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과 광주를 詩로 응시하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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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로 시집 ‘숨비기 그늘’ 출간
오랜만에 시대 역사 환기하는 시
폭압과 무능도 모두 ‘국가 폭력’
사람에 대한 발견 “꽃이자 울음”
삶·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져

4·3과 광주 시편을 쓴 김형로 시인은 “사람은 울음이자 꽃”이라고 했다. 부산일보 DB 4·3과 광주 시편을 쓴 김형로 시인은 “사람은 울음이자 꽃”이라고 했다. 부산일보 DB

시는 시대와 역사에 대해 아파해야 하지만, 그걸 얼마나 아파할 수 있을까. 김형로(65)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숨비기 그늘>(삶창)은 그 물음과 마주하게 한다. 저 혼자에 머무는 일기 같은 시를 쓰는 시속에서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라는 오래된 구절을, 시대 역사 공동체를 다시 환기한다.

각 15편을 4부로 구성한 시집에서 2부는 제주 4·3항쟁, 3부는 광주 5·18의 비극에 숨 막히도록 내닫는다. 하나의 시집에 저 묵직한 두 역사적 사건을 다룬 것은 엄청난 추상이지 않을까. “제주의 오름 위를 헤매던 사람인 것처럼 빙의돼 시를 썼고, 역사적 사실 속에서 시적으로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려 했습니다.” 시인은 “한국 현대사를 짓이긴 국가 폭력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학살뿐 아니라 ‘바다’와 ‘골목’ 참사로 이어진 무능도 국가 폭력이란 점에서 여전히 그것은 계속되고 있어요.”

국가 폭력에 대한 그의 ‘정면 응시’는 ‘꽃이자 울음인 사람’의 발견으로 나아간다. ‘哭(곡)을 꽃으로 읽은 적이 있다/한참을 그렇게 읽었다/뜻이 커졌다 오독이 은유가 되었다//그 후로 꽃을 보면 우는 것 같았다’(‘우는 꽃’ 중에서). ‘哭=꽃’이라는 것인데 요컨대 사람이 ‘哭을 매단 꽃/꽃을 둘린 哭’이라는 거다. ‘사람이라는 꽃/사람이라는 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픈 현대사를 대할 때 ‘울음’에서 ‘꽃’을 내다보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제주 4·3 시편에서 울음소리는 너무나 질펀하다. ‘삼춘, 내가 아니라고 햄신디 무사 총을 쏘왐수꽈’, 아니라고 했는데 왜 총을 쏘았느냐는 조카 넋의 소리다. ‘한마디 말, 한 번의 손가락질이 목숨 앗던 시절/살아 마지막 말은 ‘난 모르쿠다’였다’. ‘서로 사름이 아니엇수다 그놈들 눈엔 우리가, 우리 눈엔 그놈들이’. ‘이 짐승 같았던 세상… 소왕가시보다 더 무섭고 아픈 세상, 다시는 살구졍 아녀우다’. 숱한 이들이 죽고 죽인, 서로 사람이 아니었고, 다시는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섬의 말’에 ‘목숨 붙은 것은 다만 살아진 결과라는,’ 모두 ‘살아졌다고…’라고 한단다.

김형로 시집 <숨비기 그늘>. 삶창 제공 김형로 시집 <숨비기 그늘>. 삶창 제공

‘‘좋은 싀상 올 거우다’ 아홉 번 꿈 꾼’ 그런 한이 땅속에 묻혀 묻고 있는데 30여 년 뒤 또 광주에서는 어떠했는가. ‘내 새끼를 왜 이러냐고’ ‘이 땅 통절한 어머니의 강’이 흘렀다. 그러나 시인은 광주를 4·3과는 좀 다르게 노래한다. 꽃을 내다보려 한다. 어린 두 친구가 죽었다. ‘무엇이 열다섯 소년을 도청에 남게 했을까’. 성경 가르침대로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라는 일기를 남긴 아들과, ‘아들의 짧은 연대기를 어깨에 졌’던 아버지는 ‘두 십자가’였단다. 두 친구와 두 십자가의 ‘광주는 별이었다/어둠 직전에 가장 빛났다’고 한다.

‘싸웠다’ ‘지켰다’ 하지 않고 ‘다만 내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 그것이 ‘우리 가심에 살아 있는 거니까’, 그래서 ‘오, 광주’라는 것이다. ‘그것은 성체다/제단에 내어준 몸과 피다’. 여기서 드디어 울음은 꽃이 되는 것이다.

시인은 “1985년 내가 몸담았던 신문사의 편집부장 책상 위에는 보도지침이 놓여 있었고, 국장석 옆 간이 의자에는 기관원들이 앉아 있기도 했다”며 “그때 저는 광주 사진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보면서 언젠가 글을 쓰게 된다면 광주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시인에게 광주는 부끄러움이라고 한다. 살아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기 때문이다. ‘광주는 그러나/그날의 부끄러움으로 살아난다/부끄러워서 싸웠고/부끄러워서 투사가 되었다/부끄러움의 힘으로 성채를 쌓았다’. 광주는 질문이다. ‘시를 쓰면서 나에게 던진다/너는 도청에 남았겠느냐’.

그 질문은 사람에 대한 질문이며, 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글이 아니다. 사람, 삶, 정신, 마음, 뜻이 자리 잡은 연후에야 글이 나오는 것이다. 글은 한갓되다. ‘사람은 그대론데 글만 바뀐다’고 해서야 되겠는가, 라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세상을 들었다 놨다’하는 ‘풍찬노숙 천둥소리’, ‘순정했던 온몸들’의 글과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해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길을 가다 문득 서게 만드는/그런 사람/그런 순간들, 그런 일들’ 그런 글들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번 세 번째 시집은 1, 2 시집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묻는 말에 시인은 “이번 시집은 역사에 대한 기본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쓰고 싶었던 주제를 천착한 저의 첫 시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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