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사건’ 동거녀 항소심도 징역 20년
동거녀 1심과 같은 징역 20년 선고
“아동 생명 침해하는 범죄 죄책 무거워”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 성범죄와 아동학대가 맞물려 4세 여아가 참담하게 숨진 ‘가을이 사건’ 가해자인 동거녀 부부가 항소심에서도 중형이 선고됐다.
부산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박준용) 18일 ‘가을이 사건’ 동거녀 부부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아동학대살해·상습아동학대·성매매강요 등의 혐의로 동거녀 A 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은 형량인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성매매 대금으로 갈취한 1억 2450만 원 추징과 80시간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5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또 상습아동유기방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남편 B 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아동은 스스로 보호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동의 생명을 침해하는 범죄는 그 죄책이 더욱 무겁다”며 “사망 당시 피해자의 모습은 심각한 영양 결핍 상태였고, 그러한 모습을 피고인은 모른 척했다는 점에서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이 보호자로서 책무는 전혀 이행하지 않으면서 친모에게 집안일과 성매매까지 시키고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까지 향유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피해자가 오랜 기간 느꼈을 육체적, 정신적 고통, 범행의 잔혹성, 결과의 중대성 등을 감안해 피고인에 대해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 씨 아동학대 살해 혐의에 대해 친모의 폭행과 아동학대 사실을 알고도 가을이를 14시간 방치한 점, A 씨가 아이를 때렸다는 친모 증언이 매우 설득력 있다고 밝혔다. 또 가을이가 숨지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호흡 정지 발작’ ‘아동학대 신고’ 등을 인터넷에서 검색한 점도 범행의 고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남편 B 씨의 경우 상대적으로 주거지 내 거주 시간이 짧았고, 자신들의 두 자녀를 양육할 부모가 필요한 점 등을 고려해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A 씨는 가을이가 사망한 지난해 12월 14일 친모가 가을이를 폭행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가을이가 거품을 문 채 발작을 일으키는 등 생명이 위중함에도 학대·방임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까 두려워 119 신고 등 구호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또 2021년 11월께 가을이가 친모의 폭행에 의해 눈을 다쳐 점차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이를 방치하고, 친모가 아이에게 정상적인 음식을 제공하지 않으며 폭행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혐의도 받는다.
A 씨는 2021년 7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친모에게 최대 2410회에 걸쳐 성매매를 강요해 1억 2450만 원의 돈을 챙겼다.
이 사건의 쟁점은 동거녀 부부에게 법률상 보호자의 지위와 의무가 인정되느냐였다. 1심과 마찬가지로 항소심 재판부 역시 가을이의 친권자인 친모가 곁에 없어서 보호자의 의무가 없었다는 동거녀 부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아동의 보호자에 대한 진일보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행 아동학대처벌법 등은 보호자 개념이 모호해, 양육 중인 부모나 아동 기관 종사자 등이 아닌 경우 혐의 적용이 쉽지 않다. 검찰이 A 씨에 대해 최초 기소 당시 방조 혐의를 적용한 것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형식적인 관계보다 실질적인 양육 형태 등을 중시해 판결했고, 향후 비슷한 아동 학대 사건에서도 보호자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판례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