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운하 수난사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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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운하는 미주 대륙의 핵심 루트이다. 프랑스가 주도했던 운하 건설은 말라리아와 황열병으로 9년 동안 2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기록했다. 이후 미국이 사업권을 이어받아 1914년에 완공했다. 미국은 당시 서부 골드러시가 활발했고,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이후 쿠바와 필리핀과 괌을 식민지로 확보하면서 운하 건설에 사활을 걸었다. 파나마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 양쪽에 3개의 계단식 갑문 방식으로 건설됐다. 갑문에 막대한 양의 담수를 공급하기 위해 강을 댐으로 막고, 가툰호수를 만들었다. 이 운하는 세계 2차대전에서 미국 해군이 아시아와 유럽을 종횡무진할 수 있는 통로가 됐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수에즈운하는 세계 최초, 최대 규모이다. 1869년 이집트 내륙을 뚫어 인도양 아라비아해의 연장인 홍해와 지중해 항구도시 포트사이드를 연결했다. 프랑스가 소유했던 수에즈운하의 전략적 가치를 시샘한 영국이 1882년 반제국주의 반란 진압을 구실로 운하 일대를 점령하는 일도 벌어졌다.

운하의 장점은 시간과 비용을 줄여준다는 점이다. 파나마운하 건설 전 미국 동부 뉴욕에서 서부 샌프란시스코로 배를 타고 가려면 2만 900km나 되는 남미를 돌아야 했다. 파나마운하로는 8370km로 거리가 줄어든다. 수에즈운하는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희망봉 코스보다 항행 거리를 1만km 정도 줄여준다. 길게는 3주 정도 시간과 함께 기름값과 보험료도 줄어든다. 그런 점에서 수에즈·파나마운하는 세계 경제의 거대한 ‘동맥’과도 같다. 2015년 제2 수에즈운하 개통식에서 이집트의 엘 시시 대통령이 “전 세계인을 위한 선물”이라고 자랑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잦은 기상이변과 전쟁으로 수난을 겪고 있다. 파나마운하는 엘니뇨로 인한 가뭄으로 가툰호수의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갑문을 채울 담수마저 부족한 상태이다. 이로 인해 컨테이너선이 장시간 대기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110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1967년 6일 전쟁 때 8년간 폐쇄됐던 수에즈운하의 경우 최근 예멘 후티반군이 홍해를 통과하는 선박에 무차별 공격을 가하면서, 선사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키를 돌리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물류 마비가 겨우 풀리나 했는데, 뜻하지 않은 전쟁과 기상이변으로 해상 운임 급등과 선박 부족 현상이 재연되고 있다. 2024년, 온갖 불확실성에 대해 단단한 준비가 필요한 듯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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