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하필왈리(何必曰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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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동양 고전 <맹자>의 첫 화두 ‘이익’
모두 자기 이익만 탐하는 세태 경고
수천 년 흐른 오늘날엔 더욱 심해져

대기업은 물론 개인들도 이전투구
약탈적 자본주의에 사회 위험해져
선진국 진입 불구 상실한 것도 많아

대학에서 들어가서 〈맹자〉를 처음 읽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창경궁 뒤편에 사시던 한 학자의 거실에서 처음 마주했던 〈맹자〉는 지금도 내 연구실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책장을 넘기면 그 연륜 때문에 바스러지기도 한다.

〈사기〉를 쓴 사마천도 2000년 전에 〈맹자〉를 읽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맹자〉를 읽다가 양혜왕이 ‘어떤 방법으로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하실 참이오’라고 묻는 구절에 이르면 언제나 책을 덮고 탄식하였다. ‘아, 이익이란 참으로 혼란의 시작이구나!’ 무릇 공자가 이익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혼란의 근원을 막기 위함이었고, 그래서 이익에 따라서 행동하면 원망을 많이 받는다고 하셨다. 천자로부터 서민에게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이익을 좋아해서 생긴 폐해가 어찌 다르겠는가!”

양혜왕의 질문에 대한 맹자의 대답은 이랬다. “하필 이익을 말씀하시오(何必曰利)!” 우리가 흔히 쓰는 ‘하필’이라는 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필이 〈맹자〉에 나오는 말이고 지금 우리가 쓰는 의미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어지는 맹자의 말도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고, 대부들도 어떻게 하면 내 집을 이롭게 할까 하고, 사(士)와 일반 사람들도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까 하여, 아래위가 서로 이익을 다투면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왜 지금 맹자의 말이 다시 떠올랐을까. 스트레스 DSR, 부동산 PF, 홍콩 H지수 연계 ELS 등 묘한 이름의 정책·사업·금융상품이 횡행하고, 이들 뒤에는 각자의 이익 추구라는 화두가 자리하고 있다. 부동산 PF로 워크아웃 절차를 밟고 있는 태영건설은 자본금이 200억인 회사인데, 현재 공시 자산은 2조 7450억 원이다. 자산이 자본금의 약 140배에 이른다. 현재 보증 채무는 태영건설에선 9조 5044억 원이라는데, 일부에선 16조 3000억 원이라는 말도 있다. 보증 채무까지 합치면 자본금의 거의 1000배에 달하는 이런 회사가 방송사 SBS도 거느리고 있다. 지주회사는 문제가 많은 태영건설은 도산시키고 알짜배기 회사만 건지려는 의도를 내비친 바 있다. 부동산 PF가 ‘돈 놓고 돈 먹기 도박’에 가깝다는 말이 실감 난다. 이윤 추구가 아니라 탐욕에 가깝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SBS는 과연 부동산 문제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할 수 있을까.

홍콩의 항셍(恒生) H지수는 중국의 국영기업 중에서도 우량기업에 관한 인덱스다. 그래서 주가연계증권(ELS)을 판매한 은행은 중국·홍콩이 망하지 않는 한, 이 지수가 반토막 날 일은 없다고 했다. 고위험 금융상품인데도 불구하고 예금보다 낫다며 가입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래서 증권사가 아닌 은행이 이 상품의 80% 이상을 팔았다. 투자자들도 자신들은 순수한 예금주라고 주장한다. 단지 은행에 돈을 맡겼을 뿐이라며. 그러나 실제로는 이전에 ELS에 투자한 경험자가 90%를 넘는다고 한다. 설령 ELS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이미 단맛을 본 사람들이 많았던 셈이다.

금융당국은 은행과 투자자를 나무라면서도 자신은 무관한 듯 발을 뺐다. 하지만 ELS의 주요 지수로 H지수를 허용한 것은 바로 금융당국이다. 은행은 비이자 수익을 위해 고객에게 ELS를 적극적으로 권유했고, 개인은 예금 이자보다 좀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하고 여기에 가입했다. 당국이 H지수를 허용한 것은 무능했거나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사건이 터지자 “H지수는 등락이 극심하고 원금 손실이 발생한 전례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뻔히 알면서 허용한 셈이다.

맹자의 지적대로, 아래위가 서로 이익을 다투는 난장판이 바로 우리 사회이고 이미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개인이든, 기업이든, 은행이든 모두 이익을 좇느라 좌우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대기업이 빵집을 프랜차이즈로 경영하기 시작하자,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빵도 먹던 그야말로 동네 빵집은 다 죽었다. 대기업이 빵집까지 경영하는 우리 사회는 약탈적 자본주의에 가깝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열광했던 책 중 하나가 〈맹자〉였다. 그들은 과거 시험을 위해 이 책을 달달 외웠고, 한편으론 맹자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려고 했다. 안분지족, 분수를 알고 만족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탐관오리나 부정부패가 있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마음대로 이익을 추구하라고 하고, 이익을 챙기지 못하면 자기 능력 부족이라고 한다. 그 결과는 뻔하다. 현재 직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선진국이 되었다고 하는데 잃어버린 게 너무 많다. 소심한 서생은 다시 〈맹자〉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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