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는 실패한 정책이다?
메트로 이코노미 / 이양승
도시 거대화는 경제적 장점 많아
서울공화국 막고 지역 발전하려면
무조건 ‘나눠먹기’식 정책 대신
특정 도시 선택해 집중 육성해야
또 한 번 부산이 마음 상했다. 얼마 전 모 유력 정치인이 부산 의료를 패싱하고 서울행을 택했다. 그의 쾌유를 비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이 언짢아진 건 어쩔 수 없다. 체념도 섞였다. 의료의 서울 쏠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어데 의료뿐이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들이 서울로 쏠려있다. 이런 때, 지역(부산은 아님)에서 지역 발전 전략을 연구하는 한 학자가 “쏠림을 인정하자”는 다소 도발적인 내용의 책을 출간했다. 책 뒤표지에 분명 그렇게 쓰여있다.
쏠림을 인정하는 책 <메트로 이코노미>는 거대도시(메트로폴리탄)의 경제학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공화국 이야기다. 도시의 거대화는 경제적으로 자연스럽고 또한 일정 부분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유사한 기능이 모여있을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또한 규모의 경제도 작용한다. 집적효과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전국에 산재한 ‘혁신도시’를 실패한 정책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집적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나눠먹기’ 정책이라는 거다.
중앙의 논리와 닮았지만, 그렇다고 서울공화국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계적인 양적 분배(나눠먹기)만으로는 지역 발전을 견인할 수 없다는 걸 경제적 관점에서 지적한다. ‘기계적 나눠먹기’보다 ‘전략적 몰아주기’가 필요하다. 될성부른 지역 도시 한두 곳을 선택해 역량을 몰아주자는 식이다. 혁신도시의 경우에도 “전략적으로 몇 개 도시를 선택해 공공기관을 모아 이전시켜 집적 효과를 일으켰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것(성공했을 것)”이란다.
책은 ‘지역균형발전’과 같은 정의로운 명제를 따르지 않는다. 모든 지역이 골고루 모두 발전하는 것은 동화책 속에서나 나올 법한 달달한 이야기다. 그런 유토피아적 해결 방식은 실현 가능성도 없거니와 자유시장 원리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책은 서울공화국을 타파할 ‘올바른 방향성’보다 ‘효과적인 전략’ 찾기에 집중한다.
효과적인 전략이 ‘몰아주기’다. 역량을 특정 도시에 몰아줌으로써 해당 도시를 서울과 경쟁하게 만든다. 지금껏 국내 도시 중 언감생심 서울과 겨뤄볼 깜냥을 가진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경쟁할 엄두가 나질 않으니,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어려움을 호소한다. 실효성 없는 퍼주기, 나눠먹기 식 지원책이 난무한다. 현재로선 이러한 판을 뒤집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또 하나의 서울이 더 생기는 것이 무슨 의미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큰 의미가 있다. 쏠림의 무게 중심이 서울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으로 분산된다. 이른바 제대로 된 권역이 생기는 것. 저자는 그나마 서울에 맞설 수 있는 될성부른 도시 후보로 부산이나 세종을 꼽았다. 참고로 저자는 전북 출신이다.
정치제도의 변화도 시급하다. 국가의 중요 정책에 대해 지역이 결정권 혹은 거부권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지역대표형 상원의원제 도입을 제안한다. 인구 비례가 아니라 지역별로 동수의 의원으로 구성함으로써, 지역의 목소리를 키운다. 서울 상원의원이 2명이라면 서울 인구의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한 제주 상원의원 수 역시 2명이 되는 셈이다. 미국이 그러하다. 인구 비례에 따라 수도권 국회의원 수가 전체 국회의원의 절반이 되는 한국 현실은 매우 모순적이다. 영토의 89.2%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이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 기존의 지역 발전 관련 서적들과는 같은 듯 다른, 다른 듯 같은 시각이 흥미롭다. 사실 제2, 제3의 서울이 생겨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세상이 될 테다. 제2, 제3의 서울에 해당하는 도시는 당연하거니와, 그렇지 않은 다른 지역 도시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양승 지음/타임라인/334쪽/1만 8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