic)을 2023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메리엄웹스터는 단어 조회 수와 검색량 증가 정도 등을 토대로 매년 연말쯤에 ‘올해의 단어’를 선정하는데, ‘어센틱’의 검색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지난해에는 1년 내내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를 보도한 AP통신에서는 ‘인공지능(AI)의 발전 속에 딥페이크(deepfake, AI를 활용해 인물의 이미지를 실제처럼 합성하는 기술)가 흥하고 객관적 사실, 진실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탈진실 시대의 양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했다.

메리엄웹스터의 소콜로프스키 편집장은 “우리는 2023년에 일종의 ‘진실성의 위기’(crisis of authenticity)를 목도하고 있다”면서 “학생이 진짜로 이 논문을 썼는지, 정치인이 실제로 이 발언을 했는지 믿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제 우리가 목격하는 것들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의 눈과 귀를 믿지 못한다”고 말했다.

챗GPT로 잘 알려진 생성형 AI는 명령어를 넣으면 동영상, 이미지, 그리고 음성파일까지 만들 수 있다. ‘~카더라’가 아니라 딥페이크를 통해 실제처럼 조작된 것들이 소셜미디어에 퍼지게 되면 허위조작 정보는 곧 진짜처럼 둔갑해 사실인 것처럼 확산된다.

딥페이크가 아니더라도 이미 거짓 정보는 차고 넘친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도 한몫한다. 그동안 미디어는 불확실한 사회에서 그나마 믿을 만한 판단 기준을 제공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마저도 이제는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이 명확하지 않다.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실패만 해도 그렇다. 엑스포를 유치하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니라 결선까지 간 후 박빙의 순간을 예견한 시나리오가 문제였다. 부산 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응원이 무색해져 버린 투표 결과를 보고 대한민국의 정보 수집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정보로 희망회로를 돌린 것에 대한 사과는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다. “그래도 잘했다”는 말은 정부나 부산시가 아니라 부산 시민이 해야 하는 말이다.

엑스포가 아니더라도 도시 부산은 리뉴얼해야 한다. 2030엑스포 유치가 불발로 끝나자 우려했던 대로 북항재개발 2단계 사업계획 수립 용역도 중단되고, 북항 1단계 사업도 랜드마크 부지 개발 상황이 여전히 답보 상태다. 사업비 문제와 수익성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건축과 도시의 문제를 토지와 건물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면 수익성을 따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부동산 문제를 건축과 도시의 문제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물론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건축과 도시의 문제는 편리, 안전, 성장은 물론 문화적 의미까지 포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동산 가치로만 환산하게 되면 본래의 의미는 퇴색하고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마련이다.

지난해 여름, 인문 무크지 〈아크〉 편집위원들과 함께 속초를 방문했다. 부산보다는 작은 항만도시지만 설악산을 배경으로 하는 속초는 그 나름의 아름다운 곳이라고 기억했다. 10여 년 만에 방문한 그곳은 항구 주변에 무분별하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이 자연 풍광을 망치고 있었다. 현지의 지역학자 말을 빌리자면 속초의 롤 모델이 해운대라고 하는데 눈앞에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겸손하지 않은 건축이 도시를 어떻게 망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올해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 대만 총통 선거 등 무려 50여 국가에서 대선,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다. 딥페이크가 퍼진 후 실시하는 첫 번째 선거다. 잘못된 정보를 가공해 제공하는 유튜버와 댓글부대로 인해 피로도가 높은데 딥페이크까지 가세하게 된다면 진실은 고사하고 분열과 증오가 난무할까 염려된다.

찰스 칼렙 콜튼은 진실의 가장 큰 친구는 시간이고, 진실의 가장 큰 적은 편견이며, 진실의 영원한 반려자는 겸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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